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20화

눈이 오기 전

2026-07-16 · 읽는 시간 약 18분

20화, 눈이 오기 전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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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예보는 늘 조금 무책임했다.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쌓일 수도 있고, 비로 바뀔 수도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우산을 챙기고, 목도리를 두르고, 조금 일찍 집에 갈 생각을 했다.

확실하지 않은 말도 사람을 움직일 때가 있었다.

그날 아침, 동양출판 복도 끝 라디오에서 기상 캐스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밤은 눈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무실 안의 사람들은 잠깐 창밖을 보았다.
도쿄의 하늘은 아직 눈이 올 얼굴은 아니었다. 다만 낮게 흐렸고, 유리창에 닿은 바람이 평소보다 조금 차가웠다.

오전 10시, 창립 30주년 자료 정리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실에는 타카하시, 와타나베, 그리고 아카리가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대조표와 발송 의뢰표 사본, 1971년 공동연구회 참석자 명부, 그리고 새로 작성한 대외 조회 문안이 놓여 있었다.

아카리는 문안 첫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세이와미디어그룹 귀중.
쇼와 46년 11월 자료 수령 기록 조회 건.

와타나베가 종이를 내려다보다가 웃었다.

“이제 경쟁사에까지 문의합니까?”

타카하시는 조용히 대답했다.

“필요합니다.”

“창립 30주년 사사에 이런 내용이 꼭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사사에 실을지 말지는 나중 문제입니다. 지금은 자료의 흐름을 확인하는 단계입니다.”

와타나베의 손끝이 발송 의뢰표 위에서 멈췄다.

発送依頼者 渡辺印(발송 의뢰자 와타나베 도장).

작은 빨간 도장은 너무 조용했다.
조용해서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와타나베가 말했다.

“그 시절에는 담당자가 대신 도장을 찍는 일도 흔했습니다.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마시죠.”

아카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 가능성도 포함해서 확인하겠습니다.”

“나카무라씨는 참 끝까지 확인하시는군요.”

“그게 제 업무니까요.”

아카리는 그렇게만 말했다.

업무라는 말은 차갑게 들릴 때도 있었지만, 오늘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개인의 억울함때문이 아니라 업무라면, 누군가는 끝까지 진실의 페이지를 찾을 수 있었다.

타카하시는 대외 조회 문안에 도장을 찍었다.

탁.

회의실 안에 작지만 분명한 소리가 났다.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누구의 것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와타나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아직 눈은 오지 않았다.

오후 3시 17분, 세이와미디어그룹 홍보부 팩스가 울렸다.

오오츠카는 출력된 종이를 읽고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1971년. 동양출판. 신매체 전개 기획안. 수령 기록 조회.

그녀는 곧장 개발부로 향했다. 혼마는 책상 위에 회로도와 원고 복사본을 펼쳐놓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아직 저장되지 않은 프로그램 화면이 떠 있었다.

“혼마 씨.”

“이번엔 뭡니까.”

오오츠카는 팩스를 내밀었다.

혼마는 읽다가 손을 멈췄다.

“왔군요.”

“공식 답변은 총무와 법무 확인을 거쳐야 해요.”

“공식 답변에는 시간이 걸리겠네요.”

“그건 당연한 절차예요.”

혼마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시간 때문에 사라지는 이름도 있습니다.”

오오츠카는 그를 보았다.

“혼마 씨.”

“압니다. 저는 개발부 사람이고, 홍보도 법무도 아니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령부는 지하에 있습니까?”

오오츠카는 잠시 망설였다.

“확인만이에요.”

“확인만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회사에서 '확인만'이라는 말은 가끔 가장 위험한 시작이었다.

저녁 무렵, 오차노미즈역 앞에는 바람이 세게 불었다.

켄타는 목도리를 고쳐 매고 서 있었다. 진로 희망 조사서는 담임에게 제출했다. 未定(미정)이라고 적은 칸에는 아무 표시도 없었다. 대신 담임은 짧게 말했다.

“잘 생각해보렴.”

그 말은 혼난 것 같기도 했고, 기다려준 것 같기도 했다.

역 앞 신호등에서 유이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유이는 학교 가방과 취재 노트를 들고 있었다. 편의점 유니폼이 아닌 사복 차림의 유이는 조금 더 대학생 같았고, 조금 더 지친 사람 같았다.

“켄타 군.”

“유이 누나.”

두 사람은 신호등 앞에서 나란히 섰다.

“오늘 근무 아니지?”

“네. 누나도요?”

“응. 오늘은 쉬는 날.”

바람이 불자 유이가 손으로 머리카락을 눌렀다. 켄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올 것 같대요.”

“아직 안 오는데.”

“눈 내리기 전이 가장 추워요.”

유이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켄타 군은 날씨 얘기도 꼭 중요한 말처럼 하네.”

켄타는 조금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그냥 날씨 얘기인걸요.”

“응. 그래서 더 좋아.”

신호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한꺼번에 길을 건넜다.
도쿄의 횡단보도 위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잠깐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그러다 금세 흩어졌다. 유이는 진보초 쪽으로, 켄타는 전철역 쪽으로 걸었다.

헤어지기 전 유이가 물었다.

“진로 조사 냈어?”

“냈어요.”

“뭐라고 썼어?”

켄타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미정입니다라고.”

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좋은 건가요?”

“응. 적어도 빈칸은 아니잖아.”

켄타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미정은 빈칸이 아니다.
그건 아카리가 해준 말과 닮아 있었다.

같은 시간, 동양출판 지하 보관고에서 아카리는 낡은 상자 하나를 다시 열고 있었다.

타카하시는 세이와에 보낸 대외 조회 사본을 파일에 끼웠다.
와타나베는 회의 후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늘 답이 올 가능성은 낮겠죠.”

타카하시가 말했다.

“네. 공식 답변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아카리는 발송 의뢰표 아래에 작은 메모를 붙였다.

세이와 답변 대기
수령인 미확인

그리고 한 줄 더 적었다.

확인 중

그 단어를 적으며 아카리는 잠시 멈췄다.

확인 중인 채로 두면 틀린 게 된다고, 언젠가 켄타가 말했었다.
그래도 어떤 일은 확인 중이라는 이름으로 버텨야 했다. 아직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서. 아직 찾지 못한 것을 없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서.

“나카무라 씨.”

타카하시가 불렀다.

“네.”

“여기까지 함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카리는 파일을 닫았다.

“아직 여기까지입니다.”

타카하시는 작게 웃었다.

“그 말이 더 고맙군요.”

아직 여기까지.
끝났다는 말보다, 때로는 사람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말이었다.

밤 7시 반, 세이와미디어그룹 지하 보관실.

혼마는 낡은 장부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있었다. 오오츠카는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한 채 서 있을 뿐이었다.

“혼마 씨, 복사는 하지 말아 주세요.”

“알고 있습니다.”

혼마는 페이지를 넘겼다. 1971년 10월, 11월, 12월. 종이는 얇았고, 잉크는 군데군데 번져 있었다. 하지만 도장은 생각보다 선명했다.

그리고 11월 15일.

혼마의 손이 멈췄다.

동양출판 영업기획부로부터
신매체 전개 기획안 1부 수령
수령인 세이와 영상기획
비고 타카하시案/와타나베 氏 경유

오오츠카도 그 줄을 보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장부 위의 글자는 낡았지만, 지금 막 도착한 말처럼 방 안을 채웠다.

혼마가 낮게 말했다.

“확인했습니다.”

오오츠카는 대답하지 못했다.

공식 답변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절차가 있을 것이다.
확인할 사람이 있고, 검토할 부서가 있고, 지워서는 안 되는 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장부에는 있었다.

타카하시의 기획안.
와타나베 씨를 통해서 전달.
수령인 세이와.

눈이 오기 전의 도쿄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코토구의 작은 집에서 아카리는 늦은 저녁을 차렸다. 켄타는 식탁에 앉아 학교에서 받은 프린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춥지?”

“응.”

“눈 온대.”

“아까 들었어.”

아카리는 미소시루를 내려놓았다.

“진로 조사, 괜찮았어?”

켄타는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

“미정은 빈칸이 아니라고.”

아카리는 웃었다.

“누가 그래?”

“엄마.”

아카리는 잠깐 멈췄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국그릇을 밀어주었다.

“맞는 말 했네.”

켄타도 아주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금방 사라졌지만, 아카리는 보았다. 그래서 그날 저녁은 조금 따뜻했다.

니시오기쿠보의 집에서는 유이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카하시는 평소보다 늦게 들어왔다.

“다녀왔어.”

“어서 와.”

유이는 따뜻한 차를 내왔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늘 차를 내주었는데, 오늘은 반대였다.

“오늘 세이와에 공식 조회 요청했어?”

타카하시는 코트를 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청서 보냈어.”

“답은?”

“아직.”

“그럼 아직 확인 중이네.”

“응.”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유이는 창밖을 보았다. 가로등 아래로 아주 작은 흰 점 하나가 지나간 것 같았다.

“눈인가?”

타카하시도 창밖을 보았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두 번째, 세 번째 흰 점이 천천히 떨어졌다.

“내리기 시작했구나.”

유이가 말했다.

“응.”

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세상이 무너질 때도 이렇게 조용할까, 유이는 잠깐 생각했다. 아니면 오래된 이름이 돌아올 때도 이렇게 조용할까.

타카하시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유이.”

“응.”

“무언가가 발견되더라도, 바로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 쓰지는 않았으면 해.”

유이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럼 뭘 위해 써?”

타카하시는 조금 오래 생각했다.

“이름을 돌려주기 위해.”

유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너무 작고, 너무 컸다.

그날 밤 늦게, 세이와의 지하 보관실에서 혼마는 장부를 다시 닫았다.

오오츠카는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이건 공식적으로 올리겠습니다.”

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거예요.”

“시간이 걸려도, 지우지만 않으면 됩니다.”

오오츠카는 장부 표지를 한 번 더 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보관함에 넣었다.

아카사카에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쌓이기에는 너무 약한 눈이었다. 손등에 닿으면 금방 사라지는 눈.

하지만 사라졌다고 해서, 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날 도쿄의 여러 곳에서 작은 것들이 남았다.

동양출판 파일에는 세이와 답변 대기라는 메모가 남았고,
세이와 장부에는 타카하시안/와타나베 씨 경유라는 줄이 남았고,
켄타의 마음에는 未定(미정)이 빈칸이 아니라는 말이 남았고,
유이의 노트에는 아직 쓰지 않은 문장 하나가 남았다.

'눈이 내린다고 쌓일 거란 보장은 없다.
그냥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내렸다.'

첫눈은 오래 쌓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게 되었다.
무언가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今夜、雪かもしれません。 [こんや、ゆき かもしれません。]
오늘 밤은 눈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 라디오 기상 캐스터의 예보. `今夜`는 "오늘 밤", `雪`는 "눈", `〜かもしれません`은 "~일지도 모릅니다"라는 정중한 추측 문형. 확실하지 않은 일을 알릴 때 쓰는 대표 표현으로, 일기 예보·회의·일상 어디서든 쓸 수 있습니다.

2. まだここまでです。 [まだ ここまでです。]
아직 여기까지입니다.
아카리가 타카하시의 감사 인사에 답한 문장. `まだ`는 "아직", `ここまで`는 "여기까지", `〜です`는 정중 종결. 끝났다고 단정하지 않고 다음을 남겨두는, 겸손하면서도 단단한 어른의 회화 표현입니다.

3. 名前を返すために。 [なまえを かえすために。]
이름을 돌려주기 위해.
타카하시가 딸에게 남긴, 이 시즌 전체의 주제 문장. `名前`는 "이름", `返す`는 "돌려주다", `〜ために`는 "~하기 위해". 목적을 짧게 말하는 대표 문형으로, 어떤 일을 왜 하는지 한 줄로 정리할 때 유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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