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30주년 회의
8화, 30주년 회의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1

기념일에도 예산표는 따라붙었다.
동양출판 5층 대회의실에는 아침부터 긴 테이블이 놓였고, 테이블 위에는 생수병과 회의 자료, 창립 30주년 로고 시안이 가지런히 놓였다.
本とともに、三十年。 (책과 함께, 삼십 년.)
누군가 정성껏 고른 문장이었다.
회의실 벽에는 창립 초기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젊은 사원들이 좁은 사무실에서 원고를 묶고 있었다. 1961년의 사진 속에는 스물셋의 타카하시도, 스물셋의 와타나베도 있었다. 둘은 같은 방향을 보고 웃고 있었다.
그때는 아직,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고 해서 같은 마음인 것은 아니라는 걸 몰랐다.
“시작합시다.”
와타나베 이사가 상석에 앉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양복은 빈틈없이 맞았다. 명문대 출신이라는 말은 이제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말을 몸에 입고 다니는 사람 같았다. 말투, 손짓, 누군가를 부르는 방식까지.
“타카하시 부장, 진행 상황을.”
타카하시는 천천히 일어섰다.
“네.”
스크린에 자료 목록이 비쳤다.
창립 자료. 작가별 계약서. 판매 촉진 자료. 사진 원판. 미채택 기획안. 권리 변경 이력.
회의실 한쪽에는 마루산 상사의 아카리도 앉아 있었다. 그녀는 노트를 펴고, 펜을 종이와 수직이 되게 놓았다. 회의실 공기는 낯설지 않았다. 남자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결정하고, 여자가 기록하는 공기. 회사는 이름만 다르고 비슷한 습관을 갖고 있었다.
타카하시가 설명했다.
“자료 데이터베이스화는 단순 보존이 아니라 향후 권리 활용을 위한 기반 작업입니다. 특히 계약 변경 이력과 미채택 기획도 함께 목록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와타나베가 미소 지었다.
“미채택 기획까지? 기념사업입니다. 실패한 것까지 전시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몇 사람이 작게 웃었다.
회의실에서는 누군가 웃으면, 왜 웃는지 몰라도 따라 웃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것도 회사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타카하시는 웃지 않았다.
“전시가 아닙니다. 자료입니다.”
아카리는 그 문장을 받아 적었다.
전시가 아닙니다. 자료입니다.
짧은 말인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사람도 그랬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부분만 모으면 전시가 되고, 부끄러운 부분까지 남기면 기록이 된다.
와타나베는 손가락으로 회의 자료 끝을 두드렸다.
“요즘은 세이와가 CD-ROM 쪽을 꽤 잘하더군요. 시대가 변했습니다. 우리도 뒤처질 수 없지요.”
세이와라는 이름이 나오자, 타카하시의 왼손 약지가 아주 작게 움직였다. 반지를 만지려다 멈춘 것처럼 보였다. 아카리는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못 본 척했다.
와타나베는 계속 말했다.
“다만 정보 관리는 철저히 해야 합니다. 외부 업체에 제공할 자료 범위는 이사회 승인 후로 제한하지요.”
그 말은 절차처럼 들렸다.
하지만 타카하시는 알고 있었다. 절차라는 말은 가끔 문을 닫는 데 가장 예의 바른 열쇠가 된다.
“알겠습니다.”
그는 대답했다.
아카리는 고개를 들었다.
타카하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강해서가 아니라, 이미 많이 흔들려본 사람일 때가 있다.
회의가 끝난 뒤 사람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누군가는 점심 약속을 말했고, 누군가는 경비 절감 때문에 기념 리셉션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투덜거렸다. 창립 30주년이라 해도, 1991년의 회사는 샴페인보다 예산안을 먼저 보았다. 호황이 끝났다는 사실은 회의실의 물병 개수부터 줄이는 것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카리는 자료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타카하시 부장님, 오늘 회의록은 저녁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리 없는 범위에서.”
그 말은 이번에도 조용했다. 아카리는 잠깐 그를 보았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 정도가 좋았다. 말이 적은 사람들끼리는, 침묵의 양도 맞춰야 한다.
아카리가 회의실을 나간 뒤, 와타나베가 창가에 서 있는 타카하시에게 다가왔다.
“자네, 여전히 꼼꼼하군.”
“업무니까요.”
“그 말도 여전하고.”
타카하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와타나베는 창밖의 진보초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헌책방 간판들, 우산을 든 사람들, 좁은 골목 사이로 지나가는 택시. 오래된 종이의 도시였다.
“세상이 바뀌고 있어. 책만으로는 안 되지.”
타카하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건 오래전부터 그랬습니다.”
아주 평범한 문장이었다.
그런데 와타나베의 얼굴에서 미소가 잠깐 사라졌다.
“昔のことを言っても仕方ない。(옛날 일을 말해도 소용없어.)”
“そうですね。(그렇군요.)”
타카하시는 짧게 답했다.
그는 원망하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원망은 뜨거운 감정이고, 그는 너무 오래 식어 있었다. 하지만 식은 재도 손에 묻으면 흔적이 남는다.
와타나베는 다시 웃었다.
“30주년이야. 좋은 모양으로 마무리하게. 회사 얼굴이니까.”
“네.”
와타나베가 나간 뒤 회의실에는 물병 몇 개와 접힌 자료, 그리고 오래된 사진들이 남았다. 타카하시는 벽의 사진 앞으로 걸어갔다. 1961년의 두 신입사원은 여전히 같은 방향을 보고 웃고 있었다.
그는 사진 속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생각보다 오래 버틸 거라고.
그리고 오래 버틴다고 해서,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건 아니라고.
타카하시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0.5초의 침묵.
그는 회의 자료를 모아 서류철에 넣었다. 표지에는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創立三十周年記念事業 (창립 30주년 기념사업)
삼십 년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회의였다.
그런데 타카하시는 이상하게, 스무 해 전의 회의실에 다시 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회의실 문을 닫기 전, 그는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도 벽에 걸린 사진 속에서
젊은 두 남자가,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었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本とともに、三十年。 [ほんとともに、さんじゅうねん。]
책과 함께, 삼십 년.
창립 30주년 로고 시안에 새겨진 문장. `〜とともに`는 "~와 함께"라는 격식 있는 표현으로, 세월과 사물을 짝지을 때 자주 씁니다.
2. 昔のことを言っても仕方ない。 [むかしのことを いっても しかたない。]
옛날 일을 말해도 소용없어.
와타나베가 타카하시에게 던진 말. `〜ても仕方ない`는 "~해도 어쩔 수 없다"로, 체념이나 대화를 차단할 때 쓰는 어른의 관용 표현입니다.
3. そうですね。 [そうですね。]
그렇군요.
타카하시의 짧은 응답. 동의처럼 들리지만 감정을 감추는 어른의 완충어로, 억양에 따라 뜻이 크게 달라지는 대표적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