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편집점
7화, 편집점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2

편집은 버리는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유이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어떤 장면을 남기고, 어떤 말을 자르고, 누구의 얼굴을 오래 보여줄지 정하는 일. 그것은 지우는 일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책임지는 일에 가까웠다.
문제는 책임질 수 없는 장면도 있다는 것이었다.
동도대학 영상편집실은 늘 조금 어두웠다.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라벨이 붙은 비디오테이프와 카세트테이프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유이는 테이프 한 개를 넣고, 기계의 버튼을 눌렀다.
되감기.
정지.
재생.
화면 속 세이와미디어그룹 자료실은 조용했다.
오오츠카가 바인더를 꺼내는 손, 흐릿한 참석자 명부, 그리고 혼마가 문 쪽에서 돌아보던 짧은 순간.
그 짧은 순간을 몇 번이나 돌려보던 유이에게 조교가 말했다.
“테이프 시작점 맞추는 거,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니야?”
유이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시작점이 자꾸 바뀌어서요.”
“시작점은 하나잖아.”
“테이프는 그런데,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요.”
조교는 피식 웃고 지나갔다.
유이는 노트에 오늘의 작업표를 적었다.
세이와 자료실 장면 - 사용 가능.
혼마 인터뷰 공식 발언 - 확인 후 사용.
녹음 종료 후 발언 - 사용 보류.
아버지 관련 내용 - 당사자 확인 후 결정.
사용 보류.
그 네 글자를 적고 나자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금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아직 누구의 말인지, 누구에게 닿을 말인지, 어디까지 상처가 될지 모르는 것은 잠시 손에서 내려놓아야 했다.
편집실 전화가 울린 것은 오후 2시쯤이었다.
수화기 너머에는 오오츠카의 단정한 목소리가 있었다.
“확인 차 연락드렸습니다. 추가 취재 내용을 쓰실 경우, 확인용 원고를 먼저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인용 부분만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혼마 씨 발언은 개인 의견과 회사 공식 입장을 구분해서 표기 부탁드립니다.”
유이는 펜을 들었다.
“그 부분은 저도 조심하려고 합니다.”
오오츠카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조금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타카하시 씨도 아시겠지만, 어떤 말은 사실이더라도 너무 성급하면 다칠 수 있어요.”
“네.”
전화를 끊고 나서 유이는 한동안 수화기를 내려다보았다.
사실이어도 성급하면 다친다는 말.
요즘 유이 주변에는 그런 말들이 많았다.
아버지의 이름도, 혼마의 힌트도, 세이와의 장부도, 모두 사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에 가까워질수록, 유이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날 마루산상사에서는 월요일 아침부터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망년회가 지나간 자리에는 늘 이상한 정적이 남았다. 술자리에서는 웃고 넘긴 말들이, 출근하면 책상 위에 다시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아카리는 평소처럼 컴퓨터를 켜고, 동양출판 대조표 파일을 열었다.
확인 완료, 확인 중, 사용 제한.
이제 그녀의 화면에는 사람보다 상태값이 먼저 떠올랐다.
그때 미사키가 다가왔다.
손에는 커피가 없었다.
아카리는 그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미사키가 커피 없이 오는 날은 대체로 무언가를 말하러 오는 날이었다.
“나카무라 주임님.”
“네.”
“잠깐 괜찮아요?”
두 사람은 복사실 앞 작은 공간으로 갔다. 복사기는 아직 예열 중이었고, 종이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미사키는 한참 망설이다 말했다.
“망년회 때요. 제가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까... 그 전에 제가 흘린 말들이 있었을지도 몰라서요.”
아카리는 조용히 들었다.
“나카무라 주임님이 이혼했다는 말요. 제가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면서, 누가 그렇게 말하면 아니라고 안 했던 것 같아요.”
복사기 불빛이 천천히 깜빡였다.
아카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사과를 받는 일도 가끔 힘이 필요했다. 상대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순간, 듣는 사람에게는 그 미안함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해야 하는 또 다른 일이 생겼다.
“미사키 씨.”
“네.”
아카리는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어디까지 설명할지는 제가 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말이 사실처럼 돌고 있다면, 그건 바로잡아주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앞으로 제 가족 이야기는 제게 직접 물어봐 주세요. 대답할 수 있는 건 대답하고,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하겠습니다.”
미사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아카리는 잠시 후 말했다.
“사과는 받겠습니다. 하지만 바로 괜찮아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 말은 차갑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분명했다.
미사키는 더 붙잡지 않았다.
그녀도 처음으로 알게 된 듯했다. 사과는 끝맺음이 아니라, 이제부터 조심하겠다는 시작이라는 것을.
오후 늦게, 켄타는 학교에서 작문지를 받았다.
담임 사카모토가 칠판에 제목을 썼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아이들은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는 야구선수라고 장난스럽게 썼고, 누군가는 공무원이라고 적었다가 지웠다. 켄타는 원고지 첫 칸을 한참 비워두었다.
미정.
그 단어는 진로 희망 조사서에는 적을 수 있었지만, 작문 제목으로는 너무 짧았다.
켄타는 연필을 굴리다 천천히 첫 줄을 썼다.
‘저는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 줄에서 멈췄다.
그는 편의점의 인수인계 노트를 떠올렸다.
우유 폐기 시간, 복사용지, 잡지 반품, 미끄러운 바닥. 대단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작은 기록 덕분에 다음 사람이 덜 헤맸다.
켄타는 다시 썼다.
‘다만 제가 자리에 없는 시간에도, 누군가가 곤란하지 않게 무언가를 기록해서 남겨두는 일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 쓰고 나니 조금 창피했다.
그래도 지우지는 않았다.
방과 후, 켄타는 편의점 계산대에 섰다.
유이는 근무가 없는 날인데도 문구 코너 앞에 나타났다. 손에는 비디오 라벨과 검은 펜, 작은 수정 테이프가 들려 있었다.
“오늘은 손님이세요?”
켄타가 묻자 유이가 웃었다.
“응. 편집실에서 라벨이 다 떨어졌어.”
“비디오도 라벨 붙여요?”
“안 붙이면 나중에 못 찾아. 테이프가 다 똑같이 생겼거든.”
켄타는 바코드를 찍었다.
“사람도 이름표 없으면 못 찾나요?”
유이는 잠깐 멈췄다.
“가끔은.”
그녀는 계산대 위의 비디오 라벨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요즘 편집하다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들어. 화면에 찍히지 않은 것은 없던 일이 되는 걸까?”
켄타는 거스름돈을 세며 대답했다.
“안 찍혀도 있었던 건 있었던 거죠.”
“그렇게 생각해?”
“네. 제가 학교에 있을 때도 엄마는 회사에 있잖아요. 제가 안 봤다고 없는 건 아니니까.”
유이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
“나카무라 군은 가끔 편집하는 사람보다 정확하네.”
“편집실은 안 가봤습니다.”
“그러니까 더 정확한 걸지도 몰라.”
켄타는 봉투를 건넸다.
유이는 봉투를 받다가 물었다.
“버린 장면은 어떻게 해야 할까?”
“버렸다고 적어두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버린 것도 남는 거네.”
“네. 안 그러면 왜 없는지 모르니까요.”
유이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은 오늘 그녀가 작업표에 적은 使用保留(사용 보류)와 닮아 있었다. 쓰지 않는 것도, 남기는 방식이 있을 수 있었다.
밤이 되자, 유이는 다시 편집실로 돌아갔다.
건물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복도 끝 자판기 불빛만 켜져 있었고, 편집실 안에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테이프 감기는 소리가 작게 섞였다.
유이는 오늘 산 비디오 라벨을 꺼내 테이프에 붙였다.
세이와 자료실.
혼마 공식 인터뷰.
오프 기록 - 사용 보류.
그녀는 마지막 라벨을 붙이고 한참 바라보았다.
오프 기록.
테이프 안에는 없지만, 유이 안에는 남아 있는 말들.
아이디어에는 지문이 없지만, 서류에는 도장이 있다는 말.
그리고 혼마가 냅킨에 써준 세 단어.
그때 편집실 전화가 울렸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유이는 잠시 망설이다 수화기를 들었다.
“네, 동도대학 편집실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낮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혼마입니다.”
유이의 손끝이 굳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오오츠카 씨에게 확인용 원고를 보낸다고 들었습니다.”
“네. 아직 정리 중입니다.”
짧은 침묵이 있었다.
혼마가 말했다.
“홍보부에 보내기 전에, 저한테도 한 번 보여줄 수 있습니까?”
유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오오츠카 씨를 통해서요?”
“아니요, 직접요.”
그 말이 편집실 공기 안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직접.
그건 빠른 길이었다.
그리고 빠른 길은 대체로 정해진 선을 가로지르기 마련이다.
혼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가 한 말이 어떻게 잘리는지 보고 싶습니다. 지워지기 전에요.”
유이는 책상 위의 동의서 사본과 세이와 서류를 보았다.
사용 범위. 비밀유지. 확인용 원고.
그리고 아침에 작업표에 적은 사용 보류.
“혼마 씨.”
“네.”
“저는 절차 안에서 하겠습니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유이는 천천히 말했다.
“혼마 씨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절차 밖으로 빼고 싶지 않습니다. 오오츠카 씨에게 보낼 원고에, 혼마 씨 확인이 필요하다고 함께 적겠습니다.”
혼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웃었다.
“생각보다 단단하네요, 타카하시 씨.”
“단단한 건 아니고요. 겁이 많아서요.”
“겁이 많은 사람이 오래 갑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조금 섞여 있었지만, 아까처럼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공식적으로 기다리죠.”
“네.”
전화를 끊고 나서 유이는 한참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그녀는 조금 떨고 있었다.
무서워서라기보다, 방금 자신이 선을 하나 지켰다는 사실이 뒤늦게 몸에 도착한 것 같았다.
편집실 화면에는 정지된 장면 하나가 떠 있었다.
혼마가 자료실 문 앞에서 돌아보는 장면.
유이는 화면을 보며 노트에 적었다.
‘편집점은 자르는 곳이 아니라, 책임이 시작되는 곳.’
밤의 도쿄는 여전히 환했다.
아카리는 집에서 켄타의 작문 첫 줄을 읽고 있었고,
미사키는 책상 앞에서 내일 누구에게 어떤 말을 정정해야 할지 떠올리고 있었고,
유이는 편집실에서 꺼진 화면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남기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남긴다고 모두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번 정해야 했다.
무엇을 자를지.
무엇을 보류할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끝내 함께 남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