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망년회(忘年会)
6화, 망년회(忘年会)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2

忘年会(망년회)라는 말은 이상했다.
한 해를 잊자는 모임이라는데, 사람들은 그런 자리에서 꼭 잊지 못할 말을 했다.
평소에는 꺼내지 못하던 말, 사무실 책상 위에서는 너무 노골적인 말, 술잔이 한 바퀴 돌고 나서야 겨우 농담인 척 나오는 말들.
잊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사람들은 자꾸 남의 사정을 기억해내려 했다.
금요일 저녁, 니혼바시 뒤편의 작은 이자카야에는 마루산상사 IT추진실 사람들이 길게 앉아 있었다.
작년보다 작은 방이었다. 작년에는 다다미방 두 칸을 붙였다고 했다. 올해는 예산이 줄어 한 칸으로 만족해야했다.
아무도 그 얘기를 크게 하지는 않았다.
대신 누군가 말했다.
“아늑해서 좋네요.”
도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줄어든 것을 아늑하다고, 늦어진 것을 신중하다고, 안 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계장이 잔을 들었다.
“올해도 신세 많았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합니다.”
사람들이 따라 잔을 들었다.
맥주 거품이 형광등 아래에서 잠깐 하얗게 빛났다.
아카리는 출입문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일찍 빠져나가기 쉬운 자리였다. 회식 자리에서 오래 버티는 요령은 많이 말하지 않는 것이고, 더 좋은 요령은 언제 나갈 수 있는지 계산해두는 것이었다.
옆자리 미사키가 작은 접시에 닭튀김을 덜어주었다.
“나카무라 주임님, 이것 좀 드세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너무 딱딱하게 있지 말고요. 망년회잖아요.”
아카리는 웃었다.
“잊는 게 그렇게 쉬우면 좋겠네요.”
미사키는 그 말에 잠깐 멈칫했다가, 금방 웃음을 되찾았다.
술자리는 점점 느슨해졌다. 누군가는 올해 프로젝트가 힘들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보너스가 작아졌다고 투덜거렸다. 젊은 사원 하나가 여직원들에게 맥주병을 건네며 말했다.
“그래도 술은 여사원이 따라주셔야 분위기가 살죠.”
미사키가 웃으며 병을 받으려 하자, 아카리가 먼저 말했다.
“각자 따르면 되지 않을까요.”
방 안이 아주 잠깐 조용해졌다.
농담처럼 넘어갈 수 있는 말이었지만,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계장이 얼른 웃었다.
“그래, 그래. 요즘은 각자 따라 마시는 게 좋지. 적당히 알아서들 하자고.”
다시 웃음이 돌았다.
하지만 웃음은 전보다 조금 얇아져 있었다.
아카리는 잔을 입에 대지 않고 내려놓았다. 술을 못 마시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오늘은 맑은 정신으로 집에 가고 싶었다. 켄타가 늦은 저녁을 먹었는지, 숙제는 했는지, 편의점 교대는 잘 끝났는지 생각이 자꾸 갔다.
그때 맞은편에 앉은 남자 사원이 말했다.
“나카무라 주임은 오늘 집에 아드님 혼자 있어요?”
아카리는 젓가락을 멈췄다.
“네. 혼자서도 잘 지냅니다.”
“고등학생이라면서요?”
“네.”
“아, 그러면 이제 엄마 손 덜 가겠네요. 아들이 열다섯이면 든든하겠네.”
그 말까지는 괜찮았다.
괜찮다고 해두고 넘길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옆에 있던 다른 사원이 술기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나카무라 주임, 정말 젊어 보이세요. 아들이 고등학생이면... 꽤 일찍 결혼하신 거죠?”
방 안의 젓가락 소리가 조금 줄었다.
미사키가 급히 끼어들었다.
“그런 얘기는 회식 자리에서 하지 마요.”
“왜요, 그냥 궁금해서 그러죠. 주임님이 워낙 동안이니까.”
그는 웃었다.
웃는 사람은 자기 말이 가벼워진다고 믿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듣는 사람 쪽에서는, 웃음이 붙었다고 말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아카리는 물컵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남자가 또 말했다.
“전 남편분은 연락 자주 하세요? 아니, 이런 건 실례인가.”
미사키의 얼굴이 굳었다.
아카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해주세요.”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방 안에서 가장 또렷하게 들렸다.
남자는 멋쩍게 웃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네. 괜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카리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계장이 얼른 따라 일어나려 했다.
“아니, 나카무라 주임. 아직...”
“내일 아침에 일찍 준비할 게 있어서요. 계산은 제 몫 남겨주세요.”
가게 문을 열자 찬바람이 들어왔다.
아카리는 목도리를 고쳐 매고 밖으로 나왔다.
니혼바시의 밤은 연말답게 눈부셨다. 하지만 그 밝음은 예전처럼 들뜨지 않았다. 회사원들은 술기운을 안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갔고, 가게 앞 택시 줄은 작년보다 짧았다. 거리에는 여전히 조명이 있었지만, 사람들의 대화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아카리는 역으로 가지 않고 잠시 걸었다.
전 남편.
일찍 결혼.
아들이 고등학생.
그 말들은 모두 누군가의 입에서 농담처럼 나왔지만, 아카리에게는 서류의 빈칸처럼 들렸다.
설명하라. 채워라. 맞춰라.
같은 시각, 오차노미즈와 진보초 사이 편의점에서는 켄타가 계산대 아래 인수인계 노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켄타는 초저녁 근무였고, 유이는 늦은 시간에 교대하기로 되어 있었다. 열다섯 살인 켄타에게 밤 10시는 늘 정확한 선이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유이가 들어왔다. 회색 코트에 천 가방, 손에는 세이와에서 온 두꺼운 봉투가 들려 있었다. 봉투 모서리가 가방 밖으로 조금 삐져나와 있었다.
“수고했어.”
켄타가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얼굴이 좀 피곤해 보이네.”
“학교 끝나고 바로 와서요.”
켄타는 노트를 가리켰다.
“우유 폐기 시간 적어뒀고, 복사용지는 채워뒀습니다. 잡지는 내일 아침 반품이에요.”
“완벽하네.”
켄타는 앞치마 끈을 풀며 시계를 보았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조심히 가.”
유이가 계산대 안쪽으로 들어섰다.
켄타는 문을 나서려다 잠깐 멈췄다.
“유이 누나.”
“응?”
“망년회는 진짜 잊는 모임이에요?”
유이는 예상 못 한 질문에 눈을 깜빡였다.
“글쎄. 어른들은 그렇게 부르긴 하는데.”
“엄마가 오늘 회식이라서요.”
유이는 잠깐 생각했다.
“잊는 모임이라기보다, 잊은 척 해보는 모임 아닐까.”
켄타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별로 효과가 없겠네요.”
“대체로 그렇지.”
두 사람은 작게 웃었다.
켄타가 나가고, 유이는 계산대 위의 노트를 다시 봤다. 켄타의 글씨는 오늘도 작고 반듯했다. 다음 사람이 헷갈리지 않게, 필요한 것만 적혀 있었다.
유이는 가방 속 세이와 봉투를 만졌다.
사용 범위.
비밀유지.
추가 취재.
그녀에게도 요즘 잊은 척해볼 수 없는 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자카야 안에서는 아카리가 나간 뒤에도 한동안 어색한 공기가 남아 있었다.
아까 말을 꺼낸 남자 사원은 괜히 젓가락을 들었다 놓았다.
“아니, 제가 그렇게 심한 말 했나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미사키가 물컵을 내려놓았다.
“심했어요.”
그 말은 작았지만 분명했다.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미사키 씨도 전에 나카무라 주임 이혼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미사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제가요?”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다들 그렇게 알고 있잖아요.”
다들.
그 말이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소문은 대체로 그렇게 주인을 잃곤 한다. 누가 처음 말했는지 사라지고, ‘다들’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미사키는 입술을 다물었다.
자신이 정확히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 물었고, 자신은 아마 모른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키우는 것 같다고 했을 수도 있고, 이혼했나 보다고 넘겼을 수도 있었다. 확실한 말은 아니었지만, 확실하지 않은 말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금방 사실의 옷을 입었다.
미사키는 술잔을 밀어냈다.
“저도 정확히 몰라요.”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왜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
미사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아카리에게 향한 것처럼 시작됐지만, 결국 자기 앞에 와 있었다.
밤 10시가 조금 넘어, 아카리는 편의점에 들어섰다.
그녀가 문을 열자 자동음이 울렸고, 계산대의 유이가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세요.”
아카리는 계산대 쪽으로 가기 전에 따뜻한 음료 코너 앞에 섰다. 캔커피, 우롱차, 콘수프.
손끝이 차가워서인지 무엇이든 따뜻한 것을 쥐고 싶었다.
유이가 조용히 말했다.
“따뜻한 음료도 있어요.”
점원으로서 하는 평범한 말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카리에게는 그 말이 이상하게 다정하게 들렸다.
아카리는 따뜻한 우롱차 두 캔과 고기만두 두 개를 골랐다.
계산대에서 유이가 봉투를 따로 나눠 담았다.
“만두는 따로 넣어드릴게요.”
“고마워요.”
아카리는 유이의 명찰을 보았다.
高橋.(타카하시)
흔한 성이었다.
그런데 요즘 아카리의 삶에는 그 성이 자주 나타났다. 동양출판의 타카하시 부장, 켄타가 말하던 편의점의 타카하시 씨, 그리고 지금 눈앞의 젊은 점원.
아카리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편이 나은 것들이 있다고, 그녀는 오늘도 생각했다.
유이는 영수증을 건넸다.
“조심히 가세요.”
“네. 고생하세요.”
가게를 나오며 아카리는 따뜻한 봉투를 품 안쪽으로 조금 끌어당겼다.
누군가의 말 때문에 차가워진 저녁이, 만두 두 개로 다 풀릴 리는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차가워진 손을 녹일 필요가 있었다.
코토구의 집에 도착했을 때, 켄타는 식탁에서 교과서를 펼쳐놓고 있었다.
“다녀왔어.”
“어서 와.”
켄타가 고개를 들었다.
“빨리 왔네.”
“응. 오래 있을 자리는 아니더라.”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아카리가 내민 봉투를 받았다.
“이거 우리 편의점 거네.”
“응. 타카하시라는 학생이 계산해줬어.”
켄타가 잠깐 멈췄다.
“유이 씨요?”
“이름은 못 봤어. 명찰엔 타카하시라고만.”
“아. 맞을 거야.”
아카리는 만두를 접시에 옮겼다.
“괜찮은 학생 같더라.”
켄타는 괜히 교과서 쪽을 봤다.
“네. 괜찮은 사람이에요.”
아카리는 그 말투를 듣고 살짝 웃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괜찮은 사람 같네.”
“뭐야, 그게.”
두 사람은 마주 앉아 고기만두를 먹었다.
편의점 만두는 조금 짰고, 속은 뜨거웠다. 켄타는 급하게 베어 물다 혀를 데일 뻔했고, 아카리는 오랜만에 작게 웃었다.
“회식에서 무슨 일 있었어?”
켄타가 물었다.
아카리는 잠깐 생각했다.
“사람들이 잊는 자리에서 기억하지 않아도 될 걸 기억하려고 했어.”
켄타는 그 말을 곱씹었다.
“엄마 나이 같은 거?”
아카리는 대답 대신 우롱차 캔을 열었다.
켄타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자기 만두를 반으로 갈라 식혔다.
“엄마.”
“응.”
“다음엔 가기 싫으면 가지 마.”
아카리는 웃었다.
“회사 사람들은 그런 걸 또 기억해.”
“그래도.”
켄타는 뜨거운 만두 속을 불며 말했다.
“기억하게 둘 걸 골라. 아무거나 기억하게 두지 말고.”
아카리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열다섯 살은 여전히 어려서 고기만두를 식히느라 입김을 불고 있었지만, 어떤 말들은 어른보다 훨씬 성숙하게 할 줄 아는 나이였다.
그날 밤, 미사키는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나카무라 주임이 이혼했다는 말.
그 말을 정말 자신이 시작했을까.
아니면 누군가 말한 것을 자신이 고개만 끄덕였을까.
둘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전철은 어두운 강을 지나고 있었다. 창밖은 잘 보이지 않았고, 유리에는 자신만 비쳤다.
미사키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친절한 척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너무 쉽게 정리해버린 건 아닐까.
도쿄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하지만 밝은 도시에서도 사람은 자기 얼굴을 피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忘年会(망년회)는 한 해를 잊는 자리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 밤, 몇 사람은 오히려 오래 기억해야 할 말을 하나씩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카리는 “여기까지”라고 말한 자기 목소리를,
켄타는 기억하게 둘 것을 고르라는 자기 말을,
유이는 따뜻한 것 하나가 누군가를 잠시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사키는 ‘다들’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던 자기 입을.
잊는 자리는 끝났다.
하지만 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이제 막 제 이름을 갖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