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6화

아버지의 쪽지

2026-07-16 · 읽는 시간 약 13분

6화, 아버지의 쪽지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1

6화 대표 이미지

타카하시 류지의 책상 서랍에는 하루하루가 쌓여 있었다.

今日は雨です。傘。(오늘은 비예요. 우산.)
寒いからマフラー。(추우니까 목도리.)
牛乳ありません。(우유 없어요.)
お父さん、薬飲んだ?(아빠, 약 먹었어?)

유이가 쓴 쪽지들은 대체로 짧았다. 짧아서 버리기 쉬웠고, 짧아서 더 버릴 수 없었다. 타카하시는 그것들을 오래된 명함 상자 안에 넣어두었다. 회사 창립 기념 배지보다, 승진 임명장보다, 그 작은 종이들이 더 정확하게 세월을 말해주었다.

아침 식탁에서 유이는 토스트를 베어 물며 말했다.

“아빠, 넥타이 삐뚤어졌어.”

타카하시는 거울 대신 딸을 보았다.

“그렇구나.”

“가만히 있어봐.”

유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넥타이 매듭을 바로잡았다. 밝은 갈색 단발이 그의 가슴 앞에서 살짝 흔들렸다. 타카하시는 그 머리카락 끝을 보다가, 아주 오래전 한 여자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결혼 전의 키미코도 저렇게 짧은 단발이었다.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지금의 유이가 옛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오늘도 회의?”

“오후에.”

“마루산?”

타카하시의 손이 잠깐 멈췄다.

“맞아.”

“요즘 바쁘네.”

“너도 바쁘지 않니.”

유이는 웃었다.

“私は大丈夫。(나는 괜찮아.)”

괜찮다는 말은 두 사람 모두에게 익숙했다. 그래서 둘 다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다만 믿는 척을 해주었다. 가족이란 때로, 상대의 거짓말을 알아도 오늘 하루는 넘어가주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유이는 가방을 챙기며 세이와미디어그룹의 얇은 책자를 노트 사이에 깊숙이 넣었다. 표지의 은색 글씨가 아주 잠깐 식탁 위로 반짝였다. 타카하시는 보지 못했다. 아니,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졸업 작품은 잘돼가니?”

“응. 그냥... 자료 보는 중.”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아빠가 도와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유이는 농담처럼 말했다.
타카하시는 웃지 못했다. 세상에는 아버지가 도와줄 수 없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도와주면 안 되는 일도 있었다.

동양출판의 오전은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창립 30주년 기념 자료는 매일 조금씩 불어났고, 사람들은 과거를 정리한다는 말로 현재의 피곤을 덮었다.

타카하시는 회의실에서 자료 목록을 확인하다가 가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늘 아침에도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今日は雨です。傘。(오늘은 비예요. 우산.)'

그는 창밖을 보았다. 하늘은 아직 맑았다.
그래도 딸의 말은 대체로 맞았다. 유이는 날씨를 잘 맞히는 편이었다. 아니, 날씨보다 아버지의 허술함을 더 잘 맞혔다.

와타나베 이사가 회의실 문 앞을 지나가다 멈췄다.

“타카하시 부장, 오후 자료는?”

“여기에 있습니다.”

“세이와 쪽 동향도 같이 보게. 그쪽은 요즘 CD-ROM 사업을 꽤 밀고 있더군.”

세이와라는 이름이 회의실 공기를 잠깐 멈추게 했다.

“알겠습니다.”

와타나베는 웃었다.

“자네는 옛날부터 그런 쪽 감이 좋았지.”

칭찬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타카하시는 알고 있었다. 사람을 가장 아프게 하는 말은 때로 칭찬의 모양을 하고 온다는 것을.

와타나베가 사라진 뒤, 타카하시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전 11시 16분.
0.5초의 침묵.
그리고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오후, 유이는 키치죠지 카페 창가에 앉아 있었다.

무거운 노트북은 집에 두고 왔다. 오늘은 종이와 펜이면 충분했다. 창밖으로는 우산을 들지 않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아직 아무도 하늘이 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표정들이었다.

유이는 취재 노트 한쪽에 적었다.

책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이야기는 누구의 것인가.
미래를 먼저 본 사람은 언제 인정받는가.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서, 유이는 펜을 멈췄다. 왜 그런 문장이 나왔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옆자리 라디오에서는 드라마 주제가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사랑 노래를 들으며 커피를 마셨고, 거리에는 아직 돈을 쓰는 즐거움이 남아 있었다. 도쿄는 가끔 이상했다. 모두가 조금씩 불안해지고 있는데도, 노래와 조명은 더 화려해지는 도시.

유이는 공중전화로 아버지 회사에 전화를 걸까 하다가 말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몰랐다.

오늘 비 올 것 같아.
일찍 와.
밥 같이 먹자.
아니면, 아빠는 예전에 어떤 미래를 생각했어?

그중 어느 말도 수화기 안에 넣기에는 조금 무거웠다.

비는 저녁 6시가 지나서야 내렸다.

처음에는 가늘었고, 곧 제대로 굵어졌다. 진보초의 책방들은 서둘러 평대 위에 비닐을 덮었고, 회사원들은 지하철 입구를 향해 뛰었다. 타카하시는 회사 현관 앞에서 가방을 고쳐 들었다.

그는 딸의 쪽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우산을 펼쳤다.

작은 접이식 우산이었다. 손잡이가 조금 낡았지만 아직 쓸 만했다. 유이가 19살 때 사준 것이었다.

“아빠는 맨날 우산 잃어버리니까 싼 걸로 샀어.”라고 말했지만, 싼 우산치고는 튼튼했다.

집에 도착한 것은 저녁 9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다녀왔다.”

거실에서 유이가 고개를 들었다.

“어서 와. 젖었어?”

“괜찮아.”

“안 괜찮은데.”

유이는 수건을 가져와 그의 어깨에 묻은 빗물을 털어냈다. 타카하시는 가만히 있었다. 딸이 어릴 때는 자신이 젖은 머리를 닦아주었는데, 어느새 반대가 되었다.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크는 게 아니었다. 매일 조금씩 커서, 부모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어른의 손길을 갖게 된다.

식탁에는 된장국과 생선구이가 놓여 있었다. 유이는 이미 먹은 뒤였지만, 아버지 앞에 앉았다. TV에서는 젊은 남녀가 도쿄의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화면 속 사랑은 늘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학교는 어땠니.”

“그냥. 세미나.”

“알바는?”

“내일.”

대화는 짧았다.
짧은 대화도 매일 반복되면, 집 안을 가득 채울 이야기가 된다.

유이는 잠깐 망설이다가 물었다.

“아빠.”

“응.”

“아빠는... 회사 처음 들어갔을 때, 뭐 하고 싶었어?”

타카하시의 젓가락이 멈췄다.

“갑자기 왜?”

“그냥. 졸업 앞두니까. 다들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잖아.”

타카하시는 된장국 그릇을 내려놓았다.

“책을 팔고 싶었다.”

“그게 다야?”

“처음에는.”

“그다음엔?”

타카하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비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말하지 않은 문장은 비슷한 소리를 낸다. 들리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는 소리.

유이는 더 묻지 않았다.

“괜히 물어봤네.”

“아니다.”

타카하시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사람은 처음 하고 싶었던 일보다, 나중에 지키고 싶어진 것 때문에 오래 일하게 되는 것 같다.”

유이는 그 말을 노트에 적고 싶었다. 하지만 적지 않았다. 그건 취재 노트의 문장이 아니라, 식탁에 남겨둬야 할 문장 같았다.

그날 밤, 유이가 잠든 뒤 타카하시는 자기 방 책상 앞에 앉았다.

그는 명함 상자를 열었다. 오래된 쪽지들이 차례로 누워 있었다. 삐뚤빼뚤한 초등학생 글씨, 중학생 때의 둥근 글씨, 대학생이 된 뒤의 빠르고 단정한 글씨. 유이는 자기가 매번 다른 글씨로 아버지를 붙들어 주었다는 걸 모를 것이다.

타카하시는 오늘 아침 쪽지를 책상 위로 꺼냈다.

今日は雨です。傘。(오늘은 비예요. 우산.)

그리고 메모지를 한 장 꺼냈다. 만년필 뚜껑을 열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쓸 말은 많지 않았다. 많지 않아서 더 어려웠다.

그는 천천히 적었다.

傘、助かった。(우산, 도움 됐다.)

고맙다는 말은 쓰지 못했다.
하지만 그 문장 안에는 고맙다는 말이 들어 있었다. 유이라면 언젠가 알아줄지도 몰랐다. 아니, 몰라도 괜찮았다. 부모의 마음은 대체로 너무 늦게 도착하는 편이니까.

타카하시는 쪽지를 접어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아침에 유이가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 집에서는 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다만 중요한 말들이 자주 쪽지 위에 먼저 남겨졌다.

밤새 비가 내렸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이, 식탁 위에서 조용히 아침을 기다렸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今日は雨です。傘。 [きょうは あめです。かさ。]
오늘은 비예요. 우산.
유이가 아버지에게 남긴 아침 쪽지. 극도로 짧은 문장 속에 애정과 실용이 동시에 담긴다.

2. 私は大丈夫。 [わたしは だいじょうぶ。]
나는 괜찮아.
가족 사이에서 서로 알면서도 넘어가주는 정중한 거짓말. `大丈夫`는 상대를 안심시키는 만능 표현입니다.

3. 傘、助かった。 [かさ、たすかった。]
우산, 도움 됐다.
타카하시가 딸에게 처음으로 남긴 답장 쪽지. `助かる`는 "고맙다"를 직접 말하지 않고 감사를 전하는 남성적·연장자적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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