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따뜻한 雪(눈)
10화, 따뜻한 雪(눈)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1

칸다역 서쪽 뒷골목에는,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밤이 되면 생겨나는 가게들이 있었다.
작은 간판, 좁은 계단, 담배 냄새가 밴 문, 낡은 가라오케 기계.
사람들은 그곳을 スナック(스낵)이라고 불렀다.
술을 마시는 곳이기도 했고, 말하지 않기 위해 앉아 있는 곳이기도 했다.
스낵 雪(눈)은 여덟 명이 앉으면 가득 차는 가게였다.
마마는 저녁 7시가 되면 간판에 불을 켰다. 흰 글씨로 적힌 雪(눈)이라는 이름은, 이상하게 따뜻해 보였다.
마마에게는 규칙이 있었다.
첫 잔에는 무엇을 마실지 묻는다.
두 번째 잔에는 오늘 하루가 길었는지 본다.
세 번째 잔부터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기 쉬워진다.
그래서 마마는 세 번째 잔을 권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무너지러 오는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오는 것이니까.
목요일 밤, 아카리가 왔다.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렸다.
“어서 와요.”
마마가 고개를 들었다.
아카리는 연회색 정장 차림이었다. 어깨선은 단정했지만, 피로는 숨겨지지 않았다. 숨기려는 사람일수록 피로가 더 은은하게 드러났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수고했어요. 늘 마시던 걸로?”
“네. 미즈와리, 연하게요.”
아카리는 카운터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으로 손잡이를 한 번 정리했다. 왼손 약지는 비어 있었다. 마마는 보았지만, 보지 않은 얼굴을 했다.
스낵에는 그런 기술이 필요했다.
보되, 확인하지 않는 것.
알되, 아는 척하지 않는 것.
마마는 얇게 탄 위스키잔을 내밀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아카리는 한 모금 마셨다. 술이 목을 지나가는 동안에도 표정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밥은?”
“먹었어요.”
마마는 냉장고에서 작은 접시를 꺼냈다. 감자샐러드였다.
“서비스.”
아카리는 아주 잠깐 웃었다.
“잘 먹겠습니다.”
거짓말이 들켰다고 해서 꼭 벌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가끔은 사양보다 순수한 감사 인사면 충분했다.
가게 안 텔레비전에서는 경제 뉴스가 흘러나왔다. 주가, 부동산, 금리, 소비 심리. 어려운 단어들이 지나갔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그 단어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세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옆자리 남자는 조용히 말했다.
“아직 괜찮겠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카리는 두 번째 잔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만.”
“그래. 조심해서 가요.”
아카리는 고개를 숙였다.
문이 닫힌 뒤, 마마는 그녀가 앉았던 자리를 천천히 닦았다. 물기가 남지 않게, 손자국도 남지 않게. 사람들은 흔적을 남기고 가지만, 다음에 올 때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앉고 싶어 한다.
마마는 그 마음을 조금 알았다.
이틀 뒤, 타카하시가 왔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그의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었다. 오래된 회사원들은 맑은 날에도 비를 대비한다. 날씨보다 사람을 더 못 믿게 되는 나이가 있다.
“어서 와요. 타카하시 씨, 오늘도 수고했어요.”
“안녕하세요.”
“늘 마시던 걸로?”
“부탁합니다.”
타카하시는 카운터 맨 끝자리에 앉았다. 마마는 말없이 잔을 준비했다. 그의 병에는 高橋(타카하시)라는 작은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가게 안쪽에서 누군가 가라오케로 SAY YES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는 조금 높았고, 가사는 진심이 묻어 났다. 1991년의 도쿄에는 그런 노래가 많았다. 모두가 사랑을 말했지만, 정작 사람들은 가장 필요한 말 앞에서 자주 입을 닫았다.
마마가 잔을 놓았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타카하시는 잔을 들기 전, 손목시계를 보았다. 아주 짧은 침묵. 마마는 그 습관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늘은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네요.”
타카하시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얼굴이 있습니까.”
“있지요. 여긴 그런 얼굴을 한 사람들만 오니까요.”
타카하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잠시 뒤, 그가 말했다.
“회사가 30년이 됩니다.”
“そう。(그래요.)”
“長いですね。(길군요.)”
“長いわね。(길지요.)”
그게 전부였다.
마마는 더 묻지 않았다.
30년이 길었는지, 짧았는지.
그 안에 누가 남고 누가 밀려났는지.
왜 그가 창립 기념일을 축하하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지.
묻지 않아도 되는 질문은, 묻지 않는 편이 오래 남는다.
타카하시는 잔을 반쯤 비우고, 왼손 약지의 반지를 아주 천천히 돌렸다. 마마는 이번에도 보지 않은 얼굴을 했다.
“もう一杯?(한 잔 더?)”
타카하시는 고개를 저었다.
“今日はこれで。(오늘은 이만.)”
“無理しないでね。(무리하지 말아요.)”
그 말에 타카하시가 잠깐 멈췄다.
회사에서는 무리하지 말라는 말이 대체로 더 무리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 가게에서는, 정말 무리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네.”
그는 조용히 대답했다.
마지막 손님이 떠나고, 마마는 간판 불을 껐다.
카운터에는 빈 잔 두 개가 남아 있었다. 하나는 목요일에 아카리가 앉았던 자리. 하나는 토요일에 타카하시가 앉았던 자리. 같은 가게, 다른 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두 사람.
마마는 잔을 씻으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만 혼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게를 오래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외로움에도 비슷한 무늬가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왼손 약지의 빈자리를 만지고,
누군가는 오래된 반지를 돌린다.
누군가는 두 잔째에서 멈추고,
누군가는 첫 잔도 끝내기 전에 과거로 돌아간다.
가게 밖 칸다 골목으로 심야 택시가 지나갔다.
멀리서 술 취한 회사원들이 웃었고, 누군가는 공중전화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마마는 마지막으로 카운터를 닦았다.
“またね。(또 와요.)”
아무도 없는 가게에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 계절의 눈은 아직 오지 않았다.
雪(눈)이라는 이름의 가게 안에서도, 두 사람은 아직 서로를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마주침은 오래전부터 같은 의자 위에 준비되어 있다.
그저 같은 밤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長いですね。 [ながいですね。]
길군요.
타카하시가 회사 30년을 두고 흘리듯 내뱉은 말. `長い`는 시간·거리 모두 쓰지만, 여기서는 지나온 세월에 대한 감회를 담은 절제된 표현입니다. `〜ですね`는 상대와 감정을 공유하려는 종조사.
2. 無理しないでね。 [むりしないでね。]
무리하지 말아요.
스낵 마마가 타카하시에게 건넨 한마디. `無理する`는 "억지로 애쓰다·무리하다"라는 뜻으로, 회사에서 쓰이면 반어적이지만 여기서는 진심으로 상대를 아끼는 말이 됩니다. `〜ないでね`는 부드러운 부탁·당부.
3. またね。 [またね。]
또 와요. / 다음에 또.
마마가 빈 가게에 혼잣말처럼 남긴 인사. `また`는 "또, 다시"라는 부사, `ね`는 상대의 동의·여운을 부르는 종조사로, 짧지만 관계를 다음 만남으로 잇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