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12화

미사키의 친절

2026-07-16 · 읽는 시간 약 14분

12화, 미사키의 친절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1

12화 대표 이미지

미사키는 여전히 친절했다.

마루산 상사 IT추진실의 아침, 그녀는 누가 기침을 하면 목캔디를 내밀었고, 누가 야근을 하면 “無理しないでくださいね。(무리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커피를 두 잔 뽑아 하나를 건네고, 택시 방향이 같으면 같이 타자고 했다.

그 친절은 빠르고 밝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피할 이유가 없었다.

아카리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1991년 여름, 도쿄의 열기는 사무실 안까지 들어왔다. 에어컨은 돌아갔지만 복사기 앞은 늘 더웠고,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돌아오면 손수건으로 목덜미를 훔치기 바빴다.

그해 여름 미사키는 자주 아카리의 책상에 왔다.

“나카무라 선배, 점심 같이 먹어도 될까요.”

처음엔 아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사키는 말을 잘했다. 새로 생긴 파스타 가게, 백화점 세일, 어젯밤 드라마, 회사의 남자 직원들이 얼마나 눈치가 없는지. 그녀의 말은 가볍게 흘렀고, 아카리는 그 흐름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조금 쉬는 기분이 들었다.

직장에서 친구라는 것이 생길 수도 있구나.

서른둘이 되어서야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아카리는 조금 우스웠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뜻밖의 친절 앞에서는 처음처럼 서툴러진다.

어느 금요일 밤 회식이 끝나고, 두 사람은 같은 택시를 탔다. 니혼바시의 불빛이 젖은 유리창에 길게 번졌다. 미사키는 술기운에 얼굴이 조금 붉었다.

“선배는 자기 얘기를 전혀 안 하시네요.”

아카리는 창밖을 보았다.

“말할 만한 일이 없어요.”

“또 그렇게 말씀하시네요.”

미사키가 웃었다.

“저는 선배 편이니까요. 뭐든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 말은 따뜻했다.
너무 따뜻해서, 아카리는 잠깐 손을 녹이고 싶어졌다.

하지만 따뜻한 것은 손을 데우기도 하고, 오래 대고 있으면 화상을 남기기도 한다.

질문은 처음엔 작았다.

“아드님, 나이가 어떻게 돼요?”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미사키는 젓가락을 멈췄다.

“에? 고등학생이요? 선배, 젊은 엄마시네요.”

아카리는 물컵을 잡았다.

“그렇네요.”

그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야 했다.
그러나 사람의 사생활을 궁금해하는 마음은, 끝을 모르고 빨리 자라는 법이다.

다음 주에는 이혼 이야기가 나왔다.

“이혼하신 건 언제예요?”

“오래전 일입니다.”

“양육비 같은 거, 힘들지 않으세요.”

아카리는 그때 처음으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하야시 씨.”

그 호칭에 미사키의 얼굴이 잠깐 굳었다. 그전까지 아카리는 가끔 그녀를 “미사키 씨”라고 불렀다. 아주 가끔은 반말도 섞였다. 하지만 그날부터 다시 성씨가 되었다.

“その話は、したくありません。(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미사키는 당황한 듯 웃었다.

“ごめんなさい、心配で。(미안해요, 걱정돼서요.)”

걱정이라는 말은 편리했다.
걱정하면 물어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걱정하면 선을 넘어도 다정해 보였다.

아카리는 그때 알았다.
어떤 친절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자기 마음을 위한 것이라는 걸.

소문은 금요일 오후에 퍼졌다.

그날 복사기는 세 번이나 멈췄고, 탕비실의 냉장고는 제대로 닫히지 않아 물이 흘렀다. 사소한 고장들이 겹치는 날에는 사람의 말도 쉽게 새어 나간다.

아카리가 자료실에서 돌아오자, 사무실의 말소리가 한 번에 낮아졌다.

낮아진 말소리만큼 정확한 소문은 없다.

“고등학생 아들이라니...”

“이혼이 아니라는 거 진짜야?”

“그럼 몇 살 때 낳은 거야?”

아카리는 자기 책상에 앉았다. 펜 세 자루가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누가 건드린 것은 아닐 것이다. 아침에 자신이 급하게 두고 간 탓일 것이다. 그래도 그 흐트러짐이 이상하게 오래 눈에 들어왔다.

미사키가 다가왔다.

“선배, 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아카리는 서류철을 닫았다.

“하야시 씨.”

목소리는 낮았고, 정중했다.

“仕事に戻りましょう。(업무로 돌아가죠.)”

미사키는 입을 다물었다.

그날 이후 아카리는 미사키에게 반말을 쓰지 않았다. 택시도 같이 타지 않았고, 점심도 같이 먹지 않았다. 커피를 받지 않았고, 주말 약속에 답하지 않았다.

사람 하나를 마음에서 내보내는 일은 문을 세게 닫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매번 아주 조용히, 문을 열어주지 않는 일이었다.

지금 사무실에서 미사키는 또 웃고 있었다.

“나카무라 주임님, 이 자료 확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카리는 자료를 받았다.

“네. 확인하겠습니다.”

그뿐이었다.

미사키의 친절은 아직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누군가는 그것을 좋은 성격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분위기를 밝게 만든다고 했다. 아카리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은 겪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밝은 것이 모두 따뜻한 것은 아니고, 따뜻해 보이는 것이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걸.

퇴근 무렵, 아카리는 동양출판으로 보낼 회의 자료를 정리했다. 팩스 표지에 수신인을 적었다.

東洋出版 高橋部長(동양출판 타카하시 부장)

보낼 문장은 짧았다.

資料、添付いたします。 (자료 첨부합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ご確認のほど、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확인 부탁드립니다.)

아카리는 종이를 팩스기에 넣었다. 기계가 종이를 천천히 삼켰다. 회사에서 말은 자주 엉뚱한 곳으로 새어 나갔지만, 서류만큼은 목적지로 갔다. 적어도 서류는, 누군가한테서 들었다며 수군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아카리는 창에 비친 자신의 왼손을 보았다. 약지는 비어 있었다. 그 빈자리를 사람들이 보았고, 계산했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 빈자리로 그녀가 무엇을 지켜왔는지는.

전철은 강을 건넜다. 창밖으로 도쿄의 불빛이 흔들렸다.

아카리는 손을 무릎 위에 얹었다.
오늘은 약지를 만지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면 밥을 지을 것이다.
켄타가 물으면 “何でもない。(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이 좋은 거짓말인지 나쁜 거짓말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떤 거짓말은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넘기기 위해 필요했다.

그해 여름 이후, 아카리는 친절을 조금 덜 믿게 되었다.

대신 침묵을 조금 더 믿게 되었다.
묻지 않는 사람.
들어도 옮기지 않는 사람.
말하지 않아도, 말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세상에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카리는 전철 손잡이를 잡고 눈을 감았다.
열차는 어둠 속으로, 그리고 집이 있는 쪽으로 달렸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その話は、したくありません。 [そのはなしは、したくありません。]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카리가 미사키에게 처음으로 선을 그은 문장. `〜たくありません`은 `〜たくない`의 정중형으로, 감정을 억누른 채 거절할 때 쓰이는 어른의 화법입니다. 정중할수록 단호합니다.

2. 仕事に戻りましょう。 [しごとに もどりましょう。]
업무로 돌아가죠.
소문이 퍼진 뒤 아카리가 미사키에게 남긴 한마디. `戻る`는 "돌아가다", `〜ましょう`는 "함께 ~합시다"라는 권유 종조사. 사적 대화를 직장의 자리로 되돌리는, 조용한 문 닫기입니다.

3. 何でもない。 [なんでもない。]
아무것도 아니야.
아카리가 아들 켄타에게 하려던 말. `何でも`는 "무엇이든", `ない`는 부정으로, 직역은 "아무것도 아니다"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것을 감출 때 쓰이는 어른의 완충 표현. 하루를 넘기기 위한 거짓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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