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세이와라는 이름
4화, 세이와라는 이름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1

오차노미즈의 언덕은 비가 그친 뒤 더 오래 젖어 있었다.
동도대학 문학부 건물 앞 은행나무 잎은 아직 노랗지 않았고, 학생들은 우산을 접은 채 강의실로 뛰어 들어갔다. 9월의 대학 캠퍼스에는 늘 덜 마른 여름과 너무 이른 가을이 함께 있었다.
유이는 세미나실 맨 앞자리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표지에는 크게 적혀 있었다.
卒業制作(졸업 작품).
미디어 산업의 변화와 이야기의 확장.
담당 교수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타카하시 씨, 주제는 정했습니까?"
유이는 잠깐 숨을 골랐다.
"네. 세이와미디어그룹을 취재하고 싶습니다."
강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세이와라는 이름은 학생들에게도 익숙했다. 출판사로 시작해 영상, 음악, 게임, CD-ROM까지 손을 뻗은 회사. 신문과 TV 광고, 게임 잡지의 기사 안에서 자주 보던 이름.
누군가 작게 말했다.
"대기업이잖아, 거기."
유이는 노트에 적어둔 문장을 읽었다.
"책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는 회사를 보고 싶습니다. 하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영상이 되고, 음악이 되고, 게임이 되고, 다시 다른 사람의 기억이 되는지요."
교수는 턱을 만졌다.
"흥미롭군요. 다만 큰 회사는 학생 취재를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네, 부탁해보겠습니다."
유이의 목소리는 밝았지만 가볍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순간에 아버지를 닮았다. 꼭 필요한 말만 하는 방식. 본인은 몰랐다.
세미나가 끝난 뒤, 유이는 학교 복도 끝 공중전화 앞에 섰다.
동전 세 개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수첩에 적어둔 번호를 눌렀다. 수화기 너머로 몇 번의 연결음이 지나갔다.
"네, 세이와미디어그룹 홍보부입니다."
유이는 등을 조금 폈다.
"갑작스러운 전화 실례합니다. 동도대학의 타카하시 유이라고 합니다. 졸업 작품을 위해 귀사를 취재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말을 끝낸 뒤, 유이는 자신이 방금 너무 어른처럼 말했나 생각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여자는 웃지 않았다.
"学生さんですか。(학생이세요?)"
"はい。(네.)"
"주제를 간단히 알려주시겠습니까?"
유이는 문장을 미리 준비해두었지만 보지 않고 말했다.
"출판에서 영상, 음악, 게임으로 확장되는 미디어믹스의 흐름입니다. 이야기가 한 권의 책 안에만 머물지 않는 시대를 기록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수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자료실과 쇼룸 견학이라면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이는 손바닥 안 동전의 차가움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심장이 조금 빨리 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카사카의 세이와미디어그룹 사옥은 진보초의 낡은 출판사들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리문은 조용히 열렸고, 로비 바닥에는 천장 조명이 반듯하게 비쳤다. 벽에는 영화 포스터와 음반 재킷, 게임 패키지, 비디오테이프 케이스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하나의 소설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이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줄지어 서 있는 것 같았다.
유이는 안내 직원의 뒤를 따라 쇼룸으로 들어갔다.
"이곳이 저희 회사의 미디어믹스 사업 쇼룸입니다."
벽면에는 연표가 있었다.
1970年代 映像事業へ進出(1970년대 영상사업 진출).
音楽出版部設立(음악출판부 설립).
ゲームソフト事業開始(게임 소프트 사업 시작).
CD-ROM企画開発(CD-ROM 기획 개발).
유이는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연표는 회사의 자랑처럼 보였지만, 어쩐지 누군가의 머릿속을 벽에 붙여놓은 것 같기도 했다. 너무 빠르고, 너무 정확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다음 장면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すごいですね。(대단하네요.)"
안내 직원이 미소 지었다.
"時代が変わりましたから。(시대가 변했으니까요.)"
시대가 변했다.
그 말은 편리했다. 누가 바꾸었는지, 누가 먼저 보았는지, 누가 밀려났는지를 묻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다.
유이는 취재 노트에 적었다.
'이야기는 어디까지 이동할 수 있는가.'
'이동한 이야기는 여전히 원래의 이야기인가.'
'그 이야기를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쇼룸 한쪽에서는 CD-ROM 데모가 돌아가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책의 목차가 열리고, 그림이 뜨고, 짧은 음악이 흘렀다. 유이는 모니터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책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종이가 화면이 되고 있었다.
누군가의 문장이, 누군가의 사업이 되고 있었다.
그것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조금 무서웠다.
견학을 마치고 나오며, 홍보부 직원이 얇은 회사 소개 책자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유이는 책자를 가방에 넣었다. 표지에는 星和(세이와)라는 두 글자가 은색으로 박혀 있었다. 별처럼 빛나도록 만든 이름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뒤쪽 복도에서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십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 하나가 지나가다 유이의 손에 든 취재 노트를 보았다. 시선은 짧았지만, 정확했다.
"학생이세요?"
유이가 고개를 숙였다.
"네. 취재 사전조사로 찾아왔습니다."
남자는 잠깐 웃었다.
"공부 열심히 하시네요."
"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유이는 안으로 들어갔고, 남자는 타지 않았다.
문이 닫히기 직전, 유이는 그가 아직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쾌한 시선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친절해 보이는 시선이었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날 저녁, 유이는 키치죠지의 작은 카페 창가에 앉았다.
비는 그쳤지만, 유리창에는 아직 물방울 자국이 남아 있었다. 가게 안에서는 재즈 음악이 낮게 흘러 나왔고, 옆자리 여자는 잡지를 넘기고 있었다. 유이는 세이와의 책자를 다시 꺼냈다.
星和メディアグループ(세이와미디어그룹).
이름 아래에는 회사의 비전 문장이 적혀 있었다.
物語を、未来へ。(이야기를, 미래로.)
유이는 그 문장을 한참 보았다. 좋은 문장이었다. 조금 부러울 만큼. 하지만 좋은 문장은 가끔 너무 많은 것을 덮어버린다. 유이는 아직 그걸 알지 못했다.
노트 첫 장에 그녀는 새 제목을 적었다.
「物語を運ぶ会社」 (이야기를 운반하는 회사)
잠시 보다가, 줄을 그었다.
그리고 다시 썼다.
「本の先にあるもの」 (책 너머에 있는 것)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이는 펜 끝을 입술 가까이 가져갔다가, 작은 글씨로 세 번째 제목을 적었다.
세이와라는 이름.
카페 창밖으로 사람들은 우산을 접은 채 지나갔다. 모두 어딘가로 돌아가는 얼굴이었다. 유이는 문득 아버지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이 어떻게 영상이 되고, 음악이 되고, 게임이 되는지. 아버지라면 분명 재미있어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저녁 식탁에서 타카하시가 물었을 때,
"오늘은 늦었구나."
유이는 이렇게만 대답했다.
"응, 학교 일."
타카하시는 더 묻지 않았다.
유이도 더 말하지 않았다.
그날 밤, 세이와의 회사 소개 책자는 유이의 가방 맨 아래에 들어 있었다. 아버지의 만년필 소리가 거실에서 두 번 똑, 하고 들렸다.
유이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미래라고 부른 이름이, 누군가에게는 아직 열지 못한 과거의 이름이라는 것을.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学生さんですか。 [がくせいさんですか]
학생이세요?
`さん` 접미로 낯설음 속에서도 예의를 갖춘 표현. 회사 사람이 처음 유이를 확인하는 문장입니다.
2. 時代が変わりましたから。 [じだいが かわりましたから]
시대가 변했으니까요.
책임 소재를 흐리는 편리한 관용구. 이 이야기에서는 누가 밀려났는지 묻지 않게 하는 말로 쓰입니다.
3. 物語を、未来へ。 [ものがたりを、みらいへ]
이야기를, 미래로.
세이와미디어그룹의 슬로건. `を~へ`로 방향을 만드는 광고 카피 특유의 구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