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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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5 · 읽는 시간 약 8분

2화, 공유된 문서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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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라는 건 혼자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 출력했고, 누군가 읽었고, 누군가 도장을 찍었고, 누군가 옆자리 사람에게 넘겼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종이는 처음보다 조금 무거워졌다.

책임이 묻어서였다.

세이와미디어그룹의 공식 회신도 그랬다.

동양출판에 도착한 뒤, 그 사본은 다시 동양출판 안에서 돌기 시작했다.

회람판 위에 끼워진 종이 상단에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回覧(회람).

타카하시는 그 두 글자를 보고 또 보았다.

회람이라는 건 묘했다. 모두가 읽지만, 모두가 책임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름 옆에 도장을 찍어도, 나중에 가서는 “읽기만 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읽었다는 사실만은 바뀌지 않았다.

와타나베 이사는 이미 공유된 문서철을 들고 회의실에 들어왔다.

“이걸 전 부서에 돌릴 필요가 있습니까?”

타카하시는 회의실 창밖을 보았다. 눈은 녹았고, 도로는 말라가고 있었다. 어제의 흔적은 빠르게 지워지는 중이었다.

“전 부서는 아닙니다. 사사 편찬 관련 부서와 자료관리 담당자만입니다.”

“결국 회사 안에 소문을 내겠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소문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와타나베는 문서철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타카하시 부장님, 기록이라는 말이 요즘 참 편리해 보입니다.”

타카하시는 그를 바라보았다.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은 편리한가요?”

말이 끝나자 회의실 안이 조금 서늘해졌다.
큰소리는 없었다. 둘 다 큰소리를 낼 나이는 지났다. 대신 말끝이 낮아질수록 오래된 감정은 더 잘 들렸다.

와타나베는 천천히 앉았다.

“제 이름이 들어간 문장 하나로, 너무 멀리 가시는 것 아닙니까.”

“아직 멀리 가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디까지 가실 생각입니까?”

타카하시는 문서철 위의 비고란을 보았다.

高橋案/渡辺氏経由(타카하시안/와타나베 씨 경유).

“적어도 여기까지는 가야죠. 제 이름이 왜 그곳에 있고, 이사님 이름이 왜 그 옆에 있는지.”

와타나베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에도 말은 있었다.
다만 해독하기 어려울 뿐이었다.

그날 오후, 세이와미디어그룹에서는 다른 종류의 회람이 돌았다.

오오츠카는 홍보부 회의실에서 상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 상사는 회신 사본을 테이블 위에 놓고, 목소리를 낮췄다.

“공식 답변은 이미 나갔습니다. 지금 와서 뒤집을 생각은 없어요. 다만 앞으로 추가 질의가 오면 전부 법무를 통하게 하세요.”

“네.”

“그리고 혼마 씨가 개인적으로 말하는 일은 없게 해주세요.”

오오츠카는 고개를 들었다.

“개인적으로요?”

상사는 조금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오오츠카 씨도 알잖아요. 그 사람, 말이 너무 곧아요. 회사에서 곧은 말은 가끔 흉기처럼 보입니다.”

오오츠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곧은 말이 문제인지, 곧은 말을 문제로 만드는 회사가 문제인지.
그런 질문은 회사라는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회의가 끝난 뒤, 오오츠카는 개발부로 갔다. 혼마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코드와 오류 메시지가 줄지어 있었다.

“혼마 씨.”

“또 충고 시간입니까?”

“농담처럼 말하지 마세요. 이번엔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혼마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그녀를 보았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런 얘기죠?”

오오츠카가 한숨을 쉬었다.

“그 표현은 제가 한 게 아니에요.”

“회사에서 하는 말은 대체로 누가 했는지 모르게 되어 있죠.”

“혼마 씨.”

“쓸데없는 게 뭡니까? 장부에 있던 걸 있었다고 말하는 게요? 아니면 누군가의 이름이 빠졌다고 말하는 게요?”

오오츠카는 문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저도 그게 쓸데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방식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혼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모니터를 가리켰다.

“프로그램도 그래요. 오류가 나면 어디서 시작됐는지 로그를 봅니다. 로그를 지우면 당장은 조용해지죠. 대신 같은 오류가 또 납니다.”

“사람 일을 프로그램처럼 말하지 마세요.”

“사람 일이 더 심하니까요. 사람은 오류가 나도 자기가 오류라고 잘 안 하거든요.”

오오츠카는 웃을 뻔하다가 참았다.
혼마는 불편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불편한 사람 중에는 꼭 필요한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회신 사본을 접어 파일에 넣었다.

“앞으로는 저를 통하세요. 제가 막겠다는 게 아니라, 조율하겠다는 뜻이에요.”

혼마가 그녀를 보았다.

“기록에 남습니까.”

“남겨야죠.”

오오츠카는 그렇게 말하고 개발부를 나왔다.

유이는 동도대학 도서관 2층에서 지도교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졸업 작품 기획서 수정안이 놓여 있었다. 제목은 정하지 못해 연필로 적어 두었다.

‘이야기가 이동할 때 사라지는 이름들.’
부제: 1990년대 미디어 믹스 산업과 기록의 문제.

지도교수는 기획서를 천천히 읽었다. 읽는 동안 유이는 교수의 손끝만 보았다. 종이를 넘기는 속도가 빠른지 느린지에 따라 대략적인 반응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교수는 마지막 장을 덮고 말했다.

“주제는 좋아. 그런데 너무 가까워.”

유이는 이미 예상한 말이었다.

“아버지 회사가 관련되어 있어서요?”

“응. 취재자가 대상과 너무 가까우면,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반대로 일부러 차갑게 굴게 돼.”

유이는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교수는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당사자와 너무 가까워. 이건 단점이 될 수도 있어.”

유이는 잠시 생각했다.

“오히려 가까워서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교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이는 곧장 말을 이었다.

“물론 가까워서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실명은 다루지 않으려고요. 적어도 졸업 작품에서는요. 특정 회사의 고발이 아니라, 기록에서 이름이 어떻게 빠지는지를 보고 싶어요.”

교수는 팔짱을 끼고 잠시 창밖을 보았다.

“그럼 기준을 세워. 어디까지 쓰고, 어디서 멈출지. 그 선을 네가 못 세우면, 이야기가 너를 끌고 갈 거야.”

유이는 노트에 적었다.

선을 세울 것.

교수는 펜으로 기획서 한쪽을 두드렸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허락받아야 할 부분은 허락받아. 딸로서가 아니라 취재자로.”

그건 멀어지라는 말이 아니라, 제대로 가까워지라는 말처럼 들렸다.

저녁 무렵, 아카리는 마루산상사에서 퇴근하기 전 마지막으로 대조표를 열었다.

세이와 공식 회신은 이제 ‘참고자료’가 아니었다.
정식 출처가 생겼다.

確認済(확인 완료).

그 네 글자를 입력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확인 완료라고 적는 순간, 문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다. 그냥 찾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찾은 다음에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남았다.

미사키가 퇴근 가방을 들고 다가왔다.

“아직 안 가요?”

“곧 갑니다.”

“나카무라 주임님, 요즘 계속 늦네요.”

“프로젝트 마감 전이라서요.”

미사키는 아카리의 화면을 보지는 않았다. 대신 책상 위에 놓인 도장 케이스를 보았다.

“도장이라는 거, 참 이상하죠. 찍으면 끝난 것 같고.”

아카리는 케이스 뚜껑을 닫았다.

“끝났다는 표시일 때도 있고, 시작됐다는 표시일 때도 있죠.”

“나카무라 주임님은 모든 말을 일처럼 받아요.”

“일이니까요.”

미사키는 잠깐 웃다가,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그래도 조심해요. 회사에서 기록을 너무 좋아하면, 사람들이 싫어해요.”

아카리는 미사키를 보았다.

그 말은 충고였을까, 경고였을까.
아니면 오래전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었지만 못 한 말이었을까.

“알겠습니다.”

아카리는 짧게 대답했다.

집에 돌아오니 켄타는 식탁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교과서 옆에는 지난번 진로 희망 조사서 사본이 접혀 있었다.

“아직 그거 갖고 있었어?”

“그냥요.”

켄타는 연필을 굴리며 말했다.

“도장 찍히면, 진짜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요.”

아카리는 외투를 의자에 걸었다.

“그렇지. 그래서 조심해야 해.”

“그럼 도장 찍힌 서류는 다 믿어도 돼요?”

아카리는 잠시 생각했다.

“서류만 믿으면 안 돼.”

켄타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왜 남겨요?”

“서류까지 없으면, 더 믿을 게 없어지니까.”

켄타는 그 말을 곱씹는 얼굴이었다.

아카리는 부엌으로 가다 말고 덧붙였다.

“서류는 답이라기보다, 질문이 남아 있는 자리야. 누가 썼는지, 왜 썼는지, 누가 봤는지. 그런 걸 묻게 해주니까.”

켄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이해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안심한 얼굴이었다.

그날 밤, 와타나베는 집이 아니라 긴자의 작은 바에 있었다.

그는 전화로 연락했던 세이와의 옛 지인, 쿠로다를 만났다. 쿠로다는 세이와 총무 쪽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었다. 젊었을 때는 와타나베와 몇 번 술자리를 함께했고, 이제는 서로의 흰머리를 못 본 척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쿠로다는 위스키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회신은 이미 결재 끝났습니다. 홍보, 총무, 법무까지 다 돌았어요.”

와타나베는 낮게 물었다.

“정정은 어렵겠습니까?”

“정정할 게 있으면 하겠죠. 그런데 정정하려면 정정한 기록도 남습니다.”

와타나베의 눈빛이 굳었다.

쿠로다는 그를 똑바로 보았다.

“이제 와서 손대면 흔적이 남습니다.”

바 안쪽에서는 오래된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버블의 끝자락에 남은 술집들은 아직 반짝였지만, 테이블마다 대화는 예전보다 낮아져 있었다. 사람들은 돈 이야기보다 인사 이동 이야기를 더 많이 했고, 새 차보다 대출 이야기를 더 조심스럽게 했다.

와타나베는 잔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그때는 다들 급했습니다.”

“그 말로 버틸 수 있는 일이 있고, 못 버티는 일이 있죠.”

쿠로다는 담배를 껐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입니다. 더 건드리지 마세요. 지금부터 손대면, 그건 1971년 일이 아니라 1991년 일이 됩니다.”

와타나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더 아팠다.
오래된 일이라서 흐려졌다고 믿었는데, 지금 손대는 순간 오늘의 일이 되어버린다는 말.

늦은 밤, 니시오기쿠보의 유이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기획서 수정안 맨 아래에 새 문장을 적었다.

‘본 작품은 특정 개인의 죄를 묻기보다, 기록에서 이름이 사라지는 과정을 살핀다.’

적고 보니 너무 딱딱했다.
유이는 한 줄을 더 썼다.

‘다만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는, 누군가의 시간이 함께 사라진다.’

그 문장이 마음 속 생각에 좀 더 가깝게 느껴졌다.

똑똑.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타카하시가 찻잔을 들고 들어왔다.

“아직 해?”

“응. 교수님이 선을 정하래.”

“좋은 말씀이네.”

유이는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아빠, 내가 이걸 쓰면 싫어?”

타카하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침묵은 도망치는 침묵이 아니었다.

“싫은 건 아니야. 무서울 뿐이지.”

“뭐가?”

“내가 잃어버린 걸 네가 대신 찾아주려다, 네가 뭔가를 잃을까 봐.”

유이는 찻잔을 받아 들었다.

“그럼 같이 선을 정하자.”

타카하시는 잠시 딸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좋겠다.”

창밖으로 주오선 막차 소리가 지나갔다.
도쿄는 오늘도 밝았다. 하지만 밝은 도시에도 각자의 선은 있었다. 회사가 그어놓은 선, 가족이 말하지 않고도 이해하는 선, 취재자가 스스로 세워야 하는 선.

그 선을 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제대로 긋는 일이었다.

그날 밤, 세 곳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

동양출판에서는 공유 문서가 금고 안에 들어갔고,
세이와에서는 공식 회신의 결재 기록이 파일에 묶였고,
유이의 노트에는 아직 연필로 그은 선 하나가 남았다.

선을 긋는다고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선이 있어야, 다음 발을 어디에 디딜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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