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5화

복사기보다 빠른 소문

2026-07-15 · 읽는 시간 약 11분

5화, 복사기보다 빠른 소문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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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산 상사의 복사기는 아침마다 가장 먼저 예열됐다.

불이 들어오고, 낮게 웅웅거리고, 흰 종이를 한 장씩 삼켰다가 뱉었다. 회사에서 사람보다 부지런한 것은 기계였고, 기계보다 빠른 것은 소문이었다.

아카리는 8시 41분에 사무실에 들어섰다.

"좋은 아침입니다."

몇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대답은 돌아왔지만, 반 박자 늦었다. 그 반 박자 안에 사람들은 많은 것을 숨겼다.

아카리는 자기 책상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펜 세 자루를 가지런히 맞췄다. 파란색, 검은색, 빨간색.

책상 위의 작은 질서가 하루 전체를 지켜주지는 못해도, 무너지는 속도를 늦춰주기는 했다.

복사기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들었어?"

"나카무라 주임, 이혼이 아니라는 것 같아."

"아들이 고등학생이라면서?"

잠깐의 침묵.

"그럼 몇 살 때?"

아카리는 서류철을 들고 일어났다. 복사기 앞에 있던 여직원 둘이 그녀를 보고 말을 멈췄다.

소문은 늘 사람이 없을 때 시작되지만, 사람이 왔다고 끝나지는 않는다. 그저 다른 방으로 옮겨갈 뿐이었다.

아카리는 조용히 물었다.

"복사기, 써도 괜찮을까요?"

"아, 네."

둘은 어색하게 비켜섰다.

복사기 안에는 종이가 걸려 있었다. 아카리는 덮개를 열고, 구겨진 종이를 천천히 빼냈다.

기계에 걸린 종이는 손을 넣으면 꺼낼 수 있었지만 사람들 입에 걸린 말은 그럴 수 없었다.

"종이가 걸렸네요."

아카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닌 척하는 일에는 기술이 필요했다. 그녀는 그 기술을 너무 일찍 배웠다.

미사키가 커피 두 잔을 들고 다가왔다.

"나카무라 주임님, 이거요."

예전 같으면 "아카리 씨"라고 불렀을 것이다. 회식이 끝난 밤, 택시 뒷좌석에서 "선배는 진짜 멋있어요"라고 말하던 목소리. 주말 백화점에서 스카프를 고르며 "이 색 잘 어울려요"라고 웃던 얼굴.

아카리는 커피를 보았다.

"괜찮습니다."

거절은 짧아야 했다. 길어지면 마음이 섞였다.

미사키는 잔을 들고 선 채 웃었다.

"저번 일, 아직 화나셨어요?"

아카리는 복사된 서류를 정리했다.

"근무 중입니다."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충분하지 않아도, 충분해야 했다.

미사키의 얼굴에서 웃음이 조금 사라졌다. 하지만 곧 다시 달라 붙었다. 미사키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사라진 표정을 재빨리 다시 꺼낼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더 위험한 사람.

"私、悪気があったわけじゃなくて。(저, 나쁜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아카리는 고개를 들었다.

"その件は、業務に関係ありません。(그 일은 업무와 관계없습니다.)"

미사키는 더 말하지 못했다.

업무와 관계없다는 말은 때때로 사람을 구해준다. 회사에서는 사적인 일이 가장 쉽게 사람을 다치게 한다.

그래서 자신을 지킬 때는 "업무"라는 말 뒤에 숨어야 했다.

미사키가 말한 '저번 일'은 작은 질문에서 시작됐다.

"아드님, 몇 학년이에요?"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어, 그럼 엄청 젊은 엄마셨네요."

미사키는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은 칭찬처럼 포장되어 있었지만, 안쪽에는 계산이 있었다. 몇 살에 낳았는지. 언제 결혼했는지. 왜 반지가 없는지. 왜 남편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아카리는 그날, 왼손 약지를 만지지 않으려고 손을 무릎 아래로 내렸다.

"昔のことです。(오래전 일입니다.)"

그렇게 대답했다.
그 말이 끝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남의 과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다음 날부터 미사키는 더 자주 물었다. 걱정하는 얼굴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는 사람들은 대체로 문을 부수고 들어오지 않는다. 문 앞에서 오래 서 있다가, 안에 있는 사람이 미안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날, 회사는 알게 되었다.
아카리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점심시간이 지나자 사무실은 잠깐 느슨해졌다. 남자 직원들은 흡연실로 들어갔고, 여직원들은 탕비실에서 머그컵을 씻었다. 복도 끝에서 웃음소리가 났다가, 아카리가 지나가자 낮아졌다.

강한 사람이라는 말은 편리했다.
누군가를 강하다고 부르면, 도와주지 않아도 되니까.
상처받지 않을 사람이라고 정해버리면, 상처 준 사람도 마음이 편하니까.

아카리는 자리로 돌아와 동양출판 자료 파일을 열었다. 팩스 한 장이 들어와 있었다.

東洋出版 高橋部長 (동양출판 타카하시 부장)

하단에는 짧은 메모가 있었다.

無理のない範囲でお願いいたします。 (무리되지 않는 범위에서 부탁드립니다.)

아카리는 그 문장을 한 번 더 읽었다.

무리되지 않는 범위.
회사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었다. 회사는 대체로 무리를 시킨 뒤, 무리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문장은 이상하게 차분했다. 묻지 않고, 파고들지 않고, 다만 선을 하나 그어주는 말 같았다.

아카리는 서류를 파일에 넣었다.
그리고 왼손 약지를 만졌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는, 가끔 너무 많은 것을 말한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복사기가 다시 멈췄다.

누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또 종이 걸렸어?"

아카리는 일어나 복사기 앞으로 갔다. 덮개를 열고, 안쪽 롤러에 말려 들어간 종이를 천천히 빼냈다. 찢어지지 않게. 더 망가지지 않게.

무언가를 꺼낼 때는 힘보다 방향이 중요했다.
사람의 마음도 그랬다. 세게 잡아당기면 찢어지는 것들이 있었다.

"고쳐졌습니다."

아카리가 말했다.

누군가 고맙다고 했다.
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 6시 36분. 아카리는 책상 위 펜을 다시 수직으로 맞추고 불필요한 종이를 정리했다. 오늘도 하루가 끝났다. 끝났다는 말은 늘 조금 거짓말이었다. 회사에서 끝난 일은 집까지 따라오고, 집에서 눌러둔 일은 회사에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아카리는 생각했다.

괜찮다고 말하지 말자.
오늘은 적어도, 혼자 있을 때만큼은.

니혼바시 역으로 가는 길, 작은 슈퍼 앞에 계란 세일 종이가 붙어 있었다.

아카리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계란 한 팩을 샀다.

소문은 복사기보다 빨랐다.
하지만 내일 아침 달걀이 익는 시간만큼은, 아무도 앞질러 갈 수 없었다.

아카리는 계란을 가방 깊숙이 넣고,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갔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私、悪気があったわけじゃなくて。 [わたし、わるぎがあったわけじゃなくて]
저, 나쁜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선을 넘은 뒤 자주 등장하는 변명 구문. `~わけじゃない`는 강한 부정보다 여운을 남기는 화법입니다.

2. その件は、業務に関係ありません。 [そのけんは、ぎょうむに かんけいありません]
그 일은 업무와 관계없습니다.
사적인 질문을 정중하게 차단할 때 쓰는 격식 표현. 아카리가 자기 자신을 지킬 때 뒤로 숨는 언어의 벽입니다.

3. 無理のない範囲でお願いいたします。 [むりのないはんいで おねがいいたします]
무리되지 않는 범위에서 부탁드립니다.
상대의 사정을 배려하는 관용 표현. 회사 세계에서는 드물게 사용되어, 이 문장을 쓴 사람의 결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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