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11화

비밀 거래

2026-10-07 · 읽는 시간 약 15분

11화, 비밀 거래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3

11화 대표 이미지

지도는 접혀 있을 때보다 펼쳐졌을 때 더 거짓말을 잘했다.

세이와미디어그룹 지하 자료실의 긴 테이블 위에, 1971년의 일본 지도가 조심스럽게 펼쳐졌다.

종이는 얇아져 있었고, 접힌 자국마다 색연필 선이 끊겼다 이어졌다. 빨간 선, 파란 선, 초록 원, 노란색 형광펜 자국.

오오츠카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지도 끝을 눌렀다.

“지도를 펼쳐도 될까요?”

타카하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타나베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쿠로다는 자료실 벽 쪽에 서 있었다. 그는 오늘도 정중한 얼굴이었지만, 지난번보다 조금 더 말수가 적었다.

지도 위에는 회사 이름이 직접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약어와 기호가 있었다.

T.
S.
W経由.
T.R.案.
地方学校納入網.
児童教育書権利調整.
映像・音声・新媒体.

빨간 선은 동양출판이 오래 관리해온 지방 학교도서관 납품망을 따라가고 있었다.

파란 선은 세이와의 전국 판매 창구와 도매상 연결망을 가리켰다. 초록 원은 영상화, 음성자료화, 교재화, 캐릭터 상품, 그리고 훗날 CD-ROM 같은 신매체로 이어질 수 있는 권리들을 표시하고 있었다.

타카하시는 그 지도를 내려다보며 젊은 시절의 자신이 썼던 문장을 떠올렸다.

'책은 더 이상 종이 위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학교와 지역, 영상과 음성, 데이터로 이어질 것이다.'

그 문장은 오래 전 자기 수첩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지금, 세이와의 지도 위에 있었다.

다만 그의 이름은 없었다.

쿠로다가 먼저 말했다.

“당시 자료는 어디까지나 협력 가능성 검토용이었습니다. 동양출판의 지방망과 세이와의 전국 창구를 어떻게 조정할지 보는 내부 지도였죠.”

타카하시는 지도를 보며 낮게 말했다.

“그건 조정이 아니라 교환입니다.”

자료실 공기가 굳었다.

와타나베가 눈을 감았다. 쿠로다는 대답하지 않았다.

타카하시는 손끝으로 지도 위의 한 줄을 가리켰다.

「T.R.案에서 세이와 신매체 검토로」

“제 초안이 세이와 쪽 신사업 검토 자료가 되었고, 그 대가로 동양출판은 일부 전국 판매 창구와 교육·아동서 권리 조정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게 조정입니까?”

쿠로다는 조용히 말했다.

“회사 간에는 그런 식의 상호 보완이 흔했습니다.”

“상호 보완이라면 원래 작성자를 배제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오츠카가 열람 기록지에 천천히 적었다.

‘동양 측, 조정이 아닌 교환으로 표현.’

쿠로다가 그 손끝을 보았다.

“오오츠카 양.”

오오츠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열람 기록입니다.”

와타나베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가 중개했습니다.”

그 말은 자료실 테이블에 어떤 무게가 있는 것처럼 내려 앉았다.

타카하시는 와타나베를 보지 않았다. 계속 지도만 보았다.

와타나베가 이어 말했다.

“타카하시 부장의 초안을 회사 자료로 가져갔고, 세이와 쪽 쿠로다 씨에게 전달했습니다. 동양출판에는 전국 창구와 학교도서관 납품망 확대 가능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세이와에는 신매체 기획의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무엇이 필요했습니까?”

타카하시의 질문은 조용했다.

와타나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쿠로다가 끼어들었다.

“그 질문은 오늘 자료 범위를 벗어납니다.”

타카하시는 처음으로 쿠로다를 보았다.

“아니요. 이 지도에는 회사의 선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욕심도 들어 있습니다.”

와타나베는 고개를 숙였다.

“저는... 타카하시가 부러웠습니다.”

그 말은 사과라기엔 약했고, 고백이라기엔 너무 늦었다.

“저보다 먼저 봤고, 먼저 썼고, 회사 안에서 인정받았습니다. 저는 그 기획이 회사에 이익이 된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믿으면, 제 질투가 조금 덜 부끄러울 것 같았습니다.”

타카하시는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지도 위 빨간 선은 홋카이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도쿄로 내려왔다. 파란 선은 대도시를 연결했고, 초록 원은 미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선들 아래에는 한 사람의 이름을 지운 결정이 있었다.

“그 결과 와타나베 이사님은 빨리 승진하셨습니다.”

타카하시가 말했다.

와타나베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쿠로다가 차갑게 말했다.

“승진은 동양출판 내부 인사입니다. 세이와가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타카하시가 대답했다.

“그렇겠죠. 하지만 지도에는 길만 그려지는 게 아닙니다. 누가 그 길을 지나갔는지도 남습니다.”

오오츠카는 다시 기록했다.

‘와타나베, 전달 및 중개 사실 인정. 승진 관련 언급 있음. 세이와 측, 내부 인사 사안으로 답변 보류.’

쿠로다는 이제 더 이상 웃지 않았다.

타카하시는 지도를 접지 말라는 듯 손을 들어 막았다.

“사본을 요청합니다.”

쿠로다가 말했다.

“법무 검토가 필요합니다.”

“검토하십시오. 하지만 이 지도는 이미 보았습니다. 못 본 것으로 할 수 없습니다.”

와타나베가 조용히 덧붙였다.

“동양출판 자료관리위원회 회의록에도 올리겠습니다.”

쿠로다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오래전 그는 이 두 남자를 각각 다룰 수 있었다. 타카하시는 배제하고, 와타나베는 통로로 쓰면 됐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은 아직 화해하지 않았지만, 같은 생각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이 쿠로다에게는 가장 불편했다.

마루산 상사 IT추진실에도 같은 날 오후, 동양출판에서 보낸 팩스가 도착했다.

아카리는 회색 팩스용지가 길게 밀려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위쪽에는 ‘1971년 권리 조정 지도 관련 입력 보류 및 항목 정리 요청’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사키가 팩스를 들고 와 책상 위에 펼쳤다.

“주임님, 이번엔 진짜 지도네요.”

“응. 권리의 지도.”

아카리는 빨간 펜으로 항목을 나눴다.

원자료 작성자, 전달자, 수령자, 권리 종류, 지역 범위...

미사키가 옆에서 보다가 말했다.

“책 한 권에도 이렇게 많은 길이 생기는군요.”

아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한 권짜리 책이어도, 권리로 나누면 여러 갈래가 돼. 누가 팔 수 있는지, 어디까지 배포할 수 있는지, 영상으로 만들 수 있는지, 소리로 읽을 수 있는지, 학교에 납품할 수 있는지.”

“복잡하네요.”

“그래서 누군가의 이름이 빠지기 쉬워.”

아카리는 ‘작성자’ 칸에 타카하시 류지, ‘전달자’ 칸에 와타나베 히로시라고 적었다. 그리고 ‘점주 보관 원자료’라는 항목 옆에는 ‘동의 없는 공개 금지’라고 크게 썼다.

미사키가 물었다.

“주임님은 이런 걸 보면 누가 나쁜 사람인지 바로 보여요?”

아카리는 펜을 멈췄다.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누가 나쁜 사람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분명하게 나누면 마음이 편하니까.

하지만 요즘은 그런 지도가 너무 단순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와타나베는 가해자였지만, 쿠로다의 통로이기도 했다.
타카하시는 피해자였지만, 젊은 시절 누군가를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사토는 도망친 사람이었지만, 과거에 대한 후회에 붙잡혀 있었다.

아카리는 천천히 말했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거나, 적이면서 동지일 수도 있는 게 사람인 것 같아.”

미사키는 작게 웃었다.

아카리는 팩스 아래쪽을 다시 보았다. ‘신매체 이용권’이라는 항목 옆에 작은 글씨로 ‘교육 콘텐츠 외부 협력자 자료와 중복 가능성’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토 켄지의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그 이름은 이제 자기 과거에만 있지 않았다. 세이와의 교육 콘텐츠, 유이의 취재, 켄타의 질문, 그리고 동양출판의 1971년 지도까지 이어지는 선 어딘가에 걸려 있었다.

아카리는 처리표 맨 아래에 적었다.

「개인사 관련 자료와 업무 자료의 중복 가능성 있음. 별도 동의·확인 전 사용 금지.」

그 문장을 쓰고 나서야 조금 숨이 쉬어졌다.

선을 그어두는 일은, 벽을 세우는 일이 아니었다.
누가 어디까지 들어와도 되는지 표시하는 일이었다.

유이는 세이와 1층 공개 라운지에서 혼마를 만났다.

이번에도 오오츠카가 일정을 남겼고, 라운지 안쪽 자리도 공식 방문 기록에 적혔다.

유이는 이제 출입증을 목에 거는 손놀림이 익숙해졌지만, 그 익숙함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혼마는 테이블 위에 아무 자료도 먼저 올려두지 않았다. 대신 흰 종이 한 장과 파란색 펜을 준비해두었다.

“오늘은 공식 자료가 아니라 설명입니다. 공개 가능한 범위 안에서요.”

유이는 녹음기를 꺼냈다.

“녹음해도 되나요?”

“네. 다만 세이와 내부 지도 원본 내용은 직접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일반적인 권리 구조 설명으로 하겠습니다.”

“좋아요.”

녹음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혼마는 종이 위에 사각형 네 개를 그렸다.

첫 번째 칸에는 ‘원고’.
두 번째 칸에는 ‘출판’.
세 번째 칸에는 ‘유통’.
네 번째 칸에는 ‘2차 이용’이라고 썼다.

“책은 한 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권리로 나뉩니다. 종이책으로 낼 권리, 특정 지역에 팔 권리, 학교나 도서관에 납품할 창구, 번역이나 문고화, 영상화, 음성화, 그리고 앞으로는 데이터베이스나 CD-ROM 같은 신매체 이용까지요.”

유이는 펜을 움직였다.

“그럼 1971년에 아버지가 쓴 기획안은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 권리들을 연결하는 지도였던 거네요.”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혼마는 말을 고르듯 잠시 멈췄다.

“세이와가 강했던 건 전국 창구와 2차 이용 쪽이었습니다. 동양출판은 교육·아동서와 지방 학교도서관 쪽에 실제 현장이 있었고요. 두 회사가 협력했다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협력에서 이름이 빠졌죠.”

“네.”

혼마는 그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유이는 노트에 적었다.

‘협력은 좋은 말이지만, 배제를 숨길 수도 있다.’

혼마는 유이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쿠로다 전무는 저에게 타카하시 씨 취재를 계속 도우라고 지시했습니다.”

유이의 펜이 멈췄다.

“그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세이와가 저를 멀리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으니까.”

“가까이 두면 관리하기 쉽다고 생각한 겁니다.”

“혼마 씨도 그렇게 생각했나요?”

혼마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길어졌다.

“처음에는요.”

유이는 그를 보았다.

혼마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타카하시 류지의 딸이 어떤 질문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이와 사람으로서요.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요?”

혼마는 낮게 말했다.

“업무상 이유만으로는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유이는 손을 뻗어 녹음기를 껐다.

찰칵.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그 말은 기록에 남기기 어렵네요.”

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록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고싶은 말을 해도 된다는 건 아니에요.”

“네.”

혼마는 자신이 점점 더 위험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이를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것. 그녀를 업무적으로만 대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러나 그 마음이 정말 유이를 위한 것인지, 자신의 외로움과 자존심을 위한 것인지 매번 확인해야 한다는 것도.

유이는 다시 녹음기를 켜지 않았다.

“혼마 씨.”

“네.”

“저는 졸업 작품과 아버지의 일 때문에 이 자리에 오게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카리 씨, 마마, 와타나베 씨, 혼마 씨까지 다 연결돼 있어요.”

혼마는 조용히 들었다.

유이는 말했다.

“저는 이미 그 지도 안에 들어 와 있어요.”

그 말에 혼마의 표정이 조금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러니 저를 지도 밖으로 빼내려 하지 말아주세요. 대신 선이 어디 있는지 같이 확인해줘요. 그게 도와주는 거라면.”

혼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 덧붙였다.

“다음부터 제가 말하는 것도 오오츠카 씨에게 일정과 범위를 남기겠습니다. 사적인 마음이 생길수록, 공적인 선을 더 남겨야겠죠.”

유이는 웃지 않았지만,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방과 후, 켄타는 진보초 헌책방 거리에서 유이를 만났다.

유이는 세이와에서 받은 설명 메모와 권리 관련 책을 가방에 넣고 있었다. 켄타는 교복 차림으로, 손에는 국어 작문 공책을 들고 있었다.

“또 자료예요?”

켄타가 물었다.

“응. 오늘은 권리의 지도.”

“지도요?”

유이는 가방에서 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혼마가 그려준 네 개의 사각형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원고, 출판, 유통, 2차 이용.

켄타는 그것을 보더니 말했다.

“사람 이야기도 이렇게 나눠져요?”

유이는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켄타가 종이를 보며 말했다.

“엄마 이야기는 엄마 거고, 내 이야기는 내 거고, 사토 씨 후회는 사토 씨 거고... 근데 자꾸 한 종이에 들어가잖아요.”

“맞아.”

“그럼 누가 그 종이를 갖고 있어야 해요?”

유이는 생각했다.

“혼자 갖고 있으면 안 될지도 몰라. 적어도 당사자가 볼 수 있어야 해.”

켄타는 고개를 숙였다.

“사토 씨한테서 언젠가 편지가 오면, 엄마가 먼저 볼 것 같아요. 그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게 필요할 수도 있어. 너를 막으려는 게 아니라, 네가 준비됐는지 같이 보려고.”

켄타는 유이를 보았다.

“유이 누나는 그런 말 하면 되게 어른 같아요.”

“그래?”

“근데 가끔은 혼마 씨랑 있는 게 더 어른 같아요.”

말이 나오고 나서 켄타는 바로 후회했다.

유이는 그를 바라보았다. 꾸짖지 않았다.

“그 말, 혼마 씨가 싫다는 뜻이야?”

켄타는 오래 망설였다.

“싫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요. 그 사람이 맞는 말을 할 때가 있어서 더 싫어요.”

유이는 조용히 웃었다.

“그건 좀 알 것 같다.”

켄타는 작문 공책을 품에 안았다.

“저는 아직 사토 씨 지도를 그리고 싶지 않아요.”

“그럼 안 그려도 돼.”

“근데 길이 있는 건 알겠어요.”

유이는 천천히 말했다.

“길이 있다고 해서 바로 가야 하는 건 아니야.”

켄타는 그 말을 마음에 넣어두었다.

그는 아직 유이를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하지 않는 편이 맞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늘은 적어도 자신의 마음을 혼마에 대한 미움으로만 바꾸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자란 것 같았다.

저녁 무렵, 아카리는 도쿄역 야에스 북센터 지도 코너에서 타카하시를 만났다.

약속은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한 우연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웠다. 동양출판에서 권리 지도 관련 추가 자료를 보낸 뒤, 타카하시는 “지도 관련 책을 좀 보러 간다”고 했고, 아카리는 “저도 처리 항목 때문에 참고할 게 있다”고 답했었다.

두 사람은 결국 같은 장소에 서 있었다.

지도 코너에는 도쿄 23구 상세지도, 전국 철도지도, 도로지도, 학교 지리부도, 세계지도 포스터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 종이 냄새와 새 책 냄새가 섞여 있었다.

아카리는 도쿄 동부 지도를 펼쳐보고 있었다. 키바, 몬젠나카초, 긴시초, 우에노, 진보초.

켄타의 생활권과 사토가 묵는 곳, 자신이 피하고 싶은 거리들이 종이 위에서 너무 가까웠다.

타카하시는 전국 철도지도를 들고 있었다.

“권리 지도 보신 뒤에 진짜 지도까지 보십니까?”

아카리가 묻자, 타카하시가 희미하게 웃었다.

“회사 지도는 너무 피곤해서요. 실제 철도지도는 적어도 역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으니까요.”

“지연은 하잖아요.”

“그건 늦는다고 안내 방송이라도 해줍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웃었다.

아카리는 다시 도쿄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사토 씨가 있는 호텔에서 우리 집까지 전철로 30분도 안 걸려요. 지도로 보니 너무 가깝더군요.”

타카하시는 그녀 옆에 섰다.

“가까운 거리라고 꼭 가까운 관계는 아닙니다.”

“알아요. 그런데 지도에 길이 있으니까, 마음이 자꾸 먼저 가요. 켄타가 언젠가 혼자 찾아가면 어쩌나, 내가 막아야 하나, 아니면 길을 알려줘야 하나.”

타카하시는 지도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길이 있다는 것과, 가는 것은 다릅니다.”

아카리는 그 말을 기억하려고 했다.

“오늘은 그 말, 좀 가져가도 될까요?”

“네.”

“켄타에게도, 저에게도 필요할 것 같아요.”

타카하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늘 세이와의 지도 위에서 자기 이름이 어떻게 옮겨졌는지를 보았다. 아카리는 자기 가족의 지도 위에서 사토의 이름이 어디쯤 놓일지 두려워하고 있었다. 둘의 문제는 달랐지만, 같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선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선을 따라가야 하는가.

아카리가 말했다.

“부장님은 오늘 괜찮으셨어요?”

“괜찮지는 않았습니다.”

“그럴 것 같았어요.”

타카하시는 지도책을 덮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명확해졌습니다. 제 기획안이 단순히 도둑맞은 게 아니라, 거래된 것이었습니다. 회사와 회사 사이에서. 그리고 그 거래에 와타나베 씨의 욕심과 쿠로다 씨의 계산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럼 더 화나죠.”

“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 덜 막막합니다. 지도라도 보이면,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는 알 수 있으니까요.”

아카리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사토 씨가 무서운 건, 그 사람이 어디까지 들어올지 몰라서였어요. 이제는 적어도 선을 그어야 할 곳이 조금 보여요.”

둘은 계산대로 가지 않고 한동안 지도 코너에 서 있었다.

타카하시가 문득 말했다.

“나카무라 씨.”

“네.”

“언젠가, 이런 지도책 말고 다른 책도 같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카리는 그를 보았다.

그 말은 아주 평범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사건도, 자료도, 아이도, 회사도 아닌 시간. 둘 사이에 그런 시간이 생길 수 있다는 상상.

아카리는 천천히 대답했다.

“언젠가요.”

그 말은 거절이 아니었다. 약속도 아니었다.
하지만 둘 다 그 차이를 알아들었다.

지도 코너의 형광등은 밝았고, 사람들은 옆에서 여행 안내책을 고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신혼여행 책자를 집어 들었고, 누군가는 도쿄 근교 온천 지도를 펼쳤다.

그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서서, 아카리는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삶에도 사건이 아닌 다음 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타카하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날 밤, 세이와미디어그룹의 쿠로다는 혼자 남아 검은 파일을 열었다.

오늘 동양출판 측이 본 지도는 원본의 일부였다. 권리의 선, 회사의 선, 사업의 선. 하지만 아직 보이지 않은 선이 있었다.

인재 이동.

쿠로다는 파일 가장 아래에서 얇은 종이를 꺼냈다.

「인재 접촉안」

그 안에는 세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T.R. - 직접 접촉 보류. 아이디어만 확보.
W.H. - 세이와 이적 후보. 동양 내 협력자 유지.
K.M. - 권리 조정 담당.

쿠로다는 W.H. 옆의 메모를 유심히 내려다 보았다.

「동양 내 승격 루트 확보」

와타나베는 세이와로 옮기고 싶어 했다. 한때는 그랬다. 더 큰 회사, 더 높은 빌딩, 더 넓은 권리 지도.

그러나 쿠로다는 그를 동양 안에 남겨두는 쪽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협력자는 밖으로 빼내는 것보다 안에 남겨두는 편이 더 오래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와타나베가 지금 그것을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쿠로다는 창밖을 보았다. 아카사카의 유리빌딩들은 밤에도 빛났다. 빛나는 건물은 늘 자기 안의 어둠을 감추는 데 능했다.

그는 종이를 다시 파일에 넣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지도라는 것은 무서운 물건이다.
한 번 펼치면, 길뿐 아니라 배신의 방향도 보이기 시작한다.

쿠로다는 전화기에 손을 올렸다가, 이번에도 들지 않았다.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전 그가 그었던 선들이 이제 자기 쪽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날 밤, 유이는 원고 노트 맨 뒤에 새 장을 만들었다.

제목은 짧았다.

‘권리의 지도.’

그 아래에 네 개의 칸을 그렸다.

원고 - 출판 - 유통 - 2차 이용

그리고 그 아래에는 다른 네 개의 칸을 그렸다.

이름/책임/욕심/상처

유이는 한참 펜을 멈추고 있다가 이렇게 썼다.

‘회사는 권리를 나누며 미래를 만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람의 이름을 나누어 갖기 시작하면, 미래는 누군가의 과거를 훔쳐 만들어진다.’

문장이 길었다.
아직 다듬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지우지 않았다.

창밖으로 전철 소리가 잦아들고 있었. 도쿄의 선로들은 밤에도 서로를 향해 이어졌다. 누군가는 그 선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아직 돌아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

지도에 길이 있다는 것과, 그 길을 간다는 것은 다르다.

유이는 그 문장을 원고 아래에 적었다.

그리고 잠시 뒤, 아주 작게 혼마의 이름 옆에 물음표를 하나 붙였다.

아직은 지우지 않았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地図を広げてもいいですか。 [ちずを ひろげてもいいですか]
지도를 펼쳐도 될까요?
접혀 있는 자료나 지도를 상대 앞에서 열어보기 전에 허락을 구할 때 · 오오츠카가 세이와 자료실에서 1971년 권리 지도를 조심스럽게 펼치며 한 말

2. それは調整ではなく、交換です。 [それは ちょうせいではなく、こうかんです]
그건 조정이 아니라 교환입니다.
상대가 일을 부드러운 말로 포장할 때, 실제 의미를 분명히 짚고 싶을 때 · 타카하시가 쿠로다의 ‘권리 조정’이라는 표현을 바로잡으며 한 말

3. 私が橋渡しをしました。 [わたしが はしわたしを しました]
제가 중개했습니다.
두 사람이나 두 조직 사이에서 연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 와타나베가 동양출판의 기획안과 세이와의 권리 거래 사이에서 자신이 통로였음을 밝힌 말

4. 私はもう地図の中にいます。 [わたしは もう ちずの なかに います]
저는 이미 지도 안에 있어요.
어떤 사건이나 관계에서 더 이상 바깥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고 느낄 때 · 유이가 혼마에게 자신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취재에서 빼내려 하지 말라고 말한 장면

5. 道があることと、行くことは違います。 [みちが あることと、いくことは ちがいます]
길이 있다는 것과, 그 길을 가는 것은 다릅니다.
선택지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때 · 타카하시가 야에스 북센터 지도 코너에서 사토와 켄타 사이의 거리를 걱정하는 아카리에게 건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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