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카페의 창가자리
9화, 카페의 창가자리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1

키치죠지의 카페 창가는, 유이가 잠시 세상에서 오롯이 혼자가 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노카시라 공원 쪽으로 난 골목 끝. 낮에는 유모차와 자전거가 지나가고, 저녁에는 대학생들과 회사원들이 조금 느린 걸음으로 지나가는 곳. 시부야처럼 들뜨지 않았고, 긴자처럼 비싸지 않았고, 진보초처럼 낡지만도 않았다. 키치죠지는 이상하게 중간에 있는 동네였다. 미래와 과거 사이. 학생과 어른 사이.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 알아봐줬으면 하는 마음 사이.
유이가 문을 열자, 작은 종이 울렸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 안쪽의 마스터가 고개를 들었다.
“늘 마시던 걸로?”
“네, 부탁드려요.”
유이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물컵 하나와 작은 꽃병이 있었고, 꽃은 조금 시들어 있었다.
유이는 그런 게 좋았다. 너무 싱싱한 꽃은 왠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조금 시든 꽃은 사람을 편하게 했다.
가방에서 두 권의 노트를 꺼냈다.
하나는 취재 노트. 가죽 표지에 세이와미디어그룹 자료가 끼워져 있었다.
다른 하나는 작은 일기장. 아무도 본 적 없는 노트였다.
취재 노트에는 질문이 있었다.
일기장에는 대답하지 못한 마음이 있었다.
마스터가 커피를 내려놓았다.
“공부?”
“졸업 작품이에요.”
“기특하네.”
유이는 웃었다.
“아직 한참 멀었어요.”
기특하다는 말은 조금 간지러웠다.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칭찬은 대체로 말이 아니라, 늦은 밤 식탁 위에 남겨둔 간식이나 접힌 쪽지 같은 모양으로 왔다.
유이는 취재 노트를 펼쳤다.
星和メディアグループ(세이와미디어그룹).
출판. 영상. 음악. 게임. CD-ROM.
단어들은 반짝였다.
하나의 이야기가 책 밖으로 걸어나와 화면이 되고, 노래가 되고, 누군가의 방 안 게임기가 되는 세상.
유이는 그 미래가 좋았다. 이야기가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건, 사람도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뜻 같았다.
하지만 멀리 간 이야기는 여전히 처음의 이야기일까.
유이는 펜 끝으로 종이를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적었다.
物語は、誰のものか。 (이야기는 누구의 것인가.)
잠깐 손이 멈췄다.
이 질문은 산업에 대한 질문 같았지만, 어쩐지 사람에 대한 질문 같기도 했다.
옆자리 여학생 둘은 월요일 밤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마지막 장면에서 왜 그렇게 말했는지, 도쿄의 남자들은 정말 저렇게 다정한지. 유이는 이따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사랑은 TV 속에서는 또렷했지만, 현실에서는 대체로 모호하거나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창밖으로 가벼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 없는 사람들이 가게 처마 밑으로 잠깐 들어왔다가 다시 뛰었다.
유이는 작은 일기장을 열었다.
일기는 중학생 때부터 썼다. 처음에는 숙제처럼 썼고, 나중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 위해 썼다. 말하지 않은 것들은 마음 속에 오래 두면 무거워졌다. 종이에 옮기면 사라지지는 않아도,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작아졌다.
오늘의 날짜를 적고, 한참을 비워두었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썼다.
今日のお父さんは少し疲れていた。 (오늘 아빠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그 아래에 또 썼다.
でも、何も聞かなかった。 (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유이는 펜을 멈췄다.
아버지는 묻지 않는 사람이었다.
유이도 묻지 않는 딸이 되었다.
그것이 다정함인지, 겁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조각으로 남아있었다. 점심 도시락의 빨간 토마토. 흰 손수건. 머리를 빗겨주던 손.
“由依、背筋を伸ばして。(유이, 등 펴고.)”라고 말하던 목소리.
유이는 그 목소리를 완전히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 말해주었던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일기장 아래쪽에, 결국 같은 문장을 적었다.
お母さんなら何て言うかな。 (엄마라면 뭐라고 했을까.)
그 문장은 질문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답이 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써보는 문장. 우체통에 넣지 않는 편지 같은 문장.
커피는 조금 식어 있었다.
유이는 창밖을 보았다. 비에 젖은 거리 위로 사람들의 얼굴이 흐려졌다. 세상은 가끔 유리창 너머에 있을 때 가장 견딜 만했다. 가까이 가면 너무 시끄럽고, 너무 멀리 있으면 외로웠다.
가방 안쪽에서 세이와 회사 소개 책자가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은색 글씨가 빛났다.
物語を、未来へ。 (이야기를, 미래로.)
유이는 그 문장을 다시 보았다.
좋은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좋은 말일수록 누군가 먼저 다치고 지나간 자리 위에 세워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랐다.
마스터가 컵을 치우러 왔다.
“한 잔 더 할래요?”
유이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은 입에서 쉽게 나왔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말인지, 어머니가 없어서 배운 말인지, 아니면 도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들 조금씩 배우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카페를 나설 때 비는 거의 그쳐 있었다.
유이는 일기장을 가방 깊숙이 넣었다. 취재 노트는 손에 들었다. 하나는 숨겨야 하는 노트였고, 하나는 보여줘야 하는 노트였다. 사람에게도 그런 노트가 있었다. 남에게 보여주는 얼굴과, 혼자서만 들여다 보는 얼굴.
키치죠지 역으로 걸어가며 유이는 생각했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묻게 될까.
아빠는 처음에 어떤 미래를 봤느냐고.
그리고 그 미래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아직은 묻지 않았다.
1991년 가을의 도쿄에서는, 묻지 않은 질문들이 사람들보다 먼저 전철을 타고 다녔다.
유이는 그 질문들 중 하나를 가방 안에 넣은 채, 개찰구를 통과했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物語は、誰のものか。 [ものがたりは、だれのものか。]
이야기는 누구의 것인가.
유이가 취재 노트에 적은 문장. 산업에 대한 질문 같지만 사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한 이중의 물음. `〜のものか`는 소유·귀속을 묻는 구조로, 단정보다는 반문에 가깝습니다.
2. 背筋を伸ばして。 [せすじを のばして。]
등 펴고.
유이의 어머니가 남긴 목소리. `背筋を伸ばす`는 문자 그대로는 "허리를 곧게 펴다"지만, 관용적으로 "자세를 바로 하다·마음가짐을 다잡다"라는 뜻으로도 씁니다.
3. お母さんなら何て言うかな。 [おかあさんなら なんて いうかな。]
엄마라면 뭐라고 했을까.
유이가 일기장에 반복해 적는 습관적 문장. `〜なら`는 가정, `〜かな`는 혼잣말·자문의 종조사로, 답이 없는 걸 알면서도 묻는 마음을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