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15화

이야기를 미래로

2026-07-16 · 읽는 시간 약 17분

15화, 이야기를 미래로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1

15화 대표 이미지

아카사카의 빌딩들은 낡은 출판물 따위는 믿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리문은 손가락 자국 하나 없이 닦여 있었고, 로비 바닥은 사람의 구두보다 먼저 빛났다.

진보초의 헌책방들이 오래된 문장을 품고 있었다면, 이곳의 건물들은 아직 오지 않은 문장을 먼저 인쇄해 놓은 것 같았다.

미래. 성장. 확장. 멀티미디어.

1991년의 도쿄에서 그런 말들은 대체로 은색으로 적혀 있었다.

유이는 세이와미디어그룹 본사 앞에서 가방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취재 노트, 녹음기, 여분 건전지, 필름 카메라, 학생증. 지난번에는 쇼룸을 둘러보았다. 은색 로고와 전시된 포스터들, 책에서 영상으로, 영상에서 음악과 게임으로 옮겨가는 화려한 설명들.

오늘은 자료실이었다.

유리문 안쪽으로 은색 로고가 보였다.

세이와미디어그룹

그 아래에는 짧은 문장이 붙어 있었다.

物語を、未来へ。(이야기를, 미래로.)

이야기를 미래로 보낸다는 말은 밝았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원래 누구에게서 왔는지는 관심조차 없는 문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로비 안으로 들어서자 접수대 여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유이는 허리를 숙였다.

“오늘 3시에 약속되어 있는 타카하시 유이라고 합니다.”

“동도대학의 타카하시 님이시군요.”

“네.”

여직원은 방문자 명부를 내밀었다. 유이는 이름과 학교명을 적었다. 회사명 칸은 비어 있었다. 그 빈칸이 이상하게 크게 느껴졌다.

잠시 뒤, 단정한 회색 정장을 입은 여성이 로비로 나왔다. 서른 전후쯤 되어 보였고, 머리는 낮게 묶여 있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말끝은 정확했다.

“홍보부의 오오츠카입니다.”

유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오오츠카는 명함을 내밀었다. 유이는 두 손으로 받았다. 순간 가방 안을 뒤적이다가 멈췄다.

“죄송합니다, 명함은 아직 없어서요.”

오오츠카가 웃었다.

“학생이시니까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을 듣고도 유이는 아주 조금 부끄러웠다.
대학생은 아직 어른이 아니어서 봐주는 자리와, 곧 어른이 되어야 해서 봐주지 않는 자리 사이에 서 있었다.

오오츠카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지난번에는 쇼룸을 보셨으니, 오늘은 자료실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거울 같은 벽에 두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오오츠카는 이미 회사 사람이었고, 유이는 아직 학생이었다. 같은 좁은 공간에 서 있었지만, 두 사람의 구두 소리는 다른 바닥을 밟고 있는 것 같았다.

자료실에 들어가려면 이름을 적어야 했다.

누가, 언제, 무엇을, 왜 보러 왔는지.
종이는 그런 것들을 묻는 데 익숙했다. 사람이 대답하기 어려워 하는 것을 종이는 칸만 비워두고 기다리곤 한다.

오오츠카가 얇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열람 신청서

유이는 이름, 소속, 열람 목적을 적었다.

동도대학 문학부 신문학과
졸업 제작
매스콤 믹스 전개의 역사 조사

사유를 적는 칸 앞에서 유이는 잠깐 멈췄다.

알고 싶어서요, 라고 쓸 수는 없었다.
이상해서요, 라고 쓸 수도 없었다.
어쩐지 누군가의 말이 빠져 있는 것 같아서요, 라고 쓰면 너무 길었다.

유이는 결국 가장 안전한 말을 골랐다.

자료 확인을 위해

자료실 안은 쇼룸과 전혀 달랐다.
조명은 낮았고, 공기는 조금 건조했다. 철제 서가에는 연도별 바인더가 줄지어 있었다. 반짝이는 모니터도, 데모용 스피커도 없었다. 대신 누렇게 변한 사내보와 오래된 회의록, 권리 처리 파일들이 조용히 꽂혀 있었다.

미래는 로비에 전시되어 있었고, 과거는 대개 복도 끝이나 창문 없는 방에 있었다.

“이쪽이 저희 회사의 연표입니다.”

오오츠카가 자료실 입구 벽면을 가리켰다.

1962년, 출판부 설립.
1969년, 영상기획실 신설.
1971년, 映像企画室 拡張(영상기획실 확장).
1978년, 음악출판부 설립.
1985년, 게임소프트 사업 진출.
1990년, CD-ROM 개발 프로젝트 시작.

유이는 1971이라는 숫자 앞에서 시선이 머물렀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그 숫자는 요즘 들어 자꾸 눈에 남았다. 낡은 못처럼, 지나가다가 한 번씩 옷깃을 건드렸다.

“1971년에 영상 쪽이 크게 확장됐네요.”

오오츠카는 연표를 올려다보았다.

“네, 워낙 오래된 자료들이라 일부 확인 중입니다.”

일부 확인 중.

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었다.

'오래된 자료는 대체로 확인 중이라고 불린다.'

오오츠카가 파란색 바인더 몇 권을 꺼냈다.

“이쪽이 사내보입니다. 복사를 원하시는 부분에는 포스트잇을 붙여 주세요.”

“네.”

유이는 흰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겼다.

1971년 4월호
영상기획실 확장
새로운 시대의 이야기 전달 방식
외부 출판사와의 연구회

그리고 한 페이지 중간에 작은 제목이 있었다.

本棚を出る物語(책장을 나서는 이야기).

유이는 펜을 멈췄다.

책장을 나서는 이야기.

그 문장은 오래된 종이 위에 있었지만 이상하게 새것처럼 보였다. 누가 처음 말했는지 알 수 없는 문장들은 대체로 그렇게 회사의 것이 되어 있었다. 너무 반듯해서, 오히려 아무도 의심하지 않게 되는 말들.

유이는 그 페이지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다음 바인더에는 연구회 사진이 있었다. 긴 테이블, 검은 안경을 쓴 남자들, 재떨이, 커피잔, 그리고 뒷줄에 서 있는 젊은 직원들. 사진 아래 설명은 흐릿했다.

외부 출판사와의 공동연구회
참석자 명부 별지

유이는 바인더 뒤쪽을 넘겼다.
별지는 없었다.

“참석자 명부는 있습니까?”

오오츠카가 바인더를 확인했다.

“별지는 빠져 있네요. 오래된 것이라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누락.

유이는 그 단어를 노트에 적었다.

빠졌다는 말은 이상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있다가 빠진 것은 전혀 다른데, 서류 위에서는 둘 다 같은 얼굴을 했다.

그때 자료실 안쪽 문이 열렸다.

검은 터틀넥 위에 사원증을 건 마른 남자가 들어왔다. 손에는 낡은 파일 청구서가 들려 있었다. 머리는 조금 길었고, 눈 밑에는 잠을 덜 잔 사람 특유의 그림자가 있었다.

“권리 처리 파일, 아직 이쪽에 있습니까.”

오오츠카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혼마 씨, 자료실에서는 조용히 부탁드립니다.”

“지금도 충분히 조용한 것 같은데요.”

오오츠카는 유이를 돌아보았다.

“이쪽은 개발부의 혼마입니다.”

혼마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혼마입니다.”

오오츠카가 덧붙였다.

“사내에서는 바라문디 X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혼마가 귀찮다는 듯 웃었다.

“그냥 그렇게 불릴 뿐입니다.”

유이는 그 이름을 노트에 적었다.

바라문디 X

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 프로젝트명 같기도 했다. 어쩌면 둘 다 아닐 수도 있었다. 90년대의 회사들은 가끔 사람에게도 코드명을 붙였다. 그래야 그 사람이 야근을 해도, 잠을 못 자도, 덜 사람처럼 보이는지도 몰랐다.

유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CD-ROM 개발에도 오래된 권리 자료가 필요한가요?”

혼마는 파일 청구서를 손가락으로 접었다 폈다 했다.

“필요합니다. CD는 그저 그릇이 늘어난 것뿐입니다. 알맹이가 없으면 그냥 상자예요.”

유이는 펜을 멈췄다.

그릇. 알맹이. 그리고 오래된 권리 자료.

지난번 편의점에서 켄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의 이야기는 돌려줄 수 있어요?'

오오츠카는 혼마에게 말했다.

“혼마 씨, 잠깐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타카하시 씨는 졸업 제작으로 취재 중이세요.”

혼마는 벽시계를 보았다.

“3분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요.”

유이는 녹음기를 꺼내도 되는지 눈으로 물었다.

“녹음해도 괜찮을까요?”

“하세요.”

녹음기의 빨간 불빛이 켜졌다.

유이가 물었다.

“귀사에 작품을 여러 매체로 전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혼마는 잠시 생각했다. 홍보부 사람처럼 매끄럽게 말하려는 듯하다가, 곧 포기한 얼굴이 되었다.

“저희 회사는 작품을 오래 키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오츠카가 안도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혼마가 바로 덧붙였다.

“반은 사실이고, 반은 바람입니다.”

오오츠카의 얼굴이 아주 조금 굳었다.

“혼마 씨.”

혼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작품은 자랍니다. 하지만 자라는 도중에 이름이 떨어져 나가는 일도 있어요.”

자료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유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빌린 것은 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혼마가 유이를 똑바로 보았다. 장난기 없는 눈이었다.

“물건이라면 돌려줄 수 있죠.”

“이야기는요?”

혼마는 손에 든 파일 청구서를 내려다보았다.

“회사에서는 돌려준 셈 치는 겁니다.”

오오츠카가 조금 빠르게 웃었다.

“혼마 씨, 학생에게 어려운 얘기 하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혼마는 그렇게 말하고도 별로 죄송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안쪽 서가에서 파일 하나를 꺼냈다. 투명 파일 표지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社外秘(사외비).

혼마는 그것을 품에 안듯 들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인용한다면 제 개인적인 감상으로 해 주세요.”

“네.”

문이 닫혔다.

오오츠카는 잠시 난처한 표정이었지만, 곧 다시 홍보부의 얼굴로 돌아왔다.

“혼마 씨는 말투가 조금 독특해서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유이는 그렇게 말하고 바인더를 다시 넘겼다.

한 시간 뒤, 유이는 회의실에서 오오츠카와 짧은 추가 인터뷰를 했다. 오오츠카는 홍보부답게 매끄럽게 대답했다.

“하나의 작품을 여러 매체로 전개한다는 뜻이군요.”

“네. 궁극적으로 독자와의 접점을 늘린다는 취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접점. 독자.

모두 좋은 말이었다.
좋은 말은 회의실 조명 아래에서 특히 반듯해 보였다.

유이는 마지막 질문을 하기 전, 녹음기의 빨간 불빛을 확인했다.

“'이야기를, 미래로'라는 문구가 있잖아요.”

“네.”

“미래는 누구의 것일까요?”

오오츠카는 잠시 말문이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유이는 그 멈춤을 보았다.

곧 오오츠카는 홍보부의 얼굴로 돌아왔다.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의 것, 아닐까요.”

좋은 대답이었다.
너무 좋아서, 어쩐지 조금 외롭게 느껴졌다.

취재가 끝날 무렵, 오오츠카는 복사본 몇 장을 유이에게 건넸다.

“요청하신 부분입니다. 다만 참석자 명부는 상태가 좋지 않아 일부만 확인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이는 복사본을 받아 들었다.

외부 출판사와의 공동연구회
참석자
동양출판 영업기획부 타카------

거기서 글자가 잘려 있었다.

유이는 손끝으로 그 끊어진 부분을 눌렀다.

동양출판.
아버지의 회사 이름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하늘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카사카의 빌딩 유리창마다 저녁 불빛이 켜졌다.

회사원들은 한 손에 서류가방을 들고 빠르게 걸었다. 누군가는 택시를 잡았고, 누군가는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버블이 끝났다는 말은 아직 도시의 표면까지 올라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걸음은 이미 조금 빨라져 있었다.

오늘 세이와 자료실에 다녀왔다고 말할까.
1971년 자료를 봤다고 말할까.
동양출판이라는 이름이 있었다고 말할까.

말하지 않는 것과 숨기는 것은 다르다고, 유이는 스스로에게 말해두었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그 둘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구분하기 어려웠다.

밤 9시가 조금 넘어 니시오기쿠보 집에 도착했을 때, 거실에는 작은 스탠드 불만 켜져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서재 쪽에서 타카하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와.”

그는 안경을 벗으며 거실로 나왔다. 넥타이는 풀려 있었고, 셔츠 소매는 반쯤 걷혀 있었다. 유이는 그 모습이 낮의 어떤 회사원보다 더 오래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늦었구나.”

“취재가 길어졌어.”

“그렇구나.”

유이는 가방끈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오늘 세이와 자료실에 다녀왔어.”

타카하시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이번에는 모르는 척하지 않았다.

“자료실 말이구나.”

“응. 1971년 영상기획실 확장 자료를 봤어. 외부 출판사랑 공동연구회를 했더라.”

타카하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해는 모두가 조금 서두르고 있었어.”

“아빠 회사도?”

“그랬지. 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으니까.”

유이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는 더 말할 수 있는 얼굴이었지만, 아직 말할 준비가 덜된 얼굴이기도 했다.

“나중에 그 얘기 들려줄 수 있어?”

타카하시는 잠시 생각했다.

“언젠가 제대로 이야기할게.”

제대로.

그 말은 늦어도 괜찮다는 말 같았고, 지금은 어렵다는 말 같기도 했다. 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방으로 들어온 유이는 세이와 자료실에서 받은 복사본을 책상 위에 펼쳤다.

사내보. 연표. 연구회 사진.
그리고 흐릿한 참석자 명부 사본 한 장.

잘린 글자 뒤에는 어떤 이름이 있었을까.

유이는 노트를 열고 오늘의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미래를 취재하러 갔다.
그런데 미래라고 적힌 문 아래에는, 늘 과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창밖으로 주오선 막차 소리가 멀어졌다.
도쿄는 여전히 밝았고, 은색 로고는 이제 유이의 책상 위 복사본 속에서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

반짝이는 것들은 대체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손가락 자국도 잘 남았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物語を、未来へ。 [ものがたりを、みらいへ。]
이야기를, 미래로.
세이와미디어그룹의 슬로건. `〜を〜へ`는 목적어와 방향을 짧게 잇는 구조로, 광고 카피에서 자주 쓰입니다. 미래를 향한다는 밝은 문장이지만, 그 이야기가 원래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묻지 않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2. 本棚を出る物語。 [ほんだなを でる ものがたり。]
책장을 나서는 이야기.
1971년 세이와 사내보의 소제목. `本棚`는 "책장", `〜を出る`는 "~을 나가다·벗어나다". ep13에서 타카하시가 남긴 `物語は、本棚で終わらない`(이야기는 책장에서 끝나지 않는다)와 짝을 이루는 문장으로, 누구의 말이 누구의 사보로 옮겨갔는지를 묻게 합니다.

3. 社外秘。 [しゃがいひ。]
사외비. (회사 밖 유출 금지)
혼마가 들고 나간 파일 표지 도장. `社外`는 "회사 밖", `秘`는 "비밀". 회사 자료의 열람·유통을 제한하는 관용 표시로, 일본 기업 문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기입니다. 이 화에서는 미래를 말하는 회사가 무엇을 감추는지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 이전 화 다음 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