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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보호라는 이름의 구속

2026-10-07 · 읽는 시간 약 19분

13화, 보호라는 이름의 구속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3

13화 대표 이미지

보호라는 말은 손을 잡아주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때로는 그 말이 손목이 아닌 숨통을 조여오기도 한다.
넘어지지 않게 붙드는 척하면서, 어디로도 가지 못하게 만드는 말.

유이는 요즘 그 차이를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아카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말은 늘 거칠게 오지 않는다.
가끔은 아주 다정하게 온다.

“너를 위해서야.”

그 말만큼 오래 남는 덫도 없었다.

금요일 아침, 세이와미디어그룹 개발부 회의실에는 새 종이 냄새가 났다.

창밖 아카사카 거리에는 아직 버블의 잔광이 남아 있었다.
유리빌딩 아래로 택시가 줄지어 서 있었고, 맞은편 레코드숍 스피커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주제가가 낮게 흘러나왔다. 경제 뉴스에서는 주가 하락을 말했지만, 쇼윈도 안 마네킹들은 여전히 어깨가 넓은 재킷을 입고 있었다.

도쿄는 늘 그랬다.
무너지는 중에도, 반짝이는 척을 잘했다.

혼마는 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취재 소재 확인 의뢰서」

그 아래 항목은 더 불편했다.

제출 요청 자료: 타카하시 유이 취재 녹음 및 녹화테이프 원본
목적: 법무 검토 및 외부 공개 전 사실 확인
보관 부서: 세이와미디어그룹 홍보부 / 개발부 공동 관리
확인 담당: 혼마 마사유키

혼마는 마지막 줄에서 손을 멈췄다.

자신의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이 반갑지 않았다.

쿠로다는 회의실 끝에 앉아 있었다. 오늘도 넥타이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목소리는 낮았다.

“타카하시 양에게 직접 말하게.”

혼마는 서류를 덮지 않았다.

“원본을 맡기라는 뜻입니까?”

“법무가 확인하려면 원본이 가장 확실하지.”

오오츠카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본으로도 확인은 가능합니다. 원본 제출은 취재자 입장에서 부담이 클 수 있습니다.”

쿠로다는 오오츠카를 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서 혼마 군이 말하는 거야. 타카하시 양이 가장 신뢰하는 세이와 사람이니까.”

그 말이 회의실 안에 가볍게 놓였다.
하지만 혼마에게는 무거웠다.

신뢰하는 사람.
그 말은 칭찬이 아니라 역할이었다.

혼마는 서류 옆에 놓인 다른 자료를 보았다.
자신이 몇 달 동안 붙잡고 있던 프로젝트였다.

「어린이 미디어 라이브러리 학교도서관 검색판」

책 제목, 저자, 삽화가, 낭독자, 감수자, 개발자 이름을 어떤 칸에 넣을 것인지.
종이책의 복잡한 정보를 아이들이 누를 수 있는 화면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
혼마가 직접 설계한 구조였다.

하지만 새 발표자료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획 총괄: 쿠로다 마사오
개발: 세이와미디어그룹 개발부

혼마 마사유키라는 이름은 없었다.

쿠로다는 그 시선을 알고 있었다.

“프로젝트 최종 발표자료는 아직 확정 전이네.”

혼마는 고개를 들었다.

쿠로다는 부드럽게 말했다.

“이번 취재 건을 잘 정리하면, 자네 이름도 필요한 자리에 들어갈 수 있어.”

필요한 자리.

혼마는 그 말이 싫었다.
이름은 필요한 자리에 넣는 부품이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늘 그렇게 쓰였다.

필요하면 넣고, 불편하면 뺐다.

쿠로다가 서류를 한 장 넘겼다.

“타카하시 양이 들고 있는 녹음테이프에는 우리 회사 사람들의 발언이 들어 있어. 자네 발언도 있고, 오오츠카 양 발언도 있고, 내 이름도 나오겠지. 학생 작품이라고 해도, 외부 공개 전 확인은 당연한 절차야.”

“확인이라면 사본으로 충분합니다.”

“사본은 편집될 수 있지.”

혼마는 그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원본을 가진 쪽을 믿지 않겠다는 말.
그러면서 원본을 달라는 말.

쿠로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마 군. 보호라는 말이 불편한가?”

혼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쿠로다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관리라고 부르게.”

회의실 문이 닫힌 뒤에도, 혼마는 서류 앞에 앉아 있었다.

오오츠카가 낮게 말했다.

“혼마 씨.”

“네.”

“이대로 요청하면 타카하시 씨는 거절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실 겁니까?”

혼마는 자기 이름이 빠진 발표자료를 한 번 더 보았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오오츠카는 더 묻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아팠다.
방법을 찾는 침묵이 아니라, 이미 실망할 준비를 하는 침묵이었다.

유이는 오차노미즈 대학 편집실에서 녹음테이프를 되감고 있었다.

작은 카세트 녹음기 안에서 테이프가 얇은 소리를 내며 뒤로 감겼다.
책상 위에는 테이프 세 개와 노트 두 권, 세이와에서 받은 공개 자료 봉투가 놓여 있었다.

테이프 라벨에는 유이의 글씨가 있었다.

세이와 공개 시연회
혼마 인터뷰 3
권리 구조 설명
사토 관련 보류 발언

그녀는 마지막 라벨에서 손을 멈췄다.

사토 관련 보류 발언.

그 이름 하나가 너무 많은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카리의 과거, 켄타의 질문, 자신의 취재, 혼마의 조심스러운 표정.

유이는 노트를 펼쳤다.

‘자료는 사람보다 먼저 도착한다.’

자기가 쓴 문장인데도, 읽을수록 무서웠다.

그때 편집실 문이 살짝 열렸다.
학과 조교가 얼굴을 내밀었다.

“타카하시 씨, 전화요. 세이와미디어그룹 혼마 씨.”

유이는 조교를 따라 학과실로 걸음을 옮겼다.

학과실 수화기를 들자 혼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카하시 씨. 지금 괜찮습니까?”

“네. 무슨 일이세요?”

혼마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했다.

“취재 녹음테이프 확인 요청이 왔습니다. 세이와 법무 쪽에서요.”

유이는 수화기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확인 요청이요?”

“공개 전 사실 확인입니다. 회사 이름과 개인 이름이 들어간 발언이 있으니까요. 가능하면 녹음테이프를 하루 정도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유이는 복도 창밖을 보았다.
학생들이 코트를 입고 지나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취업 정보지를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친구와 드라마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었다.

평범한 대학 복도였다.
그런데 수화기 안쪽의 말만 이상하게 차가웠다.

유이가 물었다.

“원본을 맡길 필요가 있나요?”

혼마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가능하면 원본이 좋습니다. 사본은 편집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고...”

“제가 편집하지 않았다는 걸 믿지 못한다는 뜻인가요?”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런 뜻처럼 들립니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혼마는 낮게 말했다.

“타카하시 씨가 다치지 않게 하려는 겁니다.”

유이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요즘 너무 자주 듣는 말.

다치지 않게.
보호하려고.
당신을 위해서.

“복사본을 만든 뒤에 연락하겠습니다.”

“타카하시 씨.”

“원본은 제가 가지고 있겠습니다. 사본이 필요하면 사본을 드릴게요. 날짜와 내용 목록도 같이요.”

혼마는 한참 뒤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그의 말끝은 완전히 닫히지 못했다.
누군가의 명령과 자기 마음 사이에 끼인 사람의 목소리였다.

유이는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한참 서 있었다.

그녀는 혼마를 믿고 싶었다.
그가 자신을 회사의 말로만 대하고 싶지 않다는 것도 느꼈다.

하지만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길수록, 질문은 더 정확해야 했다.

유이는 다시 전화카드를 넣었다.

이번에는 마루산 상사 IT추진실 번호를 눌렀다.

마루산 상사 IT추진실의 전화벨은 오후 3시 조금 전에 울렸다.

미사키가 받았다가 아카리 쪽을 보았다.

“주임님, 타카하시 유이 씨입니다.”

아카리는 바로 수화기를 받았다.

“나카무라입니다.”

유이의 목소리는 낮았다.

“나카무라 씨, 원본 자료를 회사에 맡기라고 하면... 맡기면 안 되는 거죠?”

아카리는 한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본.
그 단어는 종이와 테이프만의 말이 아니었다.

인생에도 원본이 있다.
내가 직접 겪은 일.
내가 쓴 글.
내가 말한 목소리.

그것을 누군가에게 넘기는 순간, 이야기는 쉽게 바뀐다.

아카리가 천천히 말했다.

“맡기지 마세요.”

유이는 숨을 들이켰다.

“역시 그렇죠.”

“사본을 만드세요. 라벨에 날짜, 장소, 내용, 복사한 사람을 적고요. 가능하면 사본은 두 개. 하나는 본인이 보관하고, 하나만 제출하세요. 제출할 때는 수령자 이름과 시간을 남겨요.”

“원본은요?”

“본인 손에서 떠나면 안 됩니다.”

유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카리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원본을 원할 때가 가장 위험해요.”

수화기 너머에서 유이가 조용히 말했다.

“혼마 씨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아카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은 단순하지 않았다.

나쁜 사람.
좋은 사람.
위험한 사람.

아카리는 사토를 떠올렸다.
그는 늘 좋은 말을 했다.
세상을 보는 특별한 눈을 가졌구나.
네 안에는 좋은 책장이 있어.
너는 특별해.

좋은 말이었고, 위험한 말이었다.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요.”

아카리는 말했다.

“하지만 좋은 마음이 있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에요.”

유이는 한참 뒤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유이 씨.”

“네.”

“원본은 유이 씨의 이름이에요. 잃어버리지 마세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아카리는 자신이 조금 떨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전화를 끊자 미사키가 조용히 물었다.

“문제 생겼어요?”

아카리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원본을 맡기라는 요청이 있었대.”

미사키의 표정이 곧바로 굳었다.

“그건 안 되죠.”

아카리는 미사키를 보았다.

미사키는 예전 같으면 이유를 캐물었을 것이다.
누가, 왜, 어떤 자료, 무슨 일.
하지만 지금은 묻지 않았다.

대신 업무용 메모지를 꺼냈다.

“외근 처리 남길까요?”

“응.”

“세이와로 가세요?”

아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사키는 펜을 들었다.

“마루산 상사 IT추진실 주임 나카무라 아카리. 동양출판 자료 관련 외부 확인. 세이와미디어그룹 방문. 이렇게 남기면 될까요?”

아카리는 미사키를 한참 보았다.

“충분해.”

미사키는 메모를 적으며 말했다.

“기록은 남겨야 하니까요.”

그 말이 고마웠다.

세이와미디어그룹 1층 공개 라운지에는 오후 햇빛이 유리벽을 타고 길게 들어와 있었다.

아카리는 방문증을 목에 걸고 앉아 있었다.

이곳은 유이가 여러 번 앉았던 자리였다.
혼마와 마주 앉아 자료를 듣고, 질문을 하고, 마음이 흔들렸을 자리.

아카리는 테이블 위에 자기 수첩을 펼쳐놓았다.

잠시 뒤 오오츠카가 먼저 왔다.

“나카무라 씨, 혼마가 곧 내려옵니다.”

“고맙습니다.”

오오츠카는 앉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 가지도 않았다.
라운지 한쪽 자료대 앞에 서서, 필요한 경우 개입할 수 있는 거리만 남겼다.

혼마는 5분 뒤 내려왔다.

그는 아카리를 보자마자 상황을 이해한 듯했다.
놀라기보다, 예상했던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카무라 씨.”

“혼마 씨.”

둘은 서로 고개를 숙였다.

혼마가 앉았다.

“타카하시 씨가 연락했군요.”

“네.”

“제가 무리한 요청을 한 것처럼 들렸습니까?”

아카리는 수첩 위에 손을 올렸다.

“무리한 요청이었습니다.”

혼마는 입을 다물었다.

아카리는 곧장 말했다.

“유이 씨에게 녹음테이프 원본을 맡기라고 하셨습니까?”

“법무 검토 명목이었습니다.”

“법무 검토에는 사본이면 됩니다.”

“원본이 있어야...”

아카리는 그의 말을 끊지 않았다.
끝까지 듣고 나서 조용히 말했다.

“원본이 있어야 통제하기 쉽겠죠.”

혼마의 얼굴이 굳었다.

그 말은 너무 정확했다.

아카리는 낮게 말했다.

“지켜주겠다는 말로 원본을 빼앗을 생각 하지 마세요.”

혼마는 시선을 내렸다.

라운지 바깥으로 회사원들이 지나갔다. 누군가는 카탈로그를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새로 나온 CD-ROM 시연 안내판을 세우고 있었다.
미래라는 단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미래를 설명하는 종이에는, 종종 미래를 준비해 온 과거 사람의 이름이 빠졌다.

혼마가 천천히 말했다.

“쿠로다 전무의 지시였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아카리는 그를 바라보았다.

혼마의 목소리는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변명만은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지쳐 있었다.

혼마가 말을 이었다.

“제가 맡은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학교도서관 검색용 CD-ROM. 아이들이 책 제목뿐 아니라 작가, 삽화가, 낭독자, 감수자 이름으로도 자료를 찾을 수 있게 하는 구조입니다. 그 구조는 제가 설계했습니다. 그런데 발표자료에는 제 이름이 없습니다. 개발부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아카리는 조용히 들었다.

“쿠로다 전무는 이번 취재 건을 잘 정리하면 제 이름을 넣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끝난 뒤, 혼마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말하고 나니 더 부끄럽군요.”

아카리는 바로 위로하지 않았다.

위로는 가끔 사람의 책임을 너무 빨리 덮었다.

“부끄러운 줄 알면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혼마가 고개를 들었다.

아카리는 말했다.

“하지만 이용당하고 있다고 해서 당신이, 유이 씨에게 안전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혼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카리는 그의 침묵을 조금 기다렸다.

“혼마 씨가 정말 자기 이름을 지키고 싶다면, 유이 씨의 이름을 흔들면 안 됩니다. 타카하시 부장님의 이름을 지운 회사 안에서, 당신 이름을 지키려고 또 다른 사람의 원본을 빼앗으면 안 됩니다.”

혼마의 얼굴이 아주 조금 일그러졌다.

“저는 그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진짜일 수도 있겠죠.”

아카리는 말했다.

“하지만 진심이 모든 걸 허락해주지는 않아요.”

라운지의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사토 씨도 좋은 말을 했어요. 제 글을 기억한다고 했고, 돌려주고 싶다고 했고, 아이들의 이름을 지키고 싶다고 했죠. 그런데 결국 자기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혼마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제가 사토 씨와 같다는 말입니까?”

“아니요.”

아카리는 조금 부드럽게 대답했다.

“같아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한마디가 혼마를 더 조용하게 만들었다.

아카리는 수첩을 닫았다.

“기록에 남기세요. 누가 원본 제출을 지시했는지. 어떤 명목이었는지. 유이 씨에게 어떤 요청을 했는지. 그리고 지금부터는 원본이 아니라 사본만 공식 경로로 받는다고 남기세요.”

혼마가 낮게 말했다.

“그렇게 하면 제 이름은...”

“잃을 수도 있겠죠.”

아카리는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의 원본을 빼앗아 지킨 이름은, 결국 남의 이름을 짓밟고 세운 게 됩니다.”

혼마는 웃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았다.
자신의 이름이 사라지는 것이 무서워서, 유이의 목소리가 들어 있는 테이프를 회사 서랍 안에 넣으려 했다.

그것은 보호가 아니었다.

혼마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철회하겠습니다.”

아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본 제출 요청은 철회하겠습니다. 사본만 공식 경로로 요청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시 과정도 기록하겠습니다.”

라운지 건너편에서 오오츠카가 조용히 메모를 적었다.

아카리는 그 손끝을 보았다.
이 회사 안에도, 전부 쿠로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이 다행이면서도 슬펐다.

유이는 저녁 무렵 다시 세이와 1층 라운지에 왔다.

이번에는 취재 일정이 아니었다.
오오츠카가 “자료 제출 방식 변경 안내”라는 명목으로 시간을 잡아주었다.

테이블 위에는 빈 봉투 세 장과 라벨지, 검은색 펜이 놓여 있었다.

혼마는 먼저 와 있었다.

유이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나카무라 씨 만나셨죠.”

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혼났습니다.”

“또요?”

“이번에는 혼나야 했습니다.”

유이는 웃지 않았다.

혼마는 서류 한 장을 유이 앞에 놓았다.

“원본 제출 요청은 철회했습니다. 사본 하나만 홍보부 경유로 받겠습니다. 수령자는 오오츠카 씨로 남기고, 저는 열람자 이름으로만 남기겠습니다. 원본은 타카하시 씨가 보관하십시오.”

유이는 종이를 읽었다.

문장들은 딱딱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었다.

사람의 진심보다, 때로는 딱딱한 절차가 더 안전할 때가 있었다.

유이가 말했다.

“처음에는 왜 원본을 달라고 했어요?”

혼마는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쿠로다 전무의 지시였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지시를 이용하려 했습니다.”

“이용?”

“제 프로젝트때문에... 제가 설계한 데이터 구조가 개발부 이름으로만 나갈 수 있습니다. 쿠로다 전무는 취재 건을 잘 처리하면 제 이름을 넣어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유이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 말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완전히 예상 밖은 아니었다.

혼마는 계속했다.

“저는 타카하시 씨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제 이름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둘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 원본을 가져가려고 했나요?”

혼마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네.”

좋은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짓말보다 나았다.

유이는 한참 그를 바라보았다.

혼마는 세이와의 사람이었다.
쿠로다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자기 이름을 지키고 싶어 유이의 자료를 맡기게 하려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한쪽만으로 정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유이가 천천히 말했다.

“지켜주고 싶다면, 선택할 수 있게 해주세요.”

혼마는 고개를 숙였다.

“네.”

“제가 다칠 수도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멈출지 말지는 제가 정해요.”

“네.”

“혼마 씨가 도와주고 싶으면, 제가 정할 수 있게 정보를 주세요. 대신해서 결정하지 말고요.”

혼마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유이는 라벨지를 꺼냈다.

원본. 사본 A. 사본 B.

세 글자를 쓰는 손이 조금 떨렸다.

혼마는 그 떨림을 보았지만, 잡아주지 않았다.
오늘은 잡아주지 않는 것이 더 나은 도움이라는 걸 알았다.

그날 밤, 편의점 형광등 아래에서 켄타는 계산대에 서 있었다.

매장 스피커에서는 낮은 음질로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잡지 코너에는 트렌디 드라마 주인공들이 웃고 있었고, 계산대 옆에는 8센티 CD 싱글 예약표가 붙어 있었다.

도쿄는 여전히 사랑 노래를 팔고 있었다.
하지만 켄타에게 사랑은 요즘 점점 어려운 말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유이가 들어왔다.

그녀는 평소보다 피곤해 보였고, 손에는 빈 카세트테이프 세 개가 들어 있는 봉투를 들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켄타는 습관처럼 말하고 나서야 유이임을 알아차렸다.

“유이 누나.”

유이는 작게 웃었다.

“일하는 얼굴이네.”

“누나는 또 테이프요?”

“응. 원본을 지키려면 사본이 필요하대.”

켄타는 봉투를 보았다.

원본. 사본.

그 단어가 요즘 그의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아버지라는 이름도 원본이 있을까.
엄마가 말한 삶에도 원본과 사본이 있을까.
사토 씨가 쓰려는 이야기는 사본일까, 위조일까.

켄타가 물었다.

“복사하면 원본이 안전해져요?”

유이는 잠시 생각했다.

“완전히 안전해지는 건 아니야. 그래도 누가 뭘 가져갔는지 알 수 있어.”

“그럼 원본은 누나가 갖고 있어야죠.”

유이는 그를 보았다.

켄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누나 취재잖아요.”

그 말은 짧았다.
하지만 유이에게는 뜻밖의 위로가 되었다.

유이는 계산대 위에 테이프를 올리며 말했다.

“맞아. 내 취재야.”

켄타는 바코드를 찍었다.

삑.

유이가 지갑을 꺼내며 말했다.

“켄타, 요즘 너 좀 달라졌어.”

“좋게요, 나쁘게요?”

“조금 어른스럽게.”

켄타는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 말 별로 안 좋아요.”

“왜?”

“어른들이 다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유이는 잠시 멈췄다가 웃었다.

“그건 맞네.”

켄타는 거스름돈을 건넸다.

“그냥... 누나가 정하는 거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그걸 제가 싫다고 해서 바꿀 수는 없는 거니까.”

말하고 나서 그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유이는 돈을 받았다.

“고마워.”

그 말이 이번에는 덜 아팠다.

고마워.
그 말이 선 밖에 있는 사람에게만 주는 말이 아니라, 선을 지켜준 사람에게도 해줄 수 있는 말이라는 걸 켄타는 아주 조금 알 것 같았다.

유이가 나간 뒤, 켄타는 매장 유리문 너머로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아직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마음이 그녀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부끄러웠다.

오차노미즈역 근처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타카하시는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퇴근길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갔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회사원, 쇼핑백을 든 대학생, 우산 없이 뛰어가는 여직원.
버블이 끝나가도 도쿄의 밤은 여전히 바빴다.

아카리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나카무라입니다.”

“타카하시입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타카하시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

“오늘 유이가 말했습니다. 나카무라 씨가 도와주셨다고.”

아카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도와준 건 아닙니다. 절차를 말했을 뿐이에요.”

“그 절차가 오늘은 제 딸을 지켰습니다.”

아카리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유이 씨가 스스로 지킨 거예요. 저는 원본은 맡기지 말라고 했을 뿐이고요.”

타카하시는 부스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딸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지킨다는 말로 딸의 취재를 멈추게 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세이와에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던 날도 있었다.
혼마를 만나지 말라고, 녹음하지 말라고, 원고에 내 이름을 쓰지 말라고.

그 모든 말이 사랑인지 두려움인지 그는 아직도 구분이 어려웠다.

“저는 자꾸 막고 싶어집니다.”

타카하시가 말했다.

“딸이 다칠까 봐요.”

아카리는 낮게 대답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켄타에게도, 유이 씨에게도요.”

“그래도 막지 않으셨군요.”

“막으면 안전해질 것 같지만, 가끔은 막으려는 행동 때문에 오히려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타카하시는 눈을 감았다.

그 말은 유이 이야기이기도 했고, 아카리 자신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쩌면 타카하시 자신이 아내 키미코에게 하지 못했던 말이기도 했다.

“지킨다는 말은 어렵군요.”

“네.”

아카리는 아주 작게 웃은 듯했다.

“저는 매일 틀립니다.”

타카하시도 희미하게 웃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이제 낯설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오늘 어떤 하루를 지나왔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타카하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은 걷자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카리가 대답했다.

“왜요?”

“매번 제가 기대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수화기 너머에서 아카리가 아주 낮게 웃었다.

“그럼 다음에는 제가 말할게요.”

타카하시는 수화기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네.”

그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공중전화 부스 밖에서는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타카하시는 짧게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밤공기는 차가웠다.
하지만 오늘은 그 차가움이 조금 덜 외로웠다.

세이와미디어그룹의 밤은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쿠로다는 자기 방에서 혼마가 제출한 기록지를 읽고 있었다.

“기록을 배웠군.”

그 말에는 칭찬도, 불쾌함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저 다음 수를 계산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는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1971년의 인재접촉계획과, 아직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현재 대응 방침이 들어 있었다.

쿠로다는 새 메모지를 꺼냈다.

「원본 확보 불가」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신뢰성을 무너뜨릴 것」

원본을 빼앗지 못하면, 원본을 가진 사람을 의심받게 만들면 된다.

그것은 오래전에도 통했던 방식이었다.
타카하시가 세이와와 직접 거래했다는 의심.
와타나베가 중개자가 아니라 피해자인 척할 수 있었던 시간.
회사가 개인의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 바꿔버린 얇은 선.

쿠로다는 이번에도 같은 방식을 떠올렸다.

그는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번에는 회사 공식 봉투가 아니었다.

받는 사람 칸에는 아직 아무 이름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후보는 둘이었다.

와타나베 히로시.
사토 켄지.

쿠로다는 펜을 들고 잠시 멈췄다.

유리창 밖 아카사카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불황이라는 말이 신문에 실리기 시작했지만, 빌딩들은 아직 자신들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믿는 얼굴로 서 있었다.

쿠로다는 봉투를 닫았다.

보호가 실패하면, 의심을 보내면 된다.
사람은 원본을 지킬 수 있어도, 자기 평판을 혼자 지키기는 어렵다.

그것이 쿠로다가 가장 잘 아는 일이었다.

그날 밤, 유이는 자기 방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테이프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원본. 사본 A. 사본 B.

그녀는 라벨 위 글씨를 손끝으로 짚었다.

원본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사람 이름처럼 보였다.

아버지의 수첩도 원본이었다.
마마의 영수증도 원본이었다.
아카리의 작문도 원본이었다.
켄타의 질문도 원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취재도, 아직은 자기 손 안에 있었다.

유이는 노트 맨 아래에 썼다.

‘보호라는 말이 원본을 요구할 때, 먼저 의심한다.’

잠시 뒤 한 줄을 더 적었다.

‘믿고 싶은 사람일수록, 절차를 남긴다.’

창밖으로 전철 지나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날 도쿄의 여러 곳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원본을 지키고 있었다.

아카리는 누군가의 친절이 다시 한 사람의 삶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선을 그었다.
혼마는 자기 이름을 지키고 싶어 남의 원본을 흔들 뻔했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유이는 원본을 자기 손에 남겼다.
켄타는 좋아하는 사람의 선택을 빼앗지 않는 법을 조금 배웠다.
타카하시는 딸을 막는 대신, 딸이 돌아올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하지만 쿠로다의 서랍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원본을 빼앗지 못한 사람은, 이제 원본을 가진 사람을 흔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의심이라는 말이, 아주 조용히 봉투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原本を預ける必要がありますか。 [げんぽんを あずける ひつようが ありますか]
원본을 맡길 필요가 있나요?
중요한 자료나 서류, 녹음파일 원본 제출을 요구받았을 때 확인할 때 · 유이가 혼마에게 녹음테이프 원본을 정말 맡겨야 하는지 묻는 장면

2. コピーを取ってからにします。 [コピーを とってからにします]
복사본을 만든 뒤에 하겠습니다.
원본을 바로 넘기지 않고 복사본을 만든 뒤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할 때 · 유이가 원본을 지키기 위해 먼저 사본을 만들겠다고 답하는 장면

3. 保護という言葉で、原本を預からないでください。 [ほごという ことばで、げんぽんを あずからないでください]
보호라는 말로 원본을 맡아가려 하지 마세요.
상대가 ‘도와준다’거나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중요한 권한이나 자료를 가져가려 할 때 · 아카리가 혼마에게 유이의 녹음테이프 원본을 요구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 장면

4. 利用されている人が、安全な人とは限りません。 [りようされているひとが、あんぜんなひととは かぎりません]
이용당하는 사람이 안전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자신도 피해자라고 말하더라도,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위험할 수 있음을 지적할 때 · 아카리가 혼마에게 쿠로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유이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장면

5. 守りたいなら、選ばせてください。 [まもりたいなら、えらばせてください]
지키고 싶다면, 선택하게 해주세요.
상대를 걱정하더라도 대신 결정하지 말고 선택권을 존중해달라고 말할 때 · 유이가 혼마에게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면 취재를 멈추게 하지 말고 스스로 선택하게 해달라고 말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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