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10화

대답할 수 있는 데까지

2026-08-25 · 읽는 시간 약 11분

10화, 대답할 수 있는 데까지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2

10화 대표 이미지

토요일 아침, 유이는 식탁 위를 평소보다 오래 닦았다.

커피잔 두 개, 녹음기 하나, 새 카세트테이프 하나.
별것 아닌 물건들이었는데, 식탁 위에 놓이자 면접장처럼 보였다.

타카하시는 신문을 접어 옆으로 밀어 놓았다.

“꼭 이렇게 앉아야 하나?”

유이가 의자를 끌어 앉으며 말했다.

“아빠가 도망갈까 봐.”

“집 안에서 어디까지 도망가겠니.”

“서재.”

타카하시는 웃었다. 웃었지만 손끝은 조금 굳어 있었다.

유이는 녹음기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물었다.

“녹음해도 돼?”

타카하시는 잠시 녹음기를 보았다.

“끄고 싶으면 끌 수 있게 해줘.”

“그럴게. 대답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도 돼.”

그 말에 타카하시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럼 시작하자.”

유이는 빨간 버튼을 눌렀다. 작은 기계 안에서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집 안의 조용한 소리들까지 함께 들어가는 것 같았다.

“1971년에 동양출판 영업기획부에서 만든 기획안 말이야.”

유이는 노트를 내려다보았다.

“그 초안, 아빠가 쓴 거 맞아?”

타카하시는 커피잔을 잡았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초안은 내가 썼다.”

유이는 펜을 멈췄다.

“완성본은?”

“여러 사람 손이 갔지. 회사 문서라는 게 그래. 처음 쓴 사람은 있어도, 마지막까지 혼자 들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

“그럼 아빠 기획안이라고 써도 돼?”

“그렇게 쓰면 반은 맞고 반은 위험해.”

“왜?”

“내가 썼다고만 하면 다른 사람 손이 사라지고, 회사 기획이라고만 하면 내가 사라지니까.”

타카하시는 창밖을 잠깐 보았다.

“그때는 책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했어.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보고, 음반도 듣고, 학교에서는 테이프 교재 이야기가 나오고. 우리는 책만 붙잡고 있어도 괜찮은지 불안했지.”

“그래서 책이 다른 매체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 거야?”

“그렇지. 거창한 미래라기보다... 살아남는 방법이었어.”

유이는 노트에 짧게 적었다.

살아남는 방법.

“문구가 두 가지로 남아 있어. 하나는 책장을 벗어나는 이야기, 하나는 이야기는 책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타카하시는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둘 다 봤구나.”

“응. 어느 쪽이 먼저야?”

“내 기억으로는, 내가 처음 적은 쪽은 ‘끝나지 않는다’에 가까웠어. 책이 끝이 아니라는 뜻이었지. 그런데 회의가 몇 번 지나고, 세이와 쪽 자료로 넘어가면서 ‘벗어난다’는 식의 말이 생겼던 것 같아.”

“바뀐 게 싫었어?”

“처음엔 좋았어.”

“좋았다고?”

“내 문장이 다른 회사 회의실에 붙어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땐 그걸 빼앗긴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퍼진다고 생각했지.”

유이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 생각은 언제 바뀌었어?”

타카하시는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내 이름이 점점 작아질 때.”

테이프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세이와 기록에는 ‘타카하시 안, 와타나베 씨 경유’라고 남아 있었어.”

“그래.”

“와타나베 이사님이 가져간 거야?”

“그 사람이 들고 갔다. 그건 맞아.”

“그럼 훔친 거야?”

타카하시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쓰면 너무 쉬운 이야기가 돼.”

“쉬운 이야기?”

“나쁜 사람 하나 만들고 끝나는 이야기.”

유이는 입을 다물었다.

타카하시는 말을 고르듯 천천히 이어 갔다.

“와타나베 씨는 당시 나보다 회사 안에서 훨씬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어. 세이와 쪽 담당자도 알고 있었고, 윗사람 설득하는 법도 알았고. 나는 초안을 썼지만, 그걸 회사 문서로 굴러가게 만든 건 그 사람이었지.”

“그럼 고마워해야 하는 거야?”

“그것도 쉬운 이야기야.”

타카하시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고마운 일과 서운한 일은 같이 남을 수 있어.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회사는 고마운 일만 기록하고, 사람은 서운한 일만 기억한다는 거야.”

유이는 펜을 꼭 쥐었다.

“아빠는 왜 말하지 않았어?”

“처음엔 곧 정리될 줄 알았어. 다음엔 지금 말하면 꼴사나울 것 같았고. 그다음엔 다들 바빴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먼저 모른 척하고 있더구나.”

그는 잠깐 숨을 고른 뒤 말했다.

“그건 잊은 척했을 뿐이야.”

유이는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후회라기보다 피로에 가까웠다. 오래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는 얼굴이 아니라, 아직 내려놓는 법을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잊은 게 아니었어?”

“잊으려고 한 적은 있지.”

“안 됐어?”

“가끔은 됐어. 네가 어릴 때, 회사 일이 바쁠 때, 집에 쌀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따질 때. 그런 날엔 정말 잊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름이 다시 나오면 알게 되지. 잊은 게 아니라 접어 둔 거였구나.”

테이프가 작은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유이는 한동안 질문하지 않았다. 취재자는 침묵을 채워야 한다고 배웠지만, 딸은 침묵을 지켜야 할 때가 있었다.

잠시 뒤, 타카하시가 먼저 말했다.

“어제 술집 마마가 그러더구나. 잘되려고 하지 말고 도망만 가지 말라고.”

유이는 눈을 크게 떴다.

“아빠가 그런 말을 들었다고?”

“나도 그런 말을 듣는 날이 왔나봐.”

“어디였는데?”

“칸다 뒤쪽에 있는 작은 가게. 눈이라는 곳이야.”

유이는 노트에 쓰려다 멈췄다.

“그것도 기록해?”

타카하시가 웃었다.

“그건 쓰지 마라. 술집 마마를 증인으로 만들면 안 된다.”

“알았어.”

유이는 펜을 내려놓았다.
오늘 아버지는 기록이 될 말과, 그냥 남겨둘 말을 동시에 주고 있었다.

그때 녹음기에서 딸깍, 하는 소리가 났다. 테이프 한쪽이 끝났다.

유이가 손을 뻗었다.

“뒤집을게.”

타카하시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유이는 손을 멈췄다.

“아직 질문 남았는데.”

“남겨 둬. 한 번에 다 하면 서로 못 견딘다.”

유이는 녹음기를 껐다. 방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테이프 소리가 사라지자,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더 선명해졌다.

유이가 물었다.

“또 물어봐도 돼?”

타카하시는 이번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그래. 대신 다음엔 네가 쓴 것도 보여줘.”

“무섭지 않아?”

“무섭다.”

“그런데 왜 봐?”

“네가 나를 쓰는 게 아니라, 우리가 겪은 시간을 쓰는 거라면... 나도 같이 봐야지.”

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허락이면서 조건이었다.
그리고 유이는 이제 조건 없는 허락이 오히려 위험하다는 걸 조금 알고 있었다.

같은 오후, 아카리는 빨래를 걷고 있었다.

겨울 햇빛은 가늘고 짧아서 빨래를 완전히 말리지는 못했다. 셔츠 소매 끝은 아직 조금 축축했다. 아카리는 그것들을 방 안에 다시 널며 한숨을 쉬었다.

식탁에서는 켄타가 학교 작문 용지를 펼쳐 놓고 있었다. 제목 칸만 비어 있었다.

한참을 조용히 있던 켄타가 말했다.

“잠깐 시간 좀 내줄래?”

아카리는 빨래집게를 내려놓았다.

“너 그렇게 말하니까 회사 사람 같아.”

“학교 과제 때문에.”

“뭔데?”

“주변 어른의 일에 대해 듣고 쓰기.”

아카리는 의자에 앉았다.

“내 얘기 쓰려고?”

“응. 싫으면 안 쓸게.”

그 말이 아카리에게는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켄타가 어릴 때는 뭐든 마음대로 물었다. 아카리가 왜 늦는지, 왜 지갑을 오래 보는지, 왜 아버지 얘기는 안 하는지. 그런데 이제는 묻기 전에 멈출 줄 알았다.

그 멈춤이 고마우면서도 마음 한쪽이 아팠다.

“써도 돼.”

켄타는 조금 안심한 얼굴로 펜을 들었다.

“엄마 일은 뭐라고 써야 해?”

“자료 정리. 전산 입력. 기록 보존. 듣기만 해도 졸리지?”

“아니. 나는 그런 게 좋아.”

“특이하네.”

“편의점 인수인계 노트도 비슷하잖아. 다음 사람이 헷갈리지 않게 남기는 거.”

아카리는 켄타를 바라보았다.

“맞아. 결국 그거야. 다음 사람이 헷갈리지 않게 하는 일.”

켄타는 작문 용지 위에 한 줄을 썼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보호자 면담 때 엄마가 혼자 보호자라고 말한 것도 써도 돼?”

아카리는 잠깐 숨이 멎는 듯했다.

“그걸 왜 쓰고 싶어?”

“그날 좀... 기억에 남아서.”

“창피했어?”

켄타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창피해하는 줄 알았어.”

아카리는 손가락으로 식탁 모서리를 쓸었다.

“창피했어.”

켄타가 고개를 들었다.

“진짜?”

“응. 근데 창피해도 해야 하는 말이 있어. 내가 보호자인데, 내가 보호자라고 말하지 않으면 네가 공중에 뜨잖아.”

켄타는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멋있게 쓰려고 하지 마.”

아카리가 말했다.

“엄마가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니라, 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한 일도 많아.”

“그럼 슬프게 써?”

“그것도 아니고.”

“어렵네.”

“그러니까 작문이지.”

켄타는 작게 웃었다.

아카리는 켄타의 작문 용지를 보았다. 첫 문장은 삐뚤빼뚤했지만 분명했다.

‘우리 엄마는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 남기는 사람이다.’

아카리는 그 문장을 고쳐 주고 싶었다. ‘지우는 사람’이라는 표현도, ‘남기는 사람’이라는 표현도 너무 크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말하지 않았다.

아이가 본 엄마는, 엄마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실제에 가까울 수 있었다.

저녁 무렵, 유이는 편의점 앞치마를 묶으며 계산대로 들어갔다.

켄타는 인수인계 노트를 넘기고 있었다.

“분실물 학생수첩, 주인 찾아갔어요. 이름 먼저 말하게 하고 안쪽이랑 확인했어요.”

“잘했네.”

“그리고 잡지 반품은 뒤에 묶어 뒀고, 복사용지는 아직 반 남았어요.”

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완벽한데?”

“오늘 작문 때문에 엄마한테 인터뷰했거든요. 그래서 인수인계도 괜히 더 정확하게 쓰게 됐어요.”

유이는 웃었다.

“나도 오늘 아빠 인터뷰했어.”

켄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요?”

“응.”

“가족한테 물어보는 것도 인터뷰예요?”

“오히려 더 어려워.”

“왜요?”

유이는 계산대 아래에 녹음기를 조심히 넣었다. 가지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조금 무거웠다.

“남이면 못 물어보는 건 안 물어보면 되는데, 가족이면 못 물어보는 걸 계속 알고 있거든.”

켄타는 그 말을 한참 생각했다.

“대답하는 사람만 힘든 줄 알았어요.”

“물어보는 사람도 힘들어. 잘못 물어보면 상처를 내니까.”

“그럼 안 물어보는 게 나아요?”

“아니. 안 물어봐도 상처가 남을 때가 있더라.”

켄타는 인수인계 노트를 닫았다.

“어른들 일은 어렵네요.”

“우리도 어려워.”

“유이 누나는 아직 어른 아니잖아요.”

“그러게. 그런데 자꾸 어른들이 남긴 걸 들여다보고 있어.”

두 사람은 잠깐 웃었다.

손님이 들어오자 유이는 계산대 앞으로 섰다. 켄타는 가방을 메고 자동문 쪽으로 걸어갔다.

“조심히 가.”

“유이 누나도 무리하지 마세요.”

“너도. 작문 잘 쓰고.”

켄타가 문 앞에서 돌아섰다.

“잘 쓰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유이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빨리 결론 내리지 않는 거.”

켄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동문이 열리고 닫혔다.

유이는 계산을 하며,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쁜 사람 하나 만들고 끝나는 이야기는 쉽다.
하지만 쉬운 이야기는 대체로 누군가를 너무 빨리 지워 버린다.

그날 밤, 유이는 책상 앞에 앉아 테이프를 다시 들었다.

녹음기에서 자기 목소리가 먼저 흘러나왔다. 생각보다 딱딱했다. 유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곧 아버지 목소리가 나왔다.
평소보다 느리고, 낮고, 사이가 길었다.

유이는 받아쓰기를 하다 몇 번이나 멈췄다. 문장만 옮기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버지가 대답하기 전의 침묵, 커피잔을 내려놓는 소리, 한숨을 삼키는 간격까지 모두 의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전부 쓸 수는 없었다.

전부 쓰면 정직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숨을 허락 없이 가져오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유이는 원고 한쪽에 새 문장을 적었다.

‘인터뷰는 대답을 얻는 일이 아니라, 대답할 수 있는 순간까지 함께 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작게 덧붙였다.

‘다음 질문. 와타나베 이사.’

그 이름을 쓰고 나니 손끝이 차가워졌다.

아버지를 인터뷰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와타나베를 만나는 건 다른 일이었다. 그는 기록 속의 이름이었고, 회사의 얼굴이었고, 아버지의 서운함 옆에 오래 서 있던 사람이었다.

유이는 새 편지지를 꺼냈다.

‘개인 연구 및 졸업작품 관련 인터뷰 요청의 건.’

딱딱한 첫 문장을 쓰다가, 유이는 펜을 멈췄다. 너무 회사 문서 같았다. 그렇다고 너무 개인적으로 쓸 수도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첫 줄을 다시 썼다.

‘1971년 동양출판과 세이와미디어그룹의 공동 기획 자료에 대해, 당시 관계자로서 기억하시는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유이는 봉투를 꺼내 주소를 적었다.
아버지에게 대신 전해 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 질문은 아버지의 방패 뒤에서 꺼내면 안 되는 질문이었다.

켄타는 같은 밤, 작문을 다시 고쳐 쓰고 있었다.

아카리는 설거지를 마치고 뒤에서 힐끗 보았다.

“아직 해?”

“빨리 결론 내리지 말래요.”

“누가?”

“유이 누나가.”

아카리는 피식 웃었다.

“그 사람 좋은 말 자주 하네.”

“엄마도 오늘 좋은 말 했어.”

“내가?”

“창피해도 해야 하는 말이 있다고.”

아카리는 접시를 닦던 손을 멈췄다.

켄타는 작문 용지 아래쪽에 새 문장을 적었다.

‘엄마는 혼자라서 강한 게 아니라, 혼자라고 말해야 할 때 도망가지 않아서 강한 것 같다.’

아카리는 이번에도 고쳐 주고 싶었다.
너무 좋게 쓰지 말라고, 엄마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사실은 자주 무섭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문장도 그대로 두었다.

언젠가 켄타가 더 크면, 그 문장을 스스로 고칠지도 몰랐다.
지금은 지금의 눈으로 본 엄마를 남겨도 괜찮았다.

아카리는 조용히 말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읽어 봐. 밤에 쓴 글은 가끔 너무 착해.”

켄타가 웃었다.

“엄마는 진짜 기록 담당자 같아.”

“그래서 말하는 거야. 바로 제출하지 말고 보존해 둬.”

“보존?”

“하루만.”

둘은 동시에 웃었다.

타카하시는 서재 문을 조금 열어 둔 채, 거실에서 들려오는 녹음기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자기 목소리가 낯설었다.
회사에서 회의할 때의 목소리도 아니고, 집에서 딸에게 잔소리할 때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오래 접어 둔 종이를 펼칠 때 나는 소리 같은 목소리였다.

그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오래된 수첩 몇 권이 있었다. 1970년대 초반, 젊었을 때 쓰던 것들. 이미 여러 번 확인했지만, 오늘은 다르게 보였다.

수첩 한쪽에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약속 시간이 적혀 있었다.
칸다, 저녁, 세 명.
가게 이름은 없었다.

타카하시는 손가락으로 그 줄을 짚었다가 수첩을 덮었다.

기억은 문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문서만으로는 닿지 않는 곳을 가끔 기억이 가리켰다.

그는 서재 불을 껐다.

거실로 나오자 유이가 봉투에 주소를 쓰고 있었다.

“와타나베 씨에게 보내려고?”

유이가 고개를 들었다.

“응. 아빠 통해서 말고, 내가 직접.”

타카하시는 잠시 봉투를 보았다.

“잘 생각했다.”

“싫지 않아?”

“싫은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그래도?”

“그래도 네 질문이니까.”

유이는 봉투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답이 올까?”

“모르지.”

“안 오면?”

“그것도 기록이야.”

유이는 작게 웃었다.

“아빠도 이제 내 방식에 물들었네.”

“원래 네 방식이 내 방식에서 조금 온 걸지도 모르지.”

두 사람은 잠깐 마주 보고 웃었다.

그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유이는 봉투를 책상 위에 세워 두었다. 아직 풀칠은 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 다시 읽어 볼 생각이었다.

그 밤, 도쿄의 여러 집에서 종이가 숨죽이고 조용히 놓여 있었다.
유이의 편지, 켄타의 작문, 아카리가 고쳐 주지 않은 문장, 타카하시가 다시 덮은 수첩.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오늘은, 대답할 수 있는 데까지 갔다.

그리고 그 정도면 다음 질문으로 가기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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