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18화

빨간 불빛이 꺼진 뒤

2026-07-16 · 읽는 시간 약 16분

18화, 빨간 불빛이 꺼진 뒤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1

18화 대표 이미지

녹음기에는 빨간 불빛이 있었다.

그 불빛이 켜지면 사람들은 말을 조금 고쳐 입었다.
문장을 짧게 만들고, 불필요한 농담을 삼키고, 나중에 책임질 수 있는 말만 골랐다.

그래서 유이는 취재를 할수록 알게 되었다.

기록되는 말이 전부는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말은, 가끔 빨간 불빛이 꺼진 뒤에 나왔다.

오후 4시 20분, 동도대학 세미나실 전화가 울렸다.

“네, 동도대학 신문학과입니다.”

유이가 수화기를 받자, 단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이와미디어그룹 홍보부의 오오츠카였다.

“타카하시 님, 추가 취재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유이는 펜을 찾았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네.”

“오늘 오후 6시에 혼마씨가 15분 정도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다만 자료실이 아니라, 사내 라운지에서 가능합니다.”

자료실이 아니라 라운지.

유이는 그 말에 조금 안도했다.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다시 자료실에 들어간다면, 같은 장소에서 계속 길을 못찾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유이는 노트 한쪽에 적었다.

'빨간 불빛이 켜진 동안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조심하는지 볼 것.'

아카사카의 저녁은 낮보다 더 회사 같았다.

낮에는 유리창이 하늘을 비췄지만, 저녁에는 회사 안쪽의 불빛을 밖으로 내보냈다. 책상 앞에 남은 사람들, 회의실을 빠져나오는 사람들, 엘리베이터 앞에서 피곤한 얼굴로 시계를 보는 사람들.

세이와미디어그룹 2층 사내 라운지는 쇼룸보다 조용했고, 자료실보다 밝았다.
커피 자판기와 낮은 테이블, 벽 쪽 흡연 구역, 창밖으로 보이는 택시 불빛. 미래를 전시하는 공간도 아니고, 과거를 숨겨둔 공간도 아니었다.

그 사이 어디쯤 되는 곳.

오오츠카가 먼저 와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곧 혼마가 들어왔다. 검은 터틀넥에 사원증, 손에는 종이컵 커피. 지난번보다 더 피곤해 보였고, 그래서 조금 더 솔직해 보였다.

유이는 녹음기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녹음해도 괜찮을까요?”

혼마는 오오츠카를 보았다. 오오츠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세요.”

유이가 버튼을 눌렀다.

찰칵.

빨간 불빛이 켜졌다.

유이는 먼저 안전한 질문부터 꺼냈다.

“CD-ROM화할 때, 오래된 출판물의 권리 확인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혼마는 커피를 내려놓았다.

“매체가 늘어나면 권리의 종류도 늘어납니다.”

유이는 받아 적었다.

“책은 책으로 계약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상, 음성, 게임, CD-ROM이 되면 각각 확인이 필요해집니다. 오래된 나무에 새 가지를 붙이려면, 뿌리를 확인해야 합니다.”

오오츠카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든 듯 조용히 메모했다.
혼마는 그런 오오츠카를 보고 조금 웃었다.

“홍보식으로 말하면, 작품을 오래 키운다는 뜻입니다.”

유이가 물었다.

“작품을 오래 키우는 과정에서, 이름이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오츠카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혼마는 빨간 불빛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말이죠.”

그는 말을 골랐다.

“회사 안에서는 작품명은 남기 쉽습니다. 하지만 담당자명이나 제안자명은 자료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의도적으로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그 말은 대답 같기도 하고, 대답을 피하는 말 같기도 했다.

그때 오오츠카의 호출기가 작게 울렸다. 그녀는 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자리 비우겠습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오오츠카가 라운지 밖으로 나가자, 테이블 위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혼마는 빨간 불빛을 보며 말했다.

“타카하시 씨, 녹음 멈춰 주시겠습니까?”

유이의 손이 버튼 위에서 멈췄다.

“여기부터는 녹음 없이 부탁드립니다.”

찰칵.

빨간 불빛이 꺼졌다.

그 순간, 라운지의 형광등 소리가 조금 크게 들렸다.
녹음되지 않는 말 앞에서 사람은 오히려 더 조용해졌다.

혼마는 종이컵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돌렸다.

“말의 출처를 찾으려면, 말만 쫓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유이는 펜을 들지 않았다.
오늘은 기억해야 했다.

“무슨 뜻인가요?”

“아이디어에는 지문이 없습니다. 하지만 서류에는 도장이란 것이 있습니다.”

유이의 심장이 천천히 뛰었다.

“도장...”

“누가 처음 말했는지는 대체로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디로 종이가 넘어갔는지는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혼마는 테이블 위 냅킨 한 장을 끌어당겼다. 펜으로 세 단어를 적었다.

수령인
기획 수령부
송부 기록

“이건 사외비가 아닙니다. 그냥 찾는 방법입니다.”

유이는 그 세 단어를 바라보았다.

말은 공기 중에서 사라지지만, 도장은 종이 위에 남는다.

“1971년 공동연구회에도 그런 기록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가요?”

혼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가능성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가능성만으로 기사가 되기는 어렵죠. 하지만 해답으로 통하는 문이 될 수는 있겠죠.”

그때 오오츠카가 돌아왔다.

혼마는 냅킨을 접어 유이 쪽으로 밀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조금 어색했다.

“기다리게 했습니다.”

오오츠카가 자리에 앉았다.

혼마는 다시 종이컵을 들고, 조금 전과는 다른 얼굴로 말했다.

“이상입니다.”

녹음기는 꺼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접힌 냅킨이 하나 있었다.
기록되지 않은 말이 종이 한 장의 무게로 남아 있었다.

취재가 끝난 뒤, 유이는 아카사카역 근처 공중전화 앞에 섰다.

전화를 걸까.
집에 가서 말할까.
아버지가 회사에 있을 시간인데, 회사로 전화하는 건 이상하지 않을까.

유이는 수화기를 들었다.

“동양출판입니다.”

“타카하시 부장님 부탁드립니다.”

잠시 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타카하시입니다.”

유이는 수화기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아빠, 나야.”

“유이? 무슨 일이야?”

“수령인이라는 말, 알아?”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 침묵은 모른다는 침묵이 아니었다.

“어디서 그 말을 들었니?”

“추가 취재에서. 혼마 씨가... 말이 아니라 종이를 보라고 했어.”

타카하시는 아주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구나.”

“기획 수령부, 송부 기록도.”

타카하시는 책상 위 메모지에 천천히 적었다.

수령인. 기획 수령부. 송부 기록.

세 단어는 오래전 자신이 잃어버린 문장이 본래 자리로 걸어오는 발소리 같았다.

“유이야.”

“응.”

“오늘은 곧장 집으로 와.”

“위험한 거야?”

타카하시는 대답을 고르다가 말했다.

“위험하다기보다, 신중히 다뤄야 할 일이야.”

유이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알겠어.”

전화를 끊고 나서도 타카하시는 한동안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회사 안은 이미 저녁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팩스가 멈추고, 복사기가 식고, 누군가 복도 끝에서 불을 끄는 소리.

그는 서랍에서 자료실 열쇠를 꺼냈다.

동양출판 자료실은 밤이 되면 더 무겁고 낡은 얼굴을 했다.
낮에는 먼지와 종이가 보였지만, 밤에는 종이 사이의 침묵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타카하시는 1971년 박스 앞에 섰다.

営業企画(영업기획).
外部研究会(외부연구회).
発送控(발송 보관본).

그는 마지막 박스를 꺼냈다. 손끝에 먼지가 묻었다.

상자 안에는 얇은 카본지 사본들이 날짜순으로 묶여 있었다. 거래처 발송 공문, 회의 자료 송부 내역, 기획서 회람 기록.

1971년 11월.

타카하시의 손이 멈췄다.

昭和四十六年十一月十二日(쇼와 46년 11월 12일)
세이와 영상기획실 귀중
신매체 전개 기획안 1부 송부

오래된 종이에는 발송 담당자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받아간 쪽의 도장은 없었다.

종이 오른쪽 위에는 클립 자국이 남아 있었다.
무언가가 붙어 있다가 떨어져 나간 흔적.

타카하시는 그 자리를 오래 바라보았다.

있었던 것과 없었던 것은 달랐다.
하지만 있다가 떨어져 나간 것은, 더 오래 사람을 붙잡았다.

그는 작은 메모를 붙였다.

수령 회신 미철
확인 필요

그리고 한 줄 더 적었다.

나카무라 주임에게 확인 의뢰

그날 밤, 니시오기쿠보 집에서 유이는 녹음기를 다시 틀었다.

빨간 불빛이 켜졌던 시간 속의 혼마는 조심스러웠다.

“매체가 늘어나면 권리의 가지도 늘어납니다.”

유이는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노트에 기억을 더듬어 적었다.

'아이디어에는 지문이 없다.
하지만 서류에는 도장이 있다.'

방문 밖에서 조용한 발소리가 들렸다. 타카하시가 돌아온 것이다.

잠시 뒤 문이 두 번 두드려졌다.

“유이, 깨어 있니?”

“응.”

문이 열리고 타카하시가 들어왔다. 손에는 오래된 복사본 한 장이 있었다.

“송부 기록은 있었어.”

유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령인은?”

타카하시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없어. 하지만 없었던 건 아닐지도 몰라.”

그는 종이 오른쪽 위의 클립 자국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무언가가 붙어 있었어.”

유이는 그 작은 녹슨 자국을 보았다.

세상에는 큰 증거보다 작은 흔적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작아서 오래 무시되었고, 작아서 아직 남아 있는 것들.

“아빠.”

“응.”

“나, 조심할게. 그런데 멈추지는 않을게.”

타카하시는 가만히 딸을 보았다.

그 말이 걱정스러웠고, 또 조금은 고마웠다.
젊은 시절의 자신이 어딘가에서 아직 포기하지 않은 얼굴로 서 있는 것 같았다.

“알겠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혼자 안고 가지는 마.”

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도.”

두 사람은 잠깐 웃었다.
웃음은 작았지만, 오늘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빨간 불빛이 꺼진 뒤에야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아직 조심스러웠고, 아직 불완전했고, 아직 누구의 이름도 돌려주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어디를 찾아야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録音、止めてもらえますか。 [ろくおん、とめて もらえますか。]
녹음, 멈춰 주시겠습니까?
혼마가 오오츠카가 자리를 뜬 뒤 유이에게 건넨 요청. `〜てもらえますか`는 "~해 주실 수 있습니까?"라는 정중한 부탁 문형. 회의·인터뷰·회화에서 부드럽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자주 쓰는 대표 표현입니다.

2. 気をつけるけど、やめない。 [きを つけるけど、やめない。]
조심할게, 하지만 멈추지는 않을게.
유이가 아버지에게 남긴 결심. `気をつける`는 "조심하다·주의하다", `〜けど`는 "~지만"의 회화체, `やめる`는 "그만두다·멈추다". 걱정하는 상대를 안심시키면서도 자기 뜻을 지키는, 균형 잡힌 어른의 회화 문장입니다.

3. 一人で抱え込まないで。 [ひとりで かかえこまないで。]
혼자 안고 가지는 마.
타카하시가 딸에게 남긴 부탁. `一人で`는 "혼자서", `抱え込む`는 "떠안다·품고 있다", `〜ないで`는 "~하지 마"의 부드러운 명령형. 가족·친구·동료에게 부담을 나누자고 할 때 쓰는 따뜻한 회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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