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5화

아이의 나이

2026-08-25 · 읽는 시간 약 9분

5화, 아이의 나이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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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랄 수록 사람들은 자꾸 과거를 계산했다.

아이 생일을 묻고, 어머니 나이를 떠올리고, 손가락으로 보이지 않는 뺄셈을 했다.
그 계산에는 아이를 위해 밥을 차린 아침도, 감기로 밤새 열을 재던 손도, 다음 월급날까지 남은 돈을 세던 마음도 들어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숫자를 좋아했다.
숫자는 사정을 묻지 않아도 되니까.

화요일 오후, 아카리는 마루산상사 근태표에 조퇴 시간을 적었다.

사유란에는 짧게 썼다.

保護者面談(보호자 면담).

그 글자를 쓰는 순간, 등 뒤에서 미사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학교 가세요?”

아카리는 펜 뚜껑을 닫았다.

“네.”

“아드님 면담이요?”

“그렇습니다.”

미사키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주 자연스럽다는 듯 말했다.

“고등학생이면 이제 진로 얘기 나오겠네요. 켄타 군이... 열다섯이라고 했죠?”

아카리는 잠깐 미사키를 보았다.

“네.”

“그러면 나카무라 주임님은...”

미사키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하지 않은 말이 더 많은 궁금증을 품고 있을 때가 있다.

아카리는 가방을 들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회사에서는 언제부턴가 아카리를 ‘이혼한 여자’로 알고 있었다.
아카리가 그렇게 길게 설명한 적은 없었다. 누군가 그렇게 이해했고, 누군가는 그렇게 전했고, 아카리는 그 말을 고치지 못했다.

아니, 고치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가장 덜 다치는 방법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남편이 없다’보다 ‘남편과 헤어졌다’를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였다. 같은 빈자리라도, 결혼이라는 문을 한 번 통과한 빈자리는 덜 불온한 것처럼 여겼다.

거짓말은 가끔 나쁜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저 하루를 넘기기 위해 시작됐다.
문제는, 하루를 넘기기 위해 만든 말이 15년을 따라온다는 데 있었다.

학교는 퇴근 시간의 도시와 다른 냄새가 났다.

분필 가루, 젖은 운동화, 급식실에서 오래전에 지나간 국 냄새, 난방기가 데운 낡은 커튼 냄새.

아카리는 교무실 앞 복도에서 잠시 멈췄다. 벽에는 학생들의 진로 희망 조사 결과가 붙어 있었다.

대학, 전문학교, 취업, 미정.

미정이라는 단어가 제일 작아보였다.
하지만 아카리에게는 그 단어가 가장 정직해 보였다.

담임 사카모토는 젊은 편이었다. 서른을 조금 넘겼을까. 넥타이는 조금 비뚤어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학생들의 프린트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나카무라 켄타 어머님이시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카리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늦지 않았나요?”

“아닙니다. 딱 맞춰 오셨습니다.”

사카모토는 서류 한 장을 꺼냈다.

家庭調査票(가정 조사표).

아카리는 그 종이를 보자마자 손끝이 조금 굳었다.
이름, 주소, 보호자, 연락처, 가족 구성. 학교도 회사처럼 칸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회사보다 조금 더 순진한 얼굴로 묻고 있을 뿐이었다.

사카모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 아버님 연락처가 비어 있어서요. 실례가 안 된다면, 비상 연락처를 하나 더 적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카리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비어 있는 칸은 늘 사람을 설명하게 만들었다.

“비상 연락은 제 회사와 집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아, 네. 물론입니다. 다만 혹시 다른 보호자분이...”

아카리는 고개를 들었다.

“제가 보호자입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교무실 책상 위에 쌓인 프린트들 사이로 또렷하고 무겁게 내려 앉았다.

사카모토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카리는 그렇게 말했다.

상대가 악의가 없다는 걸 아는 일과, 그 말에 다치지 않는 일은 별개였다.

면담은 성적 이야기로 넘어갔다.
켄타는 국어와 사회 과목 성적이 좋고, 수학은 기복이 있었다. 결석은 거의 없고, 제출물은 꼼꼼한 편이라고 했다.

“다만 진로 희망란에 미정이라고 써서요.”

“집에서도 아직 얘기 중입니다.”

사카모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습니다. 대학을 가야 하는지, 전문학교가 나은지, 아니면 바로 취업을 생각해야 하는지. 집안 사정도 있고요.”

집안 사정.

아카리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먼저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오늘은 물러서지 않았다.

“돈 때문에 미리 포기하게 하진 않으려고 합니다.”

사카모토가 아카리를 보았다.

“네.”

“다만 켄타가 뭘 원하는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같이 고민 중입니다.”

그때 교무실 문 쪽에서 작은 인기척이 났다.
켄타였다. 다음 순서라며 담임이 불렀는지, 복도 의자에서 기다리다 들어온 모양이었다.

“들어와도 돼.”

사카모토가 말했다.

켄타는 교무실 안으로 들어와 아카리 옆에 앉았다. 유니폼 단추는 목까지 채워져 있었고,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이가 너무 반듯하게 앉아 있으면, 어른은 가끔 마음이 아팠다. 편하게 굴 나이에 이미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 같아서.

사카모토가 부드럽게 물었다.

“나카무라, 진로는 아직 생각 중이지?”

“네.”

“요즘 관심 있는 건?”

켄타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카리는 대신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부모가 아이의 침묵을 못 견뎌서 대신 대답하기 시작하면, 아이는 몸과 함께 자기 생각을 성장시키기 어려웠다.

조금 지나 켄타가 말했다.

“뭔가 기록하는 일은... 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기록?”

“편의점에서 인수인계 노트 쓰는 거요. 다음 사람이 헷갈리지 않게 적는 거.”

사카모토는 살짝 웃었다.

“그것도 좋은 시작이네.”

켄타는 시선을 내렸다.

“대단한 건 아닙니다.”

아카리는 그때 조용히 말했다.

“대단한 일만 진로가 되는 건 아니야.”

켄타가 아카리를 보았다.

아카리는 사카모토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저도 아직 알아가는 중입니다.”

사카모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정해도 됩니다. 다만 2학년 올라가기 전에는 과목 선택을 해야 하니까, 그때까지 같이 이야기해보죠.”

면담은 그렇게 끝났다.

교무실을 나오자 복도에는 겨울 해가 얇게 남아 있었다. 창밖 운동장에서는 운동부 학생들이 아직 공을 차고 있었다. 해는 지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끝날 줄 모르고 뛰었다.

학교 정문을 나설 때까지 두 사람은 별말이 없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켄타였다.

“선생님이 뭐 물어봤어?”

“진로.”

“그거 말고.”

아카리는 걸음을 늦췄다.

켄타는 앞을 보며 말했다.

“아버지 연락처 같은 거.”

아카리는 대답을 조금 늦게 했다.

“응. 물어봤어.”

“뭐라고 했어?”

“내가 보호자라고.”

켄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뒤 켄타가 말했다.

“사람들, 계산하지?”

아카리는 켄타를 보았다.

“뭘?”

“내 나이랑 엄마 나이.”

바람이 불었다. 학교 앞 은행나무 가지가 마른 소리를 냈다.

아카리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응. 계산해.”

켄타는 씩 웃으려다 말았다.

“빠르네.”

“사람들 그런 건 빠르더라.”

“그럼 엄마도 싫어?”

“뭐가?”

“내가 열다섯 살인 거.”

아카리는 멈춰 섰다.

켄타도 두 걸음 더 가다가 멈췄다.
두 사람 사이에 저녁 공기가 놓였다.

“켄타.”

“응.”

“사람들이 계산하는 게 싫은 거지, 네 나이가 싫은 적은 없어.”

켄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카리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가 열다섯이라는 건, 내가 열다섯 해를 버텼다는 뜻이기도 해. 네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고.”

“엄마가 힘들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렇지.”

아카리는 숨을 골랐다.

“근데 힘들었다고 해서, 없었으면 좋았겠다는 뜻은 아니야.”

켄타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그 말은 너무 늦게서야 꺼낸 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늦더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사람은 모든 말을 제때 듣고 크지 못한다. 어떤 말은 한참 뒤에야 도착하고, 그래도 마음은 그 말을 받아들일 자리를 어떻게든 만든다.

켄타는 어색하게 목도리를 고쳐 맸다.

“우동 먹을래?”

아카리는 웃었다.

“왜 갑자기 우동이야?”

“이런 얘기 오래 하면 배고파져.”

“그건 맞아.”

두 사람은 역 쪽으로 걸었다.

그날 저녁, 오차노미즈와 진보초 사이 편의점에서는 유이가 켄타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점장은 계산대 아래 인수인계 노트를 펼치며 말했다.

“나카무라 군은 오늘 보호자 면담이라 쉰대.”

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노트에는 켄타의 글씨가 남아 있었다.

‘화요일은 학교 면담으로 쉽니다. 복사용지는 채워두었습니다. 우유 폐기 시간은 평소와 같습니다.’

끝에는 작은 글씨로 한 줄이 더 있었다.

‘눈이 온 뒤라 바닥이 미끄럽습니다.’

유이는 그 문장을 손끝으로 살짝 눌렀다.

보호자 면담.
동의서.
사용 범위.
아버지의 서명.

요즘 유이는 ‘보호’라는 말이 단순히 지켜주는 뜻만은 아니라는 걸 배우고 있었다.

보호는 대신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 있는 일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인수인계 노트 아래에 짧게 적었다.

‘확인했습니다. 내일 복사용지는 제가 한 번 더 볼게요.’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답장도 누군가의 하루 끝에 닿을 수 있었다.

같은 시각, 마루산상사 복도에서는 미사키가 자판기 앞에 서 있었다. 총무부 직원 둘이 커피를 뽑고 있었다. 이야기는 처음엔 연말정산에서 시작됐다. 배우자 공제, 부양가족, 아이 학원비.

그러다 누군가 말했다.

“나카무라 주임, 오늘 학교 갔다면서요?”

미사키는 종이컵을 잡은 채 잠깐 멈췄다.

“보호자 면담이래요.”

“아들이 고등학생이라고 했죠?”

“네. 열다섯.”

그다음 말은 아주 쉽게 나올 수 있었다.

나카무라 주임이 서른 둘세살 정도됐으니까... 아들을 낳은 나이가...

미사키는 그 말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계산도 알고 있었다. 그 말을 꺼내면 복도 공기가 어떻게 바뀌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종이컵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회사에서 남의 집 나이 계산까지 하면, 너무 피곤하지 않아요?”

총무부 직원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그렇다는 거죠.”

“그렇게 그냥 하는 말이 제일 오래 가더라고요.”

미사키는 그렇게 말하고 자판기 앞을 떠났다.

복도를 걸어가면서도 그녀의 얼굴은 개운하지 않았다.
방금 막은 말이 자신의 입에서 시작됐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았다고 해서, 시작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밤, 코토구의 작은 우동집.

아카리와 켄타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김이 올라오는 그릇 사이로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들렸다. 화면에서는 어느 드라마의 예고편이 나오고 있었다. 화려한 코트, 넓은 거실,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 젊은 사람들.

도쿄의 겨울은 화면 속에서 더 예뻐 보였다.
실제 겨울은 우동 국물처럼 뜨겁다가도, 문 열릴 때마다 금방 식었다.

켄타가 젓가락으로 면을 건지며 말했다.

“엄마.”

“응.”

“나중에 내가 뭘 하든, 엄마한테 덜 미안한 쪽으로 정하진 않을게.”

아카리는 젓가락을 멈췄다.

켄타는 국물 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엄마도, 나 때문에 덜 창피한 쪽으로 살려고 하지 마.”

아카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동집 주인은 텔레비전 볼륨을 조금 낮췄다. 아마 들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손님이 말할 때 텔레비전이 너무 시끄러우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뿐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 작은 배려 덕분에, 아카리는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알겠어.”

“진짜?”

“응. 진짜.”

켄타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면을 먹었다.

열다섯 살은 아직 어렸다.
하지만 아이의 생각이 어른보다 먼저 자라기도 한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아카리는 수첩을 펼쳤다.

‘아들이 열다섯이면, 사람들은 내 나이를 계산한다.’

그녀는 잠시 펜을 멈췄다가, 그 아래에 다시 썼다.

‘하지만 아들이 열다섯이면, 나는 열다섯 해 동안 엄마였다.’

그 문장은 서류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연말정산에도, 가정 조사표에도, 회사의 소문에도, 학교 면담 기록에도.

그래도 아카리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칸 밖에 적은 문장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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