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13화

서류상자 속 1971년

2026-07-16 · 읽는 시간 약 16분

13화, 서류상자 속 1971년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1

13화 대표 이미지

미사키의 친절은 늘 조금 늦게 식었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금방 사라지지도 않았다. 책상 한쪽에 놓인 종이컵 커피처럼, 아카리는 그 친절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결국 손대지 못했다.

오전 10시. 마루산상사 IT추진실의 전화가 울렸다.

“나카무라 주임, 전화입니다.”

아카리는 수화기를 받기 전, 책상 위 서류를 반듯하게 맞췄다. 이상하게도 아카리는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종이를 먼저 정리했다. 종이는 말대꾸를 하지 않았고, 삐뚤어진 줄을 맞추면 적어도 눈앞의 세계는 잠깐 괜찮아 보였다.

“전화 바꿨습니다. 나카무라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낮고 건조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양출판의 타카하시라고 합니다.”

타카하시 류지였다.

그의 목소리는 늘 늦가을 같았다. 아직 서늘하다고 말하기엔 이르고, 그렇다고 여름이라고 우기기엔 조금 건조한 목소리.

“오늘,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찾아뵙겠습니다.”

아카리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일 때문이라는 말은, 때로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된다는 허가증 같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미사키가 고개를 들었다.

“또 동양출판이에요?”

“네. 자료실 확인 건입니다.”

미사키는 웃었다.
그 웃음은 친절했지만, 친절한 웃음이 늘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나카무라 주임, 요즘 그쪽 일 많네요.”

“창립 30주년이라서요.”

아카리는 그렇게만 말했다.
어떤 말은 길어지는 순간, 남의 이야기가 되기 시작했다.

점심 무렵, 니혼바시의 하늘은 흐렸다. 신문 가판대에는 주가와 금리 이야기가 어제보다 작게 실려 있었다.

버블이 끝났다는 말은 이미 몇 번이나 돌았지만, 사람들은 아직 그 말을 점심시간에 크게 꺼내지 않았다.

대신 도시락값이 올랐다거나, 회식이 줄었다거나, 부장님이 택시 대신 전철을 탔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했다.

큰 일은 늘 작은 말들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아카리는 진보초역에서 내려 낡은 출구 계단을 올라갔다. 헌책방 앞에는 습기를 먹은 책 냄새가 낮게 깔려 있었다. 오래된 책은 이상했다. 버려진 것처럼 보이면서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동양출판 건물 5층 복도 끝, 자료실 문 앞에 타카하시가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갑자기 부탁드려 죄송합니다.”

그는 문을 열었다.

자료실 안은 낮인데도 어두웠다. 창문은 있었지만, 창밖 건물 벽이 너무 가까워 빛이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철제 선반마다 박스가 쌓여 있었고, 박스 옆면에는 굵은 매직으로 연도가 적혀 있었다.

아카리는 그 숫자 앞에서 잠시 멈췄다.

연도는 숫자일 뿐인데, 어떤 숫자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이쪽입니다.”

타카하시가 1971이라고 적힌 박스 하나를 내려놓았다. 상자 위의 먼지가 작게 흩어졌다.

“먼지가 많네요.”

아카리가 말하자 타카하시는 민망한 얼굴로 웃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오래전 자료이다보니...”

오래 열지 않은 상자에는 오래 닫아둔 마음 같은 냄새가 났다. 아카리는 흰 장갑을 끼고 끈을 풀었다.

상자 안에는 회의록, 손으로 고친 원고 뭉치, 오래된 사진, 누렇게 변한 기획서들이 차례로 들어 있었다.

그중 한 파일 표지에 검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1971年 営業企画資料(1971년 영업기획 자료).

아카리는 파일을 조심히 펼쳤다.

아동문학 영상화안.
음성 교재 공동 제작안.
방송국 제출용 기획서.
저작권 2차 이용 정리안.

그리고 또 하나.

新媒体展開企画案(신매체 전개 기획안).

표지 아래쪽에는 젊은 글씨체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高橋龍司(타카하시 류지).

아카리는 저도 모르게 타카하시를 보았다. 그는 상자 안쪽을 보는 척했지만, 이미 그 종이를 보고 있었다.

사람이 어떤 기억을 알아보는 순간은 이상했다. 눈동자가 먼저 늦어지고, 손가락이 나중에 멈췄다.

“이건...”

아카리가 말을 흐리자 타카하시는 조용히 말했다.

“예전 일입니다.”

예전 일.
사람들은 자주 그렇게 말했다.
상처도 예전 일, 꿈도 예전 일, 누구를 좋아했던 일도 예전 일. 하지만 예전 일이라는 말이 정말로 예전으로 보내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카리는 업무용 기록지에 항목을 적기 시작했다.

자료명. 연도. 작성자. 관련 부서. 보존 상태. 데이터베이스 입력 여부.

“이것도 입력 대상인가요?”

타카하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자료실 문이 열렸다.

와타나베 이사였다.

“아, 여기 계셨군요.”

그는 늘 등장보다 먼저 향수 냄새부터 풍기는 사람이었다. 검은 양복은 반듯했고, 넥타이는 빈틈없이 매여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가끔 자기의 말에도 주름이 없다고 믿었다.

“무슨 자료입니까?”

타카하시가 파일을 덮으려 하자, 와타나베의 시선이 더 빨랐다.

“1971년... 영업기획?”

그는 잠깐 웃었다. 웃음이라고 하기엔 짧고, 기침이라고 하기엔 의도가 있었다.

“그런 것까지 입력합니까? 실패한 기획서까지 넣으면 끝이 없습니다.”

아카리는 펜을 멈추지 않았다.

타카하시는 말했다.

“회사 기록입니다. 기록이라고 다 남길 필요는 없습니다. 창립 30주년 자료라면, 정리된 역사여야죠.”

정리된 역사.

아카리는 그 말을 들으며 박스 안쪽의 먼지를 보았다. 먼지는 아무 편도 들지 않았다. 그저 오래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쌓여 있을 뿐이었다.

와타나베가 아카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카무라 씨, 부탁드리고 있는 것은 정리입니다.”

아카리는 고개를 들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整理は、消すことではありません。(정리는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료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복도 저편에서 복사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지잉, 지잉. 누군가의 서류가 복제되고 있었다.

세상에는 복사되는 말이 있고, 사라지는 말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사라져야 할 말은 오래 남고, 남아야 할 이름은 쉽게 지워졌다.

와타나베는 웃음을 거두었다.

“외부 협력사 의견으로 참고하겠습니다.”

그 말은 예의 바르게 닫힌 문 같았다.

타카하시가 파일 위에 손을 올렸다.

“残してください。(남겨 주세요.)”

아카리는 그를 보았다.

“입력하겠습니다.”

와타나베는 더 말하지 않았다. 다만 나가기 전, 파일 표지를 다시 한 번 보았다. 그 시선은 종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종이 안에 남은 시간을 보는 듯했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타카하시가 먼저 말했다.

“곤란하게 해드렸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보통은 물러서죠.”

“업무상 필요한 말이었습니다.”

아카리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실은 업무상만은 아니었다.

아카리는 지워진 적이 있는 사람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설명할 기회를 잃은 사람.
말하기 전에 이미 소문이 먼저 도착한 사람.
어떤 과거를 숨겨야만 계속 일할 수 있었던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기록은 거창한 정의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작은 표식이었다.

타카하시는 상자 안에서 오래된 회의록을 하나 더 꺼냈다. 1971년 11월. 종이 끝이 바스러질 듯했다.

회의록 중간에는 빨간 펜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物語は、本棚で終わらない。(이야기는 책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카리는 그 문장을 읽었다.
젊은 사람이 쓴 문장 같았다. 아직 세상이 자기 말을 들어줄 거라고 믿는 사람이 쓴 문장.

타카하시는 웃지 않았다.

“그때는... 그런 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안 됩니까?”

그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진보초의 낡은 간판들이 젖고, 헌책방 주인이 급히 비닐을 씌우는 모습이 보였다. 1991년의 도쿄는 아직 밝았다. 하지만 밝은 도시는 이상하게, 젖으면 더 오래되고 진지한 풍경으로 변했다.

“지금은,” 타카하시가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 누가 가져갈까 봐 겁이 납니다.”

아카리는 펜촉을 눌렀다. 기록지 위에 작은 점이 생겼다.

“그래도 남겨야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카리는 잠깐 생각했다.

“記録は残ります。(기록은 남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사람은 모르는 척할 수 있어도요.”

타카하시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아주 오래전에 해줬어야 할 말을, 이제야 들은 사람처럼.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아카리는 동양출판을 나왔다. 가방 안에는 입력 대상 목록 사본이 들어 있었다. 1961년 창립 사진, 1964년 첫 베스트셀러 홍보물, 1971년 영업기획 자료. 그리고 보존 등급을 다시 확인해야 할 파일 몇 개.

비는 많이 오지 않았다. 우산을 쓰기엔 애매하고, 그냥 걷기엔 옷깃이 젖는 비였다. 사람들은 그런 비를 가장 귀찮아했다. 확실히 젖으면 포기라도 할 텐데, 애매하게 젖으면 계속 괜찮은 척해야 했으니까.

전철 안에서 아카리는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회사원 둘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회사 분위기, 좀 그렇지?”

“그래도 아직 괜찮겠지.”

괜찮다는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속 괜찮다고 말했다. 다른 말을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코토구의 작은 집에 도착했을 때, 켄타의 도시락통은 싱크대 옆에 씻겨 놓여 있었다. 뚜껑이 조금 비뚤게 닫혀 있었다. 아카리는 그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잘 먹었다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빈 도시락은 때때로 답장 같았다.

한편, 니시오기쿠보의 조용한 집에서는 타카하시가 젖은 양복 어깨를 털고 있었다.

현관 안쪽에서 유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다녀왔어.”

그는 구두를 벗다가 잠시 멈췄다. 가방 안에는 1971년 자료 목록 사본이 들어 있었다. 상자 하나를 연 것뿐인데, 어쩐지 오래 닫아둔 방의 창문까지 조금 열린 기분이었다.

유이는 방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비 왔지?”

“조금.”

“우산은?”

“썼어.”

짧은 대화였다.
하지만 그 짧은 대화 속에도, 아직 말하지 않은 것들이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타카하시는 서재로 들어가 불을 켰다. 책장 아래칸, 오래된 원고들이 꽂힌 자리 옆에 오늘의 사본을 넣었다.

그는 한 번 더 그 문장을 떠올렸다.

物語は、本棚で終わらない。(이야기는 책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날 밤, 도쿄에는 눈이 오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의 상자 하나가 열렸고, 그 안에서 오래된 문장이 먼지를 털고 일어났다.

아직 누구의 이름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증거가 남았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整理は、消すことではありません。 [せいりは、けすことではありません。]
정리는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아카리가 와타나베에게 조용히 맞선 문장. `整理`는 "정리·정돈", `消す`는 "지우다·없애다". `〜ことではありません`은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정중한 정의 부정으로, 감정 없이 원칙을 세우는 어른의 말입니다.

2. 残してください。 [のこしてください。]
남겨 주세요.
타카하시가 파일 위에 손을 얹으며 아카리에게 건넨 요청. `残す`는 "남기다·남겨두다", `〜てください`는 정중한 부탁. 짧지만 이 화 전체의 의지를 압축한 세 어절입니다.

3. 物語は、本棚で終わらない。 [ものがたりは、ほんだなで おわらない。]
이야기는 책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1971년 회의록에 빨간 펜으로 남은 문장. `本棚`는 "책장", `終わる`는 "끝나다". 젊은 타카하시가 20년 전 믿었던 미래이자, 지금 다시 열린 상자에서 먼지를 털고 일어난 오래된 신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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