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4화

이혼이라고 말한 이유

2026-10-07 · 읽는 시간 약 15분

4화, 이혼이라고 말한 이유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3

4화 대표 이미지

금요일 오전, 아카리는 구청 민원실에서 번호표를 쥐고 있었다.

형광등은 너무 밝았고, 대기석의 비닐 의자는 오래 앉아 있으면 등 뒤가 끈적해졌다.

창구 위 전광판에는 빨간 숫자가 하나씩 바뀌었다. 옆자리의 노인은 연금 서류를 들고 있었고, 젊은 부부는 출생신고서를 사이에 두고 아이 이름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아카리는 가방 안쪽에서 신청서를 꺼냈다.

켄타 학교에서 제출하라는 서류였다. 장학금 신청에 필요한 가족관계 확인 서류.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처리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종이의 흰 칸들이 지나치게 넓어 보였다.

창구 직원이 번호를 불렀다.

아카리는 앞으로 가서 신청서를 내밀었다.

“호적 초본 한 통 부탁드립니다.”

직원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서류를 확인했다.

“나카무라 켄타 씨 본인인가요?”

“제 아들입니다.”

직원은 도장을 찍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카리는 창구 앞에 선 채, 옆 선반에 꽂힌 서류 안내문들을 보았다.

출생신고. 전입신고. 혼인신고. 이혼신고. 인지신고.

아카리의 시선이 마지막 네 글자에서 멈췄다.

인지신고.

아버지가 혼외자의 친자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할 때 쓰는 서류. 그 글자를 보자마자 목 안쪽이 말랐다. 사토 켄지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카리.

그가 아직도 자신을 그렇게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 목소리.

직원이 돌아왔다.

“여기 있습니다.”

아카리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봉투 안에는 켄타의 이름이 있었다.

나카무라 켄타. 어머니, 나카무라 아카리.

아버지 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란.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종이로 볼 때마다 그것은 새로운 생채기를 남겼다.

아카리는 봉투를 가방에 넣고 민원실을 나왔다. 구청 앞에는 작은 화단이 있었고, 누군가 심어놓은 팬지가 아침 햇빛 아래에서 너무 선명하게 피어 있었다.

사람의 이름은 이렇게 간단히 인쇄되는데,
그 이름이 비어 있는 사연은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1975년 초여름, 병원 복도는 소독약 냄새가 났다.

아카리는 열여섯이었다. 사토는 스물여섯이었다.

그때의 열 살 차이는, 아카리에게는 어른과 아이의 차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의 아카리는 안다. 그것은 나이 차이가 아니라 권력의 차이였다.

진료실에서 나온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무서웠다. 아카리는 의자에 앉아 손가락 끝을 만지작거렸다. 어머니는 복도 끝 창문을 한참 보다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선생님이니?”

아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화를 내지 않았다. 그게 더 아팠다.

집에 돌아온 뒤 아버지는 처음으로 밥상을 엎을 뻔했다. 그는 식탁 모서리를 붙잡고, 엎지 않았다. 어머니가 바느질감을 옆으로 치우고 말했다.

“엎지 마요. 치우는 건 결국 나야.”

그 말에 아버지는 무너졌다.

그날 밤, 아카리는 처음으로 부모가 늙어가는 얼굴을 보았다. 단 하루 만에 십 년은 늙어버린 것 같은 얼굴.

사토를 만난 건 그 이틀 뒤였다.

학원 근처 다방이었다. 유리컵에 담긴 물에는 레몬 조각이 떠 있었고, 테이블 아래에서는 오래된 선풍기가 덜덜거렸다. 사토는 계속 담배만 만졌다. 피우지는 않았다. 그냥 필터 끝을 손가락으로 굴렸다.

아카리가 말했다.

“나, 아이가 생겼대요.”

사토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몇 초가 지나고,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잠깐 생각할 시간을 줘.”

그때의 아카리는 그 말이 신중함이라고 믿고 싶었다.
지금의 아카리는 안다. 그것은 도망치기 전 사람들이 자주 쓰는 문장이라는 것을.

사토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정말로 시간을 가져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방법으로.

학원에서는 그가 “가정 사정으로 그만두었다”고 했다.
아카리는 그 말을 듣고도 며칠 동안 학원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혹시 수업 끝나고 내려올지도 모른다고. 혹시 자기가 너무 빨리 포기한 건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내려온 것은 아무도 없었다.

아카리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병원 서류에는 보호자 서명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서명란 앞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펜을 잡은 손등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이건 허락이 아니다.”

그가 말했다.

“알아.”

어머니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살아야 하잖아.”

아버지는 결국 이름을 썼다. 서명은 흔들려 있었다. 그 흔들린 글씨가 아카리에게는 평생 잊히지 않는 문장이 되었다.

출산은 사랑의 결말이 아니었다.
부모의 허락은 축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너진 집이 그래도 내일 아침 밥을 지어야 한다는 결정에 가까웠다.

켄타가 태어난 날, 어머니는 작은 수건으로 아이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이름은?”

아카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창가에 서 있다가 말했다.

“튼튼하게 살라고, 켄타는 어떠냐.”

健太.

건강하게, 크게.

그 이름이 너무 평범해서 아카리는 울었다.

그 뒤의 생활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기저귀를 삶고, 우유값을 계산하고, 밤새 울던 아이가 아침이 되면 거짓말처럼 잠들고, 아카리는 졸업장을 받지 못한 채 낮에는 일을 배웠고 밤에는 켄타를 안았다.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더 많이 받았고, 아버지는 말없이 아이 목욕물을 데웠다.

그들은 사토를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켄타에게 그 분노를 먹이지 않으려 애썼다.

아카리가 그걸 이해한 건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오후, 세이와미디어그룹 1층 공개 라운지에는 햇빛이 길게 들어와 있었다.

유이는 창가 자리에서 녹음기를 꺼내놓았다. 오늘은 회의실도, 시연실도 아니었다. 오오츠카가 일부러 잡아준 자리였다. 회사 안이지만 지나치게 닫히지 않은 곳. 공개적이지만 완전히 공개되지는 않은 곳.

혼마는 약속 시간보다 5분 늦게 내려왔다. 손에는 얇은 파일이 들려 있었다. 파일 표지에는 홍보부 확인 도장이 찍혀 있었다.

“오오츠카 씨 확인 받았습니다.”

그는 파일을 먼저 유이 앞으로 밀었다.

유이는 도장을 확인하고 나서야 파일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혼마가 웃었다.

“오늘은 혼나지 않으려고요.”

“제가 혼낸 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효과가 있었습니다.”

유이는 펜을 들었다. 라운지 한쪽에서는 방문객들이 제품 카탈로그를 보고 있었고, 리셉션 데스크에서는 전화벨이 일정한 간격으로 울렸다.

혼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 질문에서 이어가도 될까요? 책이 데이터가 될 때, 어떤 이름이 남고 어떤 이름이 빠지는지.”

“네. 그 부분이 중요해요.”

혼마는 파일 한 장을 펼쳤다. 저자, 편집, 삽화, 감수, 음성, 프로그래밍, 기획. 칸은 많았다. 하지만 많다고 해서 전부 담기는 것은 아니었다.

“칸이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이 되는 건가요?”

유이가 물었다.

혼마는 잠시 대답을 고르듯 종이를 보았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고 칸을 늘리는 겁니다. 하지만 회사는 늘 말하죠. 너무 복잡하면 상품이 안 된다고.”

“원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줄여서 단순하게 만드는 게 상품인가요?”

“가끔은요.”

혼마의 대답은 솔직했다. 그래서 유이는 그가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보다, 자기가 속한 구조의 위험을 알고도 그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이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혼마는 유이의 노트를 보다가 말했다.

“타카하시 씨는 질문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취재를 오래하면 그런가 봐요.”

“아니요. 사람을 믿고 싶을수록 질문이 날카로워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이는 펜을 멈췄다.

혼마가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말했다.

“언젠가 업무가 아닌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요.”

라운지에 있던 시계 초침 소리가 갑자기 커진 것 같았다.

유이는 그의 말을 바로 거절하고 싶었다. 동시에, 거절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주 작게 올라왔다. 그 작은 마음이 더 무서웠다.

“지금은 업무 이야기로 해주세요.”

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물러났다. 그래서 더 다가온 것처럼 느껴졌다.

멀리서 오오츠카가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이는 알았다. 지금 이 취재에는 자료보다 더 조심해야 할 것이 생기고 있었다.

켄타는 학교에서 가족 연락표를 받았다.

담임은 “쓸 수 있는 곳만 쓰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이 늘 편한 것은 아니었다. 빈칸은 남겨도 된다고 하지만, 빈칸은 남겨진 자리에서 계속 눈에 띄었다.

이름: 나카무라 켄타
보호자: 나카무라 아카리
부모 직업: 회사원

그 아래에 있는 ‘부’의 칸은 비어 있었다.

옆자리 스도가 종이를 힐끗 보았다.

“너희 부모님, 이혼하셨다고 했지?”

켄타는 펜을 멈췄다.

“그런데 왜 아빠 이름 안 써?”

켄타는 종이를 접었다.

“상관없잖아.”

“아니, 그냥. 이혼이면 아빠가 어디 있긴 있을 거 아냐.”

켄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목 뒤쪽이 뜨거워졌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부끄러운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게 싫었다.

이혼이면, 아빠가 어디 있긴 있는 건가.

그럼 그 엽서의 남자는 누구인가.

수업이 끝난 뒤 켄타는 곧장 집에 가지 않고 도서관으로 갔다. 책을 읽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조용한 곳에 있고 싶었다.

잡지 코너에는 유이가 있었다. 세이와 파일과 노트를 펼쳐놓고 있었다. 취업 자료 봉투도 가방 옆에 삐죽 나와 있었다.

유이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얼굴이 안 좋네.”

켄타는 잠시 망설이다가 옆자리에 앉았다.

“유이 누나.”

“응.”

“쓸 수 없는 칸은 비워둬도 되는 거죠.”

유이는 펜을 내려놓았다.

“응. 억지로 채우지 않아도 돼.”

“비워두면 사람들이 물어보잖아요.”

“그렇지.”

“그럼 비워둔 사람이 잘못한 것처럼 돼요.”

유이는 켄타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단순히 학교 서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디까지 물어야 할지 몰랐다.

“빈칸이 잘못은 아니야.”

“그럼 뭔데요?”

유이는 잠시 생각했다.

“아직 남의 말로 채우고 싶지 않은 자리.”

켄타는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유이 누나는 그런 자리 있어요?”

유이는 세이와 파일을 내려다보았다. 타카하시 류지의 이름이 빠진 오래된 자료들, 혼마가 건넨 친절, 오오츠카가 지켜준 절차, 자신이 아직 정하지 못한 마음.

“많아.”

켄타는 조금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어른처럼 보이는 유이에게도 빈칸이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동양출판에서는 별첨 3 열람 일정이 확정되었다.

다음 주 화요일 오후 3시.
세이와미디어그룹 본관 자료실.
참석자: 타카하시 류지, 와타나베 히로시.

와타나베는 팩스 종이를 들고 타카하시 자리로 왔다.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타카하시는 종이를 받아 읽었다.

“둘만 오라는군요.”

“그쪽도 둘이겠지요. 쿠로다 씨와 오오츠카 씨, 또는 법무.”

“혼마 라는 분은 빠졌군요.”

“개발부 사람이라 제외시켰겠지요. 1971년과 직접 관련 없다고.”

타카하시는 팩스를 접지 않고 책상 위에 두었다.

“직접 관련이 없다는 말은 편리합니다. 영향은 받지만 책임은 없는 자리.”

와타나베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은 자기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잠시 뒤 와타나베가 말했다.

“마마에게는 제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이번에도 혼자 가실 겁니까?”

와타나베는 대답하지 못했다.

타카하시는 서류가방을 닫았다.

“오늘 저녁에 제가 들르겠습니다. 다만 그 전에... 잠깐 걸어야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아마도 걸어야만, 누군가의 이름을 또 다른 문서 위에 올릴 준비가 될 것 같았다.

아카리는 퇴근 후 바로 전철을 타지 않았다.

오차노미즈 쪽으로 걸어 올라가 히지리바시 근처에서 멈췄다. 아래로는 전철이 지나갔고, 멀리 간다강 물빛이 늦은 오후의 회색 하늘을 받아 어둡게 흔들렸다.

그곳에서 타카하시를 만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혹은 둘 다 비슷한 방식으로 집에 늦게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타카하시는 자판기 앞에 서 있었다. 따뜻한 캔커피와 캔홍차 중 하나를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아카리가 먼저 말했다.

“홍차 쪽이 덜 후회됩니다.”

타카하시는 돌아보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기준도 있습니까?”

“커피는 식으면 티가 많이 나요.”

타카하시는 따뜻한 홍차 두 캔을 뽑았다. 하나를 아카리에게 건넸다. 캔은 손바닥에 오래 남을 만큼 따뜻했다.

두 사람은 난간 옆에 나란히 섰다.

한동안 업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낯설었다. 예전 같으면 자료, 일정, 확인표, 팩스 같은 단어들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오늘은 둘 다 그 단어들 뒤에 숨고 싶지 않았다.

아카리가 먼저 말했다.

“저는 이혼한 적이 없습니다.”

타카하시는 놀란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 점이 고마웠다.

아카리는 계속 말했다.

“결혼한 적도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이혼했다고 말했어요. 회사에서도, 이웃에게도, 켄타 학교에서도... 정확히 말하자면 먼저 그렇게 말한 건 아니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고치지 않았어요.”

전철이 다리 아래를 지나갔다. 쇳소리가 잠시 대화를 삼켰다.

소리가 멀어진 뒤 아카리가 낮게 말했다.

“이혼했다고 말하는 편이 여러모로 편하거든요.”

타카하시는 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혼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불행이니까요.”

아카리는 그를 보았다.

“네.”

그 대답 하나에 너무 많은 세월이 들어 있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아이까지 봐요. 켄타를 봐요. 그 애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그 애 얼굴 위에 덧씌워요. 그래서... 차라리 남편이 있었고, 헤어졌다고 생각하게 두는 편이 쉬웠어요.”

타카하시는 한참 침묵했다.

그 침묵은 판단하지 않겠다는 표시 같았다.

“지키기 위해 한 거짓말도, 나중에는 자신을 다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아카리는 작게 웃었다.

“그렇네요. 요즘 아주 잘 다치고 있어요.”

“켄타 군은 알고 있습니까?”

“아직은... 정확히는 아니요.”

“말해야 할 때가 오겠군요.”

“무서워요.”

그 말은 뜻밖에 쉽게 나왔다. 아카리는 자신이 이렇게 간단히 무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니,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달라서 일지도 몰랐다.

타카하시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날이 오더라도 스스로 벌 받는 날로 만들지 마세요.”

아카리는 캔홍차를 내려다보았다.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요?”

“나카무라 씨가 벌을 받는 날도, 켄타 군이 벌을 받는 날도 아니어야 합니다. 늦게 말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도 같이 말해야겠지요.”

아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장님은 유이 씨에게 다 말하셨어요?”

타카하시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요. 저는 지금도 늦고 있습니다.”

“그럼 저희 둘 다 부모로서는 그리 훌륭하지 않네요.”

“그래도 오늘은 집에 돌아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아카리는 그 말에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은 아주 작았지만, 타카하시는 그것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다리 위에서 조금 더 서 있었다. 바람은 차가웠고, 도쿄의 저녁은 서둘러 어두워졌다.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둘 사이에는 이상한 약속 같은 것이 생겼다.

서로를 고치려 하지 않기.
대신 무너지지 않게 옆에 서 있기.

집에 돌아왔을 때, 켄타는 식탁에 가족 연락표를 펼쳐놓고 있었다.

아카리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종이를 보았다. 빈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부’라고 쓰인 작은 글자 옆의 공란.

켄타가 말했다.

“엄마.”

“응.”

“우리 집, 이혼한 거 맞아?”

아카리는 대답하기 전에 손을 씻었다. 시간을 벌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도망치지 않기 위해 손을 씻었다. 차가운 물이 손목을 타고 흘렀다.

식탁으로 돌아온 아카리는 켄타 앞에 앉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니야.”

켄타의 얼굴이 굳었다.

아카리는 천천히 말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이혼했다고 말한 적이 있어. 그리고 네가 그렇게 알고 자라게 둔 것도 맞아. 미안해.”

켄타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아빠는?”

아카리는 숨을 들이켰다.

“너에게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던 사람이 있어. 하지만 네 곁에 있지 않았어. 내가 너를 낳기 전에 사라졌고, 아주 오래 돌아오지 않았어.”

“엽서 보낸 사람?”

“응.”

켄타는 한참 말이 없었다.

벽시계 초침 소리만 들렸다. 냉장고가 작게 웅웅거렸다. 너무 평범한 집의 소리들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들 사이로, 한 아이가 자기가 태어난 이야기의 빈칸을 처음 보고 있었다.

켄타가 물었다.

“엄마는 나 때문에 거짓말한 거야?”

“너 때문이 아니야.”

아카리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너를 부끄러워해서도 아니야. 사람들이 너를 함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 말이 결국 너한테도 거짓말이 됐어. 미안해.”

켄타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 사람은 왜 이제 나타난거야?”

“나도 몰라. 사과하고 싶다고 했어.”

“사과하면 되는 거야?”

“아니.”

아카리는 바로 대답했다.

그 대답이 너무 단호해서 켄타가 고개를 들었다.

“사과한다고 지나간 일이 없어지지는 않아. 그리고 네가 그 사람을 만나야 할 의무도 없어.”

켄타의 눈가가 조금 붉어졌다.

“만나야 해?”

아카리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만나지 않아도 돼.”

그 말에 켄타의 표정이 아주 조금 풀렸다. 하지만 곧 다시 굳었다.

“엄마는 만날 거야?”

“한 번 더 만날지도 몰라. 하지만 너를 데려가지는 않을 거야. 네가 원하지 않는 한.”

켄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족 연락표를 접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도 돼?”

아카리는 목이 메었다.

“응.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켄타는 방으로 들어갔다. 문은 닫혔지만, 세게 닫히지는 않았다. 아카리는 그 작은 차이에 기대어 한참 식탁에 앉아 있었다.

잠시 뒤 켄타 방 안에서 라디오가 켜졌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평소처럼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DJ가 사연을 읽고, 누군가의 신청곡을 틀었다.

아카리는 가족 연락표를 펼쳐보았다.

부의 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빈칸은 거짓말이 아니라, 아직 정하지 않은 자리였다.

그날 밤, 긴시초의 작은 비즈니스호텔 방에서 사토 켄지는 구청에서 가져온 안내문을 펼쳐놓고 있었다.

인지신고.

그는 그 종이를 오래 바라보았다. 글자들은 너무 행정적이었고, 그래서 더 위험했다. 이름을 올리는 일은 마치 도장 하나로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 이름이 빠져 있던 세월은 도장 하나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토는 호텔 비품 볼펜으로 편지지를 꺼냈다.

아카리에게.

그렇게 쓰고 멈췄다. 잠시 뒤 그 위에 두 줄을 그었다.

나카무라 씨에게.

다시 썼다.

그는 한참 동안 다음 문장을 쓰지 못했다.

창밖으로는 JR 선로의 불빛이 지나갔다. 전철은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그 안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 누군가에게 늦은 전화를 해야 하는 사람이 함께 타고 있을 것이다.

사토는 마침내 한 줄을 적었다.

켄타 군에게 제 이름을 남길 수 있는지 상의하고 싶습니다.

그는 그 문장을 보고 오래 앉아 있었다.

그 문장이 사과인지, 욕심인지, 자신도 아직 알지 못했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少し考える時間をくれ。 [すこし かんがえる じかんを くれ]
잠깐 생각할 시간을 줘.
중요한 책임 앞에서 시간을 달라고 할 때 쓰는 말이지만, 때로는 회피의 말이 되기도 함 · 어린 아카리의 임신을 들은 사토가 남긴 말

2. 今は、仕事の話にしてください。 [いまは、しごとの はなしに してください]
지금은 업무 이야기로 해주세요.
사적인 감정이 섞이기 시작할 때 선을 긋는 표현 · 유이가 혼마의 개인적인 호의 앞에서 취재의 경계를 지키며 한 말

3. 離婚したと言った方が、みんな安心するんです。 [りこんしたと いったほうが、みんな あんしんするんです]
이혼했다고 말하는 편이 모두 안심하거든요.
사회가 이해하기 쉬운 말 뒤에 자신의 상처를 숨길 때 · 아카리가 타카하시에게 왜 오랫동안 ‘이혼’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었는지 고백한 장면

4. 今は会わなくていい。 [いまは あわなくていい]
지금은 만나지 않아도 돼.
누군가를 만날지 말지 결정할 시간을 주고 싶을 때 · 아카리가 켄타에게 친아버지 사토를 당장 만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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