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오래된 먼지
2화, 오래된 먼지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1

진보초역 출구를 나오자, 종이 냄새가 먼저 났다.
비가 오기 전의 오후였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헌책방 앞 평대에는 오래된 문고본들이 눅눅한 공기를 조금씩 먹고 있었다. 지나가는 회사원들은 우산을 들고 있었지만 아직 펴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대체로, 확실히 젖기 전까지는 괜찮은 척을 한다.
아카리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후 1시 42분.
약속 시간보다 18분 일찍 도착했다.
동양출판 사옥은 생각보다 낡았다. 유리로 번쩍이는 빌딩이라기보다, 오래 버틴 회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입구 옆 화분의 잎끝이 조금 말라 있었고, 안내 데스크의 전화기는 수화기 손잡이만 반들거렸다.
"失礼いたします。(실례하겠습니다.)"
아카리는 접수대 직원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마루산 상사 IT추진실 주임 나카무라 아카리
처음 명함을 받았던 날, 그녀는 회사 화장실에서 혼자 울었었다.
그때는 명함 한 장이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해주는 줄 알았다. 이름 밑에 회사와 직함이 적히면, 이전의 삶도 조금은 새롭게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은 명함 한 장으로 크게 달라질 수 없었다.
다만 그 명함을 들고, 매일 새로워진 척할 수는 있었다.
"나카무라 주임이시군요. 회의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카리는 고개를 숙였다.
"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잘 부탁드립니다.)"
회의실에는 상자들이 먼저 와 있었다.
작가별 계약서, 사진 원판, 판매촉진 자료
갈색 골판지 상자 위로 오래된 먼지가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먼지는 회사의 시간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었다. 새로 산 책상이나 새로 단 전화기는 회사를 젊어 보이게 만들 수 있지만, 서류 상자의 먼지는 속이지 못했다.
"お待たせしました。(기다리게 했습니다.)"
타카하시 류지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짙은 회색 양복, 가는 금속테 안경, 왼손 약지의 결혼반지. 그는 문 앞에서 한 번 멈춰 서더니, 아카리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나카무라씨.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인사는 지나치게 정중했다.
그래서 오히려 편했다.
정중함은 벽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다리가 되기도 한다.
선을 넘지 않겠다는 약속.
당신의 사정을 캐묻지 않겠다는 예의.
회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만 아는, 아주 건조한 다정함.
타카하시는 자료를 펼쳤다.
"이번 30주년 자료 데이터베이스화는 크게 세 단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사료 목록화, 그다음 권리 관계 정리, 마지막으로 검색용 색인 작성입니다."
아카리는 볼펜을 들었다. 검은색. 회사 책상에서 가져온 펜이었다. 회의실 책상 위에 놓을 때도, 그녀는 펜을 종이와 수직이 되게 맞췄다.
"계약서 변경 이력도 함께 입력하는 방향이십니까?"
타카하시의 눈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네.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회의실 끝에 앉아 있던 와타나베 이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정도까지 필요합니까. 30주년 기념사업입니다. 연구소를 만들자는 게 아니지요."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부드러운 말은 때로 날카로운 말보다 오래 남는다.
아카리는 와타나베 쪽을 보았다.
"권리 변경 이력을 빼면, 나중에 자료를 찾아도 실제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지금 수고를 덜면, 나중에 더 큰 비용이 들 수도 있습니다."
짧고 단정했다.
감정은 없었다.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었다.
타카하시는 아주 낮게 말했다.
"必要です。(필요합니다.)"
그 말은 아카리의 의견에 대한 동의처럼 들렸지만, 다른 누군가를 겨냥한 말 같기도 했다. 와타나베는 웃었다.
"예산 안에서 해주게."
"알고 있습니다."
타카하시가 대답했다.
아카리는 그 순간을 보았다.
와타나베가 타카하시를 바라보는 방식.
타카하시가 감정을 지우는 방식.
두 사람 사이에는 업무보다 오래된 무엇이 있었다.
하지만 아카리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그녀가 가진 가장 확실한 예의였고, 가장 오래된 방어였다.
회의가 끝난 뒤, 타카하시는 아카리를 자료실로 안내했다.
복도 끝의 철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와 먼지 냄새가 함께 밀려왔다. 형광등이 한 박자 늦게 켜졌다. 오래된 회사의 자료실에는 늘 그런 박자가 있었다. 불빛마저 지나간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야 켜지는 것 같았다.
"습기가 많습니다. 원본 훼손이 걱정입니다."
아카리가 말했다.
"예전에는 이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타카하시는 상자 하나를 조심스럽게 밀었다.
"회사는 앞으로 가는 척을 잘하지만, 뒤에 쌓이는 건 잘 못 봅니다."
상자 하나가 삐끗하며 기울었다. 아카리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오래된 봉투 몇 개가 바닥으로 미끄러졌고, 먼지가 작게 일었다.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대답은 빨랐다.
너무 빨라서, 타카하시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괜찮다는 말이 빠른 사람은 대체로 괜찮을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다.
타카하시는 그걸 알았다. 자기 역시 평생 그렇게 말해온 사람이었으니까.
"그냥 두셔도 됩니다."
아카리는 봉투를 주워 정리했다.
"괜찮습니다. 이것도 업무니까요."
그 말에 타카하시는 더 말하지 않았다.
업무라는 말 뒤에 사람이 숨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억지로 끌어내지 않는 것이 낫다.
아카리는 봉투 겉면을 확인하다가 손을 멈췄다.
1971年 営業企画(1971년 영업기획).
낡은 글씨였다. 누군가 급하게 적은 것처럼, 숫자의 끝이 살짝 흔들려 있었다.
타카하시는 상자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아주 짧게, 손목시계를 보았다. 0.5초쯤 침묵이 생겼다.
"아직 정리 전입니다."
"네, 그렇군요."
아카리는 봉투를 원래 자리에 놓았다.
그녀는 묻지 않았다.
타카하시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사람은 가끔, 질문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고 싶어진다.
질문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자료실을 나와 회의실로 돌아왔을 때, 창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비였다. 우산을 쓰자니 번거롭고, 안 쓰자니 결국 젖게 되는 비. 9월의 도쿄에는 그런 비가 많았다. 사람을 단번에 적시지 않고, 천천히 옷깃부터 무겁게 만드는 비.
아카리는 회의록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本日は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오늘 감사했습니다.)"
"こちらこそ。お疲れさまでした。(저야말로요. 수고하셨습니다.)"
타카하시는 문 앞까지 배웅했다. 회사 밖까지는 아니었다. 딱 문 앞까지. 그 거리감이 두 사람에게는 맞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아카리는 한 번 더 고개를 숙였다.
타카하시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문이 닫혔다.
아카리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류철을 품에 안았다. 오늘 회의에서 결정된 항목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주 오래된 방의 문고리를 손끝으로 만지고 온 기분이 들었다.
1층 로비에 도착하자, 접수대 직원이 말했다.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카리는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냈다.
검정색. 튀지 않는 것. 오래 쓰기 좋은 것.
밖으로 나오자 진보초의 책방들이 비에 젖고 있었다. 사람들은 우산 아래로 조금씩 얼굴을 숨겼다. 아카리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그녀의 서류철 안에는 동양출판의 30년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30년 안 어딘가에는,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침묵이 있었다.
타카하시는 자료실로 다시 돌아갔다.
형광등은 여전히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1971年 営業企画(1971년 영업기획)이라고 적힌 봉투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열면 종이가 나올 것이다.
종이에는 문장이 있을 것이다.
문장에는 그 시절의 자신이 있을 것이다.
그는 봉투를 열지 않았다.
대신 만년필 뚜껑을 닫았다.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먼지는 계속 내려앉고 있었다.
상자 위에도, 봉투 위에도, 말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 위에도.
그날, 진보초에는 오래된 비가 내렸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失礼いたします。 [しつれいいたします]
실례하겠습니다.
방·회의실에 들어가거나 인사를 건넬 때의 가장 정중한 표현. 아카리의 태도를 상징하는 첫 문장이기도 합니다.
2. 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よろしくおねがいいたします]
잘 부탁드립니다.
새 관계를 시작할 때 쓰는 정중한 인사. 이 소설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처음 건넨 말입니다.
3. 必要です。 [ひつようです]
필요합니다.
타카하시가 회의실에서 낮게 말하는 단 세 글자. 짧을수록 뜻이 무거워지는 일본어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