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3화

학원 선생님

2026-10-07 · 읽는 시간 약 12분

3화, 학원 선생님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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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리는 전화벨이 울리기 전에 깼다.

새벽 5시 40분. 창문 밖은 아직 푸르스름했고, 골목 끝 자판기 불빛만 혼자 깨어 있었다.

켄타의 방문은 닫혀 있었다. 어젯밤 라디오를 늦게까지 켜두었는지, 문 아래로 희미한 음악 소리가 새어 나오다 어느 순간 사라졌었다.

아카리는 부엌으로 가지 않고 장롱 아래 서랍을 열었다.

1987년, 어머니 장례를 치른 뒤 한 번도 제대로 열어보지 않은 상자였다. 낡은 단추, 누렇게 변한 병원 영수증, 갓난 켄타를 안고 있는 어린 자신의 사진. 그리고 바닥 쪽에 얇은 공책 한 권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작문 노트.

표지에는 볼펜으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中村明里. 나카무라 아카리.

그 이름을 오래 바라보다가, 아카리는 공책을 펼쳤다. 페이지마다 빨간 색연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둥근 표시, 밑줄, 짧은 코멘트.

그중 한 문장이 유독 선명했다.

「너는 세상을 읽는 남다른 시선을 갖고 있어.」

아카리는 손끝으로 그 빨간 글씨를 만졌다. 종이는 오래되어 거칠었고, 빨간 색연필 자국은 조금 번져 있었다.

그때는 그 한마디가 구원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본 것 같았다.
자신이 쓴 문장을, 아니 자신이라는 사람을.

하지만 지금의 아카리는 안다.
어른의 칭찬이 언제나 아이를 살리는 건 아니라는 것을.

1974년 가을, 학원은 정육점 2층에 있었다.

계단에는 늘 비누 냄새와 고기 냄새가 섞여 있었고, 좁은 복도 끝에 ‘아사히 진학회 제3교실’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교실에는 철제 책상 열두 개와 칠판 하나, 그리고 모서리가 닳은 국어사전이 꽂힌 작은 책장이 있었다.

아카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그곳에 갔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바느질을 했고, 아버지는 운송회사 트럭을 몰았다. 학원비를 감당할만큼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카리는 결석하지 않았다. 이해가 안 되는 시험 문제보다, 그 돈을 허투루 썼다는 생각이 더 무서웠다.

사토 켄지는 그해 가을 새로 온 국어 선생이었다.

스물여섯 살이라고 했다. 다른 선생들보다 젊었고, 칠판 글씨가 유난히 반듯했다. 아이들이 떠들면 화를 내기보다 잠시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교실이 조용해졌다.

그날의 작문 제목은 ‘내가 본 어른’이었다.

아카리는 어머니에 대해 썼다. 밤늦게까지 남의 옷단을 줄이고, 새벽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밥을 짓는 사람. 아버지에 대해서도 조금 썼다. 말수는 적지만, 출근 전 늘 트럭 유리를 닦는 사람.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을 때, 사토가 말했다.

“나카무라.”

아카리는 고개를 들었다.

“잠깐 남아줄래?”

거절할 이유를 몰랐다.

그때의 아카리는 어른이 자신을 따로 부르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배운 적이 없었다. 칭찬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혼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남아야 한다고 여겼다.

교실 문이 닫히자 복도 소리가 멀어졌다.

사토는 아카리의 공책을 책상 위에 펼쳤다. 빨간 색연필로 몇 줄에 밑줄을 긋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너는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걸 잘 보는구나.”

아카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좋아서 무서웠다.

사토는 웃었다.

“이런 재능은 누구한테나 주어지는 게 아니야. 잘 지켜야 해.”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카리는 동네 문구점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얼굴은 그대로였는데, 어쩐지 자신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발견된 아이의 얼굴.

지금의 아카리는 그 얼굴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팠다.

발견이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발견한 사람이 언제나 책임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침 식탁에서 켄타는 된장국을 한 숟가락 뜨다가 멈췄다.

“엄마, 잠 못 잤어?”

“조금.”

“어제 그 사람 때문이야?”

아카리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켄타는 바로 눈을 피했다. 묻고 나서 후회한 얼굴이었다.

“미안. 안 물어봐도 되는데.”

아카리는 켄타를 보았다. 이제는 어린애처럼 속일 수 없는 나이였다. 그렇다고 모든 걸 말할 수도 없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서서, 아카리는 천천히 말했다.

“아직은 전부 얘기해 줄 수는 없어”

켄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중에 말해줘.”

“응. 나중에.”

켄타는 더 묻지 않았다. 그게 고마워서 아카리는 오히려 목이 막혔다.

말하지 않는 것은 숨기는 일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말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시간을 버는 일이기도 했다.

그것을 켄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어쩌면 너무 이른 부탁이었다.

마루산 상사 IT추진실의 오전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동양출판 자료 입력본은 ‘원본 대조 전 수정 금지’ 상태로 묶여 있었고, 미사키는 처리 로그에 날짜를 하나씩 찍고 있었다. 프린터가 종이를 밀어내는 소리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

그 평온은 10시 12분에 깨졌다.

전화벨이 울렸다.

미사키가 수화기를 들었다.

“마루산 상사 IT추진실입니다.”

잠시 후 그녀는 아카리를 보았다. 어제와 같은 표정이었다.

“주임님. 사토 켄지 씨입니다.”

아카리는 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업무 전화가 아니면 연결하지 말아줘.”

미사키는 그대로 전했다.

“죄송합니다. 업무 중이라 연결이 어렵습니다. 전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미사키는 메모를 받았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뒤 잠시 망설였다.

“오늘 저녁에... 예전 제3교실 근처에 있겠다고 하셨어요. 기다리겠다고요.”

아카리는 웃음도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겠다.

그 말은 너무 늦었다.
기다려야 했던 쪽은 자신이었다.

미사키는 메모지를 내밀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물었다.

“이거, 버릴까요?”

아카리는 미사키를 보았다.

어린 후배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 아니었다. 모르는 일에 함부로 껴들지 않으려는 얼굴이었다.

“아니. 내가 처리할게.”

아카리는 메모지를 받아 반으로 접었다. 회사 쓰레기통에 버리기에는 너무 사적인 이름이었다. 그렇다고 가방에 넣기에는 너무 무거운 이름이었다.

결국 그녀는 수첩 사이에 끼워 넣었다.

업무 수첩 안에 사적인 이름이 들어갔다.
그 사실만으로도 하루가 흐트러졌다.

같은 시각, 유이는 대학 도서관 앞 공중전화 부스에서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세이와미디어그룹 개발부. 혼마였다.

어제 오오츠카를 통해 전달하겠다고 한 자료 건이었다. 혼마는 평소보다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자료를 직접 건네려고 한 건, 제가 성급했습니다.”

유이는 잠시 수화기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뭐가 성급했다는 건지?”

“회사 절차를 건너뛰려고 했습니다. 타카하시 씨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어요.”

유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혼마가 짧게 웃었다.

“변명처럼 들리네요.”

“조금요.”

“그럼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정직해서, 유이는 더 불편해졌다.

혼마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당신에게는 제대로 보이고 싶어요.”

유이는 숨을 멈췄다.

그 말은 자료 이야기 같지 않았다.
취재 이야기만도 아니었다.

유이는 부스 밖을 보았다. 학생들이 도시락을 들고 지나가고, 누군가는 동전이 없어 매점 쪽으로 뛰어갔다. 세상은 평범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수화기 안쪽만 온도가 달랐다.

유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곤란해요.”

혼마는 바로 대답했다.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럼 절차대로 해주세요.”

“네.”

유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말했다.

“순리대로 진행됐으면 합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혼마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다음 인터뷰 일정은 오오츠카 씨에게 공유하겠습니다. 회사 밖에서 만나더라도, 홍보부에 일정 남기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그럼 금요일 오후는 어떻습니까? 쇼룸 말고, 1층 공개 라운지에서요. 밖은 아닙니다. 회사 안, 하지만 회의실보다는 덜 딱딱한 곳.”

유이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타협안이에요?”

“네. 취재자와 개발자 사이의.”

그 말에 유이는 조금 안심했다. 동시에 조금 서운했다. 자신이 안심했다는 사실도, 서운했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수화기의 온도가 손에 남아 있었다.

동양출판에는 오후에 세이와의 짧은 회신 팩스가 도착했다.

오오츠카 명의였다.

별첨 3 열람 가능
사본 제공은 법무 검토 후 별도 회신
열람 참석자는 사전 등록된 2명으로 제한

와타나베는 그 팩스를 들고 타카하시의 자리로 왔다. 타카하시는 한 번 읽고,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두 명이라.”

“제가 가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가겠습니다.”

와타나베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다 씨가 좋아하지 않겠군요.”

“좋아하라고 가는 건 아닙니다.”

타카하시는 팩스의 하단을 보았다. 참조란에 쿠로다의 이름이 있었다. 이름은 단정했고, 책임은 흐릿했다.

와타나베가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무엇을요?”

“제가 전달자였다는 사실을요.”

타카하시는 그를 보았다.

와타나베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숨기려고 웃지는 않았다.

“이제와서 이런다는 게 너무 늦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카하시는 잠시 후 대답했다.

“늦었는지는 제가 정할 일이 아닙니다. 기록이 정하겠지요.”

그 말은 차가웠지만, 완전히 닫힌 말은 아니었다.

와타나베는 팩스를 접지 않고 그대로 들고 있었다. 접어버리면 또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았다.

아카리는 퇴근길에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수첩 사이에 끼운 메모가 계속 신경 쓰였다. 예전 제3교실 근처. 기다리겠다. 그렇게 적힌 말이 마치 가방 안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오차노미즈역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리던 중, 누군가 옆에 섰다.

타카하시였다.

그 역시 외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 듯했다. 손에는 낡은 서류가방이 들려 있었고, 넥타이는 조금 풀려 있었다.

“나카무라 씨.”

“부장님.”

둘은 잠시 나란히 서 있었다. 플랫폼 아래로 전철 불빛이 다가왔다가, 반대편 선로로 지나갔다.

타카하시는 아카리의 얼굴을 보다가 조용히 물었다.

“오늘도 그분이 연락했습니까?”

아카리는 웃었다.

“제가 그렇게 티가 나나요?”

“티가 난다기보다... 안 보이려고 애쓰는 게 보였습니다.”

그 말에 아카리는 고개를 숙였다.

잠시 뒤 그녀가 말했다.

“어릴 때, 좋은 말을 해준 사람이었어요.”

타카하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 말이 정말 필요했어요. 누가 나를 알아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나중에는... 내가 그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나 싶어졌어요.”

전철이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둘은 타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전철이 떠났다.

타카하시는 그제야 말했다.

“믿은 쪽이 나쁜 건 아닙니다.”

아카리는 천천히 그를 보았다.

그 말은 위로처럼 들렸지만, 쉽게 건네는 위로가 아니었다. 타카하시 역시 누군가에게 맡긴 것을 잃어본 사람이었다. 믿었다고 말하기 싫어서, 회사라는 말 뒤에 숨겼던 사람. 그러나 결국 믿은 사람.

“그렇게 말해주니까 조금 낫네요.”

“저 자신에게도 하는 말입니다.”

아카리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다음 전철이 올 때까지 함께 기다렸다. 어쩌면 두 사람은 전철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말이 마음에 닿을 시간을 기다린 것인지도 몰랐다.

저녁 무렵, 켄타는 구립도서관 잡지 코너에서 유이를 만났다.

유이는 세이와 자료 봉투와 취업사진 봉투를 나란히 놓고,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켄타는 책장을 넘기는 척하다가 결국 다가갔다.

“또 세이와예요?”

유이는 고개를 들었다.

“응. 금요일에 추가 인터뷰 잡혔어.”

“혼마 씨랑요?”

“응. 오오츠카 씨 통해서 일정 공유하기로 했어.”

켄타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안심했다. 하지만 안심한 자신이 싫었다. 마치 자신에게 허락받은 일도 아닌데 허락한 사람처럼.

유이는 그런 켄타의 표정을 보고 부드럽게 물었다.

“걱정돼?”

켄타는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다.

“뭐가 됐든 누나 혼자서 결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하고 나서 켄타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죄송해요. 제가 그런 말 할 입장은 아닌데.”

유이는 웃지 않았다. 그래서 켄타는 더 부끄러웠다.

“그 말, 조금 건방지긴 해.”

“역시 그렇죠.”

“근데 고마워.”

켄타는 고개를 숙였다.

유이는 취업사진 봉투를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결정은 내가 할게. 대신 숨기지는 않을게. 오오츠카 씨에게도 공유하고, 필요하면 아카리 씨에게도 말할게.”

켄타는 그제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한다는 말은 아직도 너무 컸다.
하지만 걱정한다는 말은 이제 조금 자기 것이 된 것 같았다.

세이와미디어그룹에서는 퇴근 시간이 지나도 쿠로다의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오오츠카는 별첨 3 열람 일정표를 들고 들어갔다.

“동양출판 측 참석자는 타카하시 부장과 와타나베 이사로 등록했습니다.”

쿠로다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예상대로군요.”

“혼마에게 유이 씨 취재 일정도 공유했습니다. 금요일 오후, 1층 공개 라운지입니다.”

“좋습니다.”

오오츠카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혼마가 너무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쿠로다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가까이 두는 게 관리입니다.”

“취재자를 관리 대상으로 보면 위험합니다.”

쿠로다는 미소를 지었다.

“오오츠카 양. 위험하지 않은 취재자는 없습니다.”

오오츠카는 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을 나서며 생각했다.

유이는 취재자다.
타카하시의 딸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아직 이용하기 쉬운 젊은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 세 가지가 한 사람 안에 있을 때, 회사는 늘 가장 필요한 이름으로 다가간다.

아카리는 결국 그곳에 갔다.

예전 제3교실이 있던 건물은 그대로였지만, 간판은 바뀌어 있었다. 정육점은 편의점이 되었고, 2층 학원 자리에는 영어회화 교실이 들어와 있었다. 계단 벽은 새로 칠해졌지만, 모서리의 금 간 자국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카리는 계단 아래에 섰다.

만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저 확인하러 온 것뿐이었다.
정말 그 이름이 같은 거리로 돌아왔는지. 정말 그 사람이 아직 자신을 ‘아카리’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골목 건너편에서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검은 코트, 낡은 가방, 조금 희끗한 머리. 스물여섯 살의 사토 켄지는 없었다. 그 자리에 마흔을 넘긴 남자가 서 있었다. 너무 평범해서, 아카리는 오히려 숨이 막혔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카리.”

아카리는 바로 대답했다.

“나카무라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불러주세요.”

사토는 입을 다물었다.

몇 초의 침묵 뒤, 그가 고개를 숙였다.

“만나줘서 고마워.”

아카리는 그를 똑바로 보았다.

“만나러 온 게 아닙니다. 확인하러 온 것뿐입니다.”

“확... 인?”

“당신이 정말 돌아왔는지. 그리고 아직도 내가 그때의 학생이라고 생각하는지.”

사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

“그 생각이 없었다고 해서, 그런 일이 안 일어난 건 아니죠.”

골목 끝에서 자전거 벨 소리가 났다. 누군가 비닐봉지를 들고 지나갔다. 도쿄의 저녁은 너무 평범했고, 그래서 더 잔인했다.

사토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켄타 군은...”

아카리의 목소리가 차갑게 끊었다.

“그 이름을 쉽게 부르지 마세요!”

사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카리는 더 말하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다시 학생처럼 오래 남아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역 쪽으로 걸었다.

계단 위 영어회화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따라 읽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낯선 외국어 문장들이 저녁 골목으로 새어 나왔다.

아카리는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때의 자신은 남아달라는 말에 남았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떠날 수 있다.

그 차이를 알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少し残ってくれる? [すこし のこってくれる?]
잠깐 남아줄래?
수업이나 회의가 끝난 뒤 따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쓰는 말. 다만 상대가 거절하기 어려운 관계라면 조심해야 하는 표현 · 어린 아카리에게 학원 선생 사토가 건넨 말

2. まだうまく話せない。 [まだ うまく はなせない]
아직 잘 말할 수 없어.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설명하기 어려울 때 · 아카리가 켄타에게 오래전 사람에 대해 아직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털어놓은 말

3. 手続きを信じたいんです。 [てつづきを しんじたいんです]
절차를 믿고 싶어요.
사적인 호의보다 공식적인 과정과 기록을 지키고 싶을 때 · 유이가 혼마에게 자료는 개인적으로 받지 않고 오오츠카를 통한 공식 경로로 받고 싶다고 말한 장면

4. 信じた方が悪いわけじゃありません。 [しんじた ほうが わるい わけじゃ ありません]
믿은 쪽이 나쁜 건 아닙니다.
배신이나 상처 앞에서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말 · 타카하시가 오래전 칭찬을 믿었던 자신을 탓하는 아카리에게 조용히 해준 말

5. 確かめに来ただけです。 [たしかめに きただけです]
확인하러 온 것뿐입니다.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왔다는 선을 그을 때 · 아카리가 다시 나타난 사토에게 자신은 예전의 학생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고 말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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