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아직 정리 중
16화, 아직 정리 중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1

별지에는 본문에 다 들어가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이름이 길어서, 사정이 복잡해서, 아직 확정되지 않아서, 혹은 누군가 굳이 본문에 넣고 싶어 하지 않아서.
그래도 별지는 별도로 붙어 있어야 했다.
떨어져 나가면, 본문은 멀쩡한 얼굴로 거짓말을 하게 되니까.
니시오기쿠보의 아침 식탁 위에는 복사본 몇 장이 놓여 있었다.
유이는 밤새 몇 번이나 접었다 편 종이를 아버지 앞에 조심스럽게 밀어놓았다.
외부 출판사와의 공동연구회
참석자
동양출판 영업기획부 타카------
글자는 거기서 끊겨 있었다.
타카하시는 안경을 고쳐 쓰고 그 종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커피는 식어가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주오선 열차 소리가 낮게 지나갔다.
“아빠 이름이야?”
유이가 물었다.
타카하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은 모르는 것을 생각할 때보다, 아는 것을 말할 때 더 오래 침묵할 때가 있었다.
“아마, 그럴 거야.”
유이는 숨을 작게 들이켰다.
“그럼 세이와랑 공동연구회에 간 적 있어?”
“있어. 오래전 일이야.”
“왜 말 안 했어?”
타카하시는 종이 끝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숨기려고 한 건 아니야.”
그 말은 조금 낡아 있었다.
어른들이 자주 쓰는 말이었다. 숨기려던 건 아니지만, 말하지 않았고, 말하지 않은 시간은 어느새 숨김과 비슷한 모양이 되어버리는 말.
유이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이름이 잘려 있어서 더 이상해 보여.”
타카하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만 보고 단정하지 않는 편이 좋아.”
“그럼 나머지는 어디 있어?”
“아마 동양출판 쪽 자료에 남아 있을 수도 있어. 확인해볼게.”
“확인하면 말해줄 거야?”
타카하시는 유이를 보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제대로 말할게.”
제대로.
지난밤에도 들었던 말이었다.
유이는 그 말이 약속인지, 유예인지 아직 구분하지 못했다. 다만 오늘의 아버지는 어제보다 조금 덜 멀리 있었다.
출근길의 진보초는 흐렸다.
동양출판 건물 앞 가로수 잎은 아직 완전히 물들지 않았지만, 바람은 이미 계절을 바꿔놓고 있었다. 회사 로비에는 창립 30주년 기념 포스터 시안이 세워져 있었다.
1961–1991. 本とともに三十年(책과 함께한 30년).
타카하시는 그 문구 앞에서 잠시 멈췄다.
책과 함께한 30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맞는 말만으로는 늘 조금 모자랐다. 책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문장들도 있었다.
오전 10시 11분, 타카하시는 마루산상사로 전화를 걸었다.
“나카무라 주임 부탁드립니다.”
잠시 뒤 아카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 바꿨습니다. 나카무라입니다.”
“동양출판의 타카하시입니다. 1971년 공동연구회 관련 자료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아카리는 메모지를 당겨 적었다.
공동연구회. 별지. 세이와.
전화 너머의 타카하시는 평소와 같았지만, 평소보다 한 박자 늦게 말을 골랐다.
“오후에 찾아뵈어도 괜찮을까요?”
아카리가 말했다.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미사키가 책상 너머로 고개를 들었다.
“또 동양출판이에요?”
“네. 자료 확인 건입니다.”
“창립 30주년이면 정말 할 일이 많네요.”
“오래된 회사일수록 확인할 게 많습니다.”
아카리는 그렇게만 말했다.
오래된 회사뿐 아니라 오래된 사람도 그랬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안쪽 서랍에는 확인하지 않은 것들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오후 2시, 아카리는 동양출판 자료실에 도착했다.
타카하시가 먼저 와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1971년 박스 두 개와 낡은 파일철 몇 권이 놓여 있었다. 상자 옆면에는 '영업기획', '외부연구회'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바쁘신데 감사합니다.”
아카리는 장갑을 끼고 파일철을 열었다.
회의 안내문. 참석 확인 팩스. 영수증. 교통비 정산서.
그리고 얇은 종이 한 장.
별지 1 참석자 명부
타카하시의 손이 멈췄다.
아카리는 천천히 그 종이를 펼쳤다.
동양출판 영업기획부 타카하시 류지
동양출판 영업기획부 와타나베
세이와 영상기획실 담당자 2명
와타나베의 이름 뒤쪽은 잉크가 번져 있었다. 하지만 성은 충분히 읽혔다.
자료실 안이 아주 잠깐 조용해졌다.
타카하시는 종이 위의 자기 이름을 내려다보았다. 이름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오래된 종이 위에 적힌 이름은 이상하게 낯설었다. 마치 젊은 시절의 자신이 남긴 신분증 같았다.
아카리는 업무용 기록지에 적었다.
1971년 공동연구회 참석자 명부 있음
상태: 일부 판독 곤란
관련처: 세이와 영상기획실
“공개 자료에 넣을 예정이십니까?”
아카리가 물었다.
타카하시는 잠시 생각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때 자료실 문이 열렸다.
와타나베 이사였다.
“아, 여기 계셨군요.”
그는 늘 우연처럼 들어왔지만, 정말 우연인 적은 많지 않았다. 회색 양복, 반듯한 넥타이, 그리고 인사보다 먼저 들어오는 시선.
“무슨 자료입니까?”
타카하시가 종이를 덮지 않았다.
“1971년 공동연구회 참석자 명부입니다.”
와타나베는 테이블 위 종이를 보았다.
그의 시선이 자기 성이 적힌 줄에서 아주 짧게 멈췄다.
짧았지만, 아카리는 보았다.
“그런 것도 남아 있었군요.”
와타나베가 웃었다.
“그 시절에는 업계 교류가 많았습니다. 특별한 자료는 아니죠.”
“특별하지 않더라도 기록입니다.”
타카하시의 목소리는 낮았다.
와타나베는 아카리를 보았다.
“나카무라 씨, 공개와 보존은 나눠서 생각해 주세요.”
아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보존하지 않은 자료라도 기록은 남겨야 합니다.”
와타나베의 웃음이 조금 옅어졌다.
“말은 맞습니다만, 회사의 역사는 독자에게 보여주는 얼굴이기도 합니다.”
아카리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얼굴을 정돈하는 것과 이름을 지우는 것은 다릅니다.”
그 말 뒤로 자료실의 먼지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와타나베는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테이블 위의 참석자 명부를 한 번 더 보고는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들지는 맙시다.”
문이 닫혔다.
타카하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카리는 파일철 안쪽을 더 확인했다. 참석자 명부 뒤에는 회의 주제 목록이 붙어 있었다.
영상화 권리의 정리
음성 교재화 가능성
출판물의 2차 이용
本棚を出る物語(책장을 나서는 이야기)
그 마지막 문장 앞에서 아카리의 펜이 멈췄다.
“이 표현, 세이와 자료에도 있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타카하시가 고개를 들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공동연구회 주제 목록이라면 양쪽 회사에 같은 문서가 남았을 수 있습니다. 문구의 출처를 확인하려면 양쪽 자료를 대조해야 합니다.”
아카리는 메모지에 적었다.
양사 자료 대조 필요
확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다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진실은 늘 멀어지기 마련이다.
같은 시간, 동도대학 세미나실에서 유이는 녹음기를 틀어놓고 있었다.
자료실에서 만난 혼마의 목소리가 작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저희 회사는 작품을 오래 키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유이는 받아 적었다.
개발부 本間(혼마)
작품을 오래 키운다.
반은 사실, 반은 바람.
녹음기에서 다시 혼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자라는 도중에 이름이 떨어져 나가는 일도 있어요.”
유이는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이름이 떨어져 나간다.
어제 본 참석자 명부의 잘린 글자가 떠올랐다.
高------.
반쪽짜리 이름.
옆자리 친구가 리크루트 수트 카탈로그를 덮으며 말했다.
“유이, 너 취재하다가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거 아니야?”
“깊이인지 아닌지도 아직 모르겠어.”
“세이와 같은 데는 홍보자료만 봐도 충분하지 않아?”
유이는 노트를 내려다보았다.
홍보자료는 회사가 보여주고 싶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유이가 보고 싶은 것은 그 얼굴의 표정이 아니라, 얼굴 옆에 남은 손가락 자국 같은 것이었다.
“충분한 건, 대체로 누가 정하는 걸까.”
친구는 웃었다.
“또 어려운 말 한다.”
유이도 따라 웃었다.
저녁 무렵, 유이는 오차노미즈와 진보초 사이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오늘은 켄타가 먼저 근무하고, 유이가 뒤를 이어받는 날이었다.
자동문이 열리자 익숙한 전자음이 울렸다.
어서 오세요.“
켄타가 계산대에서 고개를 들었다가 유이를 보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수고했어.“
켄타는 계산대 아래에서 인수인계 노트를 꺼냈다.
”우유는 10시 30분에 폐기예요. 복사용지가 부족해요. 그리고 잡지 별지가 한 장 떨어져 있었어요.“
”잡지 별지?“
켄타는 계산대 옆에 놓인 얇은 부록 종이를 가리켰다. 음악 잡지에서 빠져나온 가사 번역지였다.
”본지에 끼워두었습니다.“
유이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
”왜?“
켄타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별지가 없으면 다음 찾는 사람이 곤란할테니까요.“
유이는 웃었다.
”나카무라 군은 가끔 아무렇지 않게 중요한 말을 하네.“
”보통이죠.“
”보통이 잘 안 되니까 중요한 거야.“
켄타는 유니폼 앞치마를 벗으며 가방을 멨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
”누나도요.“
켄타가 나가고 유이는 계산대 안에 섰다.
형광등 아래의 편의점은 세이와 자료실과 전혀 달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닮아 있었다.
한쪽은 팔릴 물건을 정리했고, 한쪽은 지나간 시간을 정리했다.
그리고 둘 다, 다음 사람이 곤란하지 않도록 빠진 것을 제자리에 끼워 넣어야 했다.
밤 9시, 동양출판 자료실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아카리는 임시 분류표를 정리하고 있었다. 타카하시는 오래된 회의 주제 목록을 다시 읽고 있었다.
本棚を出る物語(책장을 나서는 이야기).
그는 낮게 말했다.
”비슷하군요.“
아카리가 물었다.
”무엇과 말씀이십니까?“
타카하시는 오래된 자기 기획서의 한 문장을 떠올렸다.
物語は、本棚で終わらない。(이야기는 책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옛날에 제가 쓴 문장과요.“
아카리는 펜을 멈췄다.
”그럼 더더욱 대조가 필요합니다.“
”증명할 수 있을까요?“
아카리는 잠시 생각했다.
”증명하는 건 늦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찾을 수 있게 만들어두는 건 지금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분류표 상태 칸에 적었다.
가등록
별지 있음
양사 자료 대조 필요
타카하시는 그 글자를 보았다.
기록은 사람을 구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없었던 셈 치는 일은 막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니시오기쿠보의 집에 돌아온 유이는 가방에서 복사본을 꺼냈다.
東洋出版 営業企画部 高------
그 반쪽짜리 이름 위에, 낮에 아버지가 한 말이 겹쳐졌다.
'반만 보고 단정하지 않는 편이 좋아.'
유이는 노트 한쪽에 적었다.
'반쪽 이름은 질문이 된다.
별지는 본문보다 늦게 작성되지만, 때로는 본문을 다시 읽게 만든다.'
창밖으로 주오선 막차 소리가 지나갔다.
도쿄는 여전히 밝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바빴고, 회사들은 여전히 자기 얼굴을 고치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빠진 종이 한 장이 다시 끼워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야기는 조금 덜 외로워졌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本とともに三十年。 [ほんとともに さんじゅうねん。]
책과 함께한 30년.
동양출판 30주년 포스터 시안 문구. `〜とともに`는 "~와 함께"라는 격식체, `三十年`은 "30년". ep08의 로고 시안 `本とともに、三十年。`이 완성형이 되어 로비 포스터에 걸린 모습입니다. 반듯한 말일수록 그 옆에 무엇이 빠졌는지가 더 잘 보입니다.
2. まだ整理中です。 [まだ せいりちゅうです。]
아직 정리 중입니다.
이 화의 부제이자 오오츠카·와타나베가 오래된 자료를 두고 반복하는 회사 언어. `まだ`는 "아직", `〜中`는 "~하는 중", `〜です`는 정중 종결. 편리한 말이지만, "정리"라는 이름 아래 무엇이 지워지는지는 묻지 않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3. 顔を整えることと、名前を消すことは違います。 [かおを ととのえることと、なまえを けすことは ちがいます。]
얼굴을 정돈하는 것과 이름을 지우는 것은 다릅니다.
아카리가 와타나베에게 조용히 맞선 문장의 일본어. `整える`는 "정돈하다·다듬다", `消す`는 "지우다", `違います`는 "다릅니다". ep13의 `整理は、消すことではありません`과 짝을 이루는 아카리의 두 번째 원칙 선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