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열다섯 살의 질투
14화, 열다섯 살의 질투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3

질투는 처음부터 질투라는 얼굴로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걱정처럼 왔다.
조심하라는 말처럼 왔다.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충고처럼 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상대가 자기 말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을 때, 마음속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왜 내 쪽을 보지 않지.
켄타는 그 소리가 싫었다.
나이가 어린 게 싫었고, 속 마음을 숨길 수 없어서 더 싫었다.
오후 4시 반, 도립고 교실 창문으로 겨울에 가까운 바람이 들어왔다.
수업은 끝났지만 몇몇 학생은 아직 교실에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잡지를 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워크맨 이어폰을 한쪽 귀에만 꽂고 있었다. 칠판 옆에는 진로조사표 제출 기한이 적혀 있었다.
스도가 주간지를 펼치며 말했다.
“야, 너 <도쿄 러브스토리> 봤냐? 우리 누나는 아직도 그 얘기해.”
켄타는 가방에 공책을 넣으며 대충 대답했다.
“안 봤어.”
“그럼 <101번째 프로포즈>는? ‘나는 안 죽습니다!’ 그거.”
교실 몇 명이 웃었다.
켄타는 따라 웃지 않았다.
텔레비전 속 사랑은 늘 너무 또렷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가 누구를 기다리고, 누가 울고, 누가 달려간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부끄러워졌고, 걱정이라는 말은 너무 빨리 소유욕으로 변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내 말을 들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생겼다.
스도가 잡지를 접으며 물었다.
“너 좋아하는 사람 없냐?”
켄타는 가방 지퍼를 닫았다.
“없어.”
대답은 빨랐다.
너무 빨라서 오히려 거짓말처럼 들렸다.
스도는 더 묻지 않았다.
켄타는 교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복도 끝 창문 너머로 운동장이 보였다.
축구부 애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 누군가 공을 놓치자 친구들이 웃었다.
저 웃음처럼 단순한 감정이면 좋겠다고 켄타는 생각했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화나면 화난 것.
그런데 요즘 켄타의 마음은 늘 두 가지 이상이었다.
유이가 걱정됐다.
혼마가 싫었다.
그런데 혼마가 맞는 말을 하면 더 싫었다.
유이가 웃으면 좋았다.
그 웃음이 혼마를 향하면 마음속 어딘가가 뜨거워졌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컸고,
질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부끄러웠다.
오차노미즈와 진보초 사이에 있는 작은 편의점은 퇴근길 회사원과 대학생으로 붐볐다.
잡지 코너에는 드라마 주인공들이 웃고 있었고, 계산대 옆에는 8센티 CD 싱글 예약표가 붙어 있었다.
켄타는 도시락 진열대를 정리했다.
닭튀김 도시락, 생선구이 도시락, 오니기리, 샌드위치.
유통기한 스티커를 확인하는 일은 단순했다. 그래서 좋았다.
오후 6시가 조금 지나 자동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을 보고 켄타의 손이 멈췄다.
혼마였다.
세이와미디어그룹 개발부의 혼마 마사유키.
우에노 행사장에서 아이들을 위해 이름을 남겨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
혼마는 계산대 앞 문구류 진열대에서 라벨지와 작은 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는 켄타를 알아보았다.
“나카무라 군... 맞죠?”
켄타는 편의점 점원답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그 말은 공손했지만, 거리도 있었다.
혼마는 그 거리를 알아차린 듯했다.
그는 계산대 위에 라벨지와 봉투를 올려놓았다.
“오늘은 회사 심부름입니다. 사본 라벨을 따로 붙이라고 해서요.”
켄타는 바코드를 찍었다.
삑.
삑.
소리가 너무 단정했다.
“회사 일이에요?”
“네.”
켄타는 더 묻지 않았다.
묻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점원인 얼굴을 빌려 묻지 않는 척했다.
그때 자동문이 다시 열렸다.
유이가 들어왔다.
그녀는 목도리를 느슨하게 두르고 있었고, 손에는 카세트테이프 두 개가 든 작은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켄타를 보고 먼저 웃으려다가, 계산대 앞의 혼마를 보고 살짝 멈췄다.
“혼마 씨?”
혼마도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자세를 고쳤다.
“타카하시 씨. 우연이네요.”
켄타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우연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연이든 아니든, 둘은 같은 공간에 서 있었다.
자신이 일하는 계산대 앞에서.
유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까 오오츠카 씨에게 사본 전달 방식 확인했습니다.”
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료는 홍보부 경유로 받겠습니다.”
그는 잠시 켄타 쪽을 보았다.
그리고 유이에게 분명히 말했다.
“업무 자료 주고받는 일을 여기서 하지는 않겠습니다.”
유이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란 듯했다.
켄타도 놀랐다.
혼마는 계산대 위 영수증을 집어 들며 덧붙였다.
“여기는 나카무라 군의 근무처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싫었다.
켄타는 영수증을 건넸다.
혼마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자동문이 닫혔다.
매장 안에는 잠시 편의점 특유의 음악만 남았다.
유이가 계산대 앞으로 다가왔다.
“켄타.”
“네.”
“방금 표정 안 좋았어.”
“근무 중이라서요.”
유이는 그 말에 웃지 않았다.
“사실은 뭐가 싫은 거야?”
켄타는 손에 든 가격표를 내려다보았다.
무엇이 싫은가.
혼마가 유이에게 가까운 것이 싫었다.
혼마가 맞는 말을 하는 것이 싫었다.
유이가 혼마를 완전히 미워하지 않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싫어하는 자신이 제일 싫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이는 그 대답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캐묻지 않았다.
“그럼 퇴근 후에 잠깐 걸을래? 싫으면 안 해도 돼.”
켄타는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집에 가야 해서요.”
“응. 알았어.”
유이는 봉투를 다시 품에 안았다.
“근무 끝나기 전에 뭐 먹고 싶으면 말해. 내가 사줄게.”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은 아카리를 닮았다.
켄타는 말하고 나서 그 사실이 싫어졌다.
유이는 매장을 나갔다.
켄타는 진열대의 오니기리 줄을 다시 맞췄다.
이미 맞춰져 있는 줄을 또 맞췄다.
손이 뭔가를 해야 마음이 덜 흔들렸다.
세이와미디어그룹의 쿠로다 방에는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었다.
혼마는 문 앞에 서 있었다.
오오츠카는 한쪽에 기록지를 들고 있었다.
쿠로다는 테이블 위에 새 메모 하나를 놓았다.
「취재자 사적 관계 정리」
혼마의 얼굴이 굳었다.
메모에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타카하시 유이 - 세이와 개발부 혼마와 빈번한 접촉
나카무라 켄타 - 미성년자. 사토 건 당사자. 타카하시 유이와 사적 교류
나카무라 아카리 - 마루산 담당자. 사토 건 관계자
타카하시 류지 - 동양출판. 취재자 부친
쿠로다는 펜 끝으로 두 이름 사이에 선을 그었다.
타카하시 유이 ---- 나카무라 켄타.
“젊은 사람들의 관계는 조심해야 하네.”
혼마는 낮게 말했다.
“그 말은 어떤 뜻입니까?”
“취재자의 객관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지.”
“미성년자와의 사적 교류를 문제 삼겠다는 뜻입니까?”
쿠로다는 고개를 들었다.
“문제 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네. 다만 필요하면 설명해야 할 관계라는 거야.”
오오츠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건 취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쿠로다는 오오츠카를 보았다.
“오오츠카 양, 직접 관련이라는 말은 언제나 사후에 정해지는 법이네.”
혼마는 메모를 내려다보았다.
유이와 켄타.
그 둘의 사이에 있는 것은 아직 이름도 붙지 않은, 열다섯 살 소년의 서툰 마음이었다.
쿠로다는 그 마음조차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혼마가 말했다.
“이건 너무합니다.”
쿠로다는 조용히 웃었다.
“혼마 군. 자네가 타카하시 양을 특별하게 대하고 있는 모습도 누군가는 너무하다고 할 수 있네.”
혼마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은 비겁했다.
하지만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가 유이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쿠로다는 메모를 접었다.
“그러니 더 조심하게. 자네가 타카하시 양 곁에 있는 것이 그녀를 지키는 일인지, 그녀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일인지.”
혼마는 그 말을 들으며 어제 아카리가 한 말을 떠올렸다.
'이용당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안전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앞으로 타카하시 씨와의 접촉은 전부 오오츠카 씨를 경유하겠습니다. 회사 밖에서는 만나지 않겠습니다.”
쿠로다는 만족한 듯 보이지 않았다.
“좋네. 다만 너무 깨끗하게 굴면, 자네 이름을 올릴 자리도 사라질 수 있어.”
혼마는 이번에는 바로 대답했다.
“그럼 사라지는 편이 낫겠습니다.”
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오오츠카의 펜이 멈췄다.
쿠로다는 혼마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 말, 후회할 수도 있네.”
혼마는 말했다.
“이미 후회할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덜 후회하고 싶습니다.”
쿠로다는 더 말하지 않았다.
혼마가 방을 나간 뒤, 오오츠카도 조용히 따라 나왔다.
복도에서 오오츠카가 낮게 말했다.
“혼마 씨.”
“네.”
“지금 한 말, 기록에 남겨도 됩니까?”
혼마는 잠시 멈췄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겨주세요.”
오오츠카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둘 다 알고 있었다.
기록에 남긴다는 것은 보호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나중에 “몰랐다”고 말하지 못하게 할 수는 있다.
저녁 9시 45분.
켄타는 앞치마를 벗고, 사물함에서 교복 재킷을 꺼냈다.
밖으로 나오자 밤공기가 차가웠다.
편의점 앞 전봇대 밑에는 유이가 서 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은 집에 간다고 자기가 말했으니까.
그런데 서운했다.
그 서운함도 싫었다.
켄타는 역까지 걷지 않고, 일부러 진보초 쪽 헌책방 골목으로 돌아갔다.
문 닫은 서점 셔터 위에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새로 나온 소설, 음악 잡지, 드라마 특집호.
사랑이라는 글자가 여기저기 있었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말을 참 쉽게 붙였다.
노래 제목에도, 드라마 광고에도, 잡지 표지에도.
그런데 정작 그 마음이 자기 안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쉽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카리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켄타는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식탁 위에는 데운 된장국과 계란말이가 있었다.
아카리는 저녁을 새로 차려놓지 않고, 켄타가 먹기 편한 것만 남겨두었다.
켄타는 밥을 먹었다.
말없이.
아카리는 묻지 않았다.
그 침묵이 고마웠다.
하지만 오늘은 그 침묵이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켄타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엄마.”
“응.”
“혼마 씨가 싫어.”
아카리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응.”
“그런데 오늘은... 맞는 말을 했어.”
“어떤 말?”
“회사 일은 내 근무처에서 주고받지 않겠다고 했어. 나를 배려한 것처럼 말했어.”
“그랬구나.”
켄타는 손끝으로 밥그릇 가장자리를 만졌다.
“그래서 더 싫어.”
아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켄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나쁜 사람이면 좋겠어. 그러면 그냥 싫어하면 되잖아.”
아카리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것은 열다섯 살의 말이면서, 서른두 살의 자신도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말이었다.
사토가 완전한 악인이었으면 얼마나 쉬웠을까.
좋았던 말도, 설렜던 순간도, 글을 알아봐줬던 손길도 전부 거짓말이었다고 하면 마음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 사람 때문에 유이 씨가 걱정돼?”
켄타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곧바로 흔들었다.
“걱정도 돼. 근데 그게 다가 아니야.”
아카리는 기다렸다.
켄타가 아주 작게 말했다.
“유이 누나가 그 사람 쪽을 보는 게 싫어.”
그 말이 식탁 위에 묵직하게 놓였다.
된장국 김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켄타는 얼굴을 붉혔다.
“이런 거 나쁜 거지?”
아카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서두르면, 켄타가 어렵게 꺼낸 마음을 너무 빨리 판단하는 것 같았다.
“마음이 생기는 건 나쁜 일이 아니야.”
켄타가 고개를 들었다.
아카리는 천천히 말했다.
“좋아하는 마음도, 질투도, 서운함도. 그런 마음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럼 뭐가 나쁜 건데?”
아카리는 조금 숨을 들이켰다.
“좋아하는 마음이 상대를 묶어 둘 이유가 될 순 없어.”
아카리는 말을 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지. 그런데 그 마음이 어느 순간 ‘내가 싫으니까 가지 마’가 되면, 그건 그 사람의 길을 가로막는 일이 돼.”
“내가 유이 누나한테 그러고 있는 거야?”
“그 문턱에 서 있는 것 같아.”
켄타는 고개를 숙였다.
아카리는 손을 뻗어 그의 손등에 포개려다가 멈췄다.
오늘은 말로만 곁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나도 그런 말을 들은 적 있어.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걱정돼서 그런 거라고. 그런데 결국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그 사람이 정하려 했어.”
켄타는 사토를 떠올렸다.
“사토 씨?”
아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지만 네가 그 사람 같다는 뜻이 아니야.”
켄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카리는 서둘러 말했다.
“누구나 그 문턱에 설 수 있다는 뜻이야.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지면, 상대를 보는 대신 내 불안함만 보게 되거든.”
켄타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가 겨우 물었다.
“그럼 이 마음은 어디에 둬?”
아카리는 그 질문에 목이 막혔다.
어디에 둬야 할까.
좋아하지만 가질 수 없는 마음.
걱정하지만 막을 수 없는 마음.
아직 너무 어리고, 그래서 너무 아픈 마음.
“네 안에 둬.”
아카리는 말했다.
“남에게 던지지 말고. 없던 척하지도 말고. 네 안에서 조금씩 이름을 붙여봐.”
켄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아프잖아.”
“응.”
아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
그 대답이 너무 정직해서, 켄타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그날 밤, 타카하시 집에서도 비슷한 말이 다른 모양으로 오가고 있었다.
유이는 책상 위에 사본 테이프를 놓고 라벨을 붙이고 있었다.
원본은 작은 상자 안에 따로 넣어두었다. 상자 뚜껑에는 손글씨로 ‘원본 - 반출 금지’라고 적었다.
타카하시는 거실 한쪽에서 신문을 접고 있었다.
경제면에는 주가와 부동산 하락 기사, 사회면에는 기업 구조조정과 취업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텔레비전 광고는 여전히 화려했다. 새 차, 새 맥주, 새 드라마, 새로운 사랑.
유이가 말했다.
“아빠.”
“응.”
“켄타가 요즘 힘들어 보여.”
타카하시는 신문을 내려놓았다.
“친아빠 때문이겠지.”
“그것도 있고... 나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
타카하시는 딸을 보았다.
유이는 라벨지를 손끝으로 밀었다.
“혼마 씨 이야기가 나오면 표정이 달라져. 걱정해주는 건 알겠는데, 가끔은 내가 요즘 하는 일들을 좋아하지 않는 얼굴이야.”
타카하시는 긴 침묵 뒤에 말했다.
“나도 그런 얼굴을 한 적이 있다.”
유이가 고개를 들었다.
“아빠가?”
“네가 세이와를 취재한다고 했을 때. 혼마 씨와 만난다고 했을 때. 네가 그 회사 자료를 들고 집에 왔을 때.”
타카하시는 신문 위에 손을 올렸다.
“막고 싶었다. 아주 많이.”
유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카하시는 낮게 말했다.
“걱정과 요구는 다르단다.”
그 문장은 유이에게 하는 말이면서,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자주 헷갈린다. 걱정하니까 막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돼.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네가 돌아와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는 것 정도겠지.”
유이는 라벨지를 내려다보았다.
“켄타에게도 그런 말을 해줘야 할까요?”
타카하시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네 말로 해야 할 거다. 그리고 너무 많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상처받을 텐데요.”
“그렇겠지.”
타카하시는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 주지 않으려고 애매하게 두면, 그 상처가 훨씬 깊어질 수도 있다.”
다음 날 오후, 유이는 구립도서관 앞 계단에서 켄타를 기다렸다.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켄타가 토요일마다 그 근처를 지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켄타는 교복 위에 점퍼를 입고,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친 채 걸어오고 있었다.
유이를 보자 걸음이 느려졌다.
도망가지는 않았다.
그 점이 유이는 고마웠다.
“켄타.”
“네.”
“어제 말하다가 끝난 것 같아서.”
켄타는 계단 아래에 섰다.
유이는 일부러 내려가지 않았다.
둘 사이에는 계단 두 칸만큼의 높이 차가 있었다.
그 거리가 오늘은 필요했다.
유이가 말했다.
“혼마 씨 때문에 화난 거 알아.”
켄타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사과하지 않아도 돼.”
“근데 제가 이상했잖아요.”
유이는 천천히 대답했다.
“이상한 건 아니야. 어려운 거지.”
그 말에 켄타의 얼굴이 조금 흔들렸다.
유이는 이어 말했다.
“나를 걱정해주는 건 고마워. 혼마 씨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해준 것도 고마워. 그런데 내가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쓸지는 내가 정해야 해.”
“알아요.”
켄타의 대답은 작았다.
유이는 그 작은 대답이 얼마나 애써 나온 것인지 알았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할게.”
켄타는 고개를 들었다.
유이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나는 네 편이고 싶어. 하지만 네 것이 될 수는 없어.”
켄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이는 바로 덧붙이지 않았다.
괜찮아, 미안해, 그런 뜻 아니야 같은 말로 덮지 않았다.
덮으면 켄타의 마음이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
켄타는 한참 뒤 물었다.
“그거... 다 알고 있었어요?”
유이는 솔직하게 말했다.
“정확히는 몰라. 하지만 네가 힘든 건 보여.”
켄타는 계단 손잡이를 잡았다.
“저도 정확히 몰라요.”
“응.”
“좋아하는 건지, 걱정하는 건지, 그냥 누나가 멀어지는 게 싫은 건지.”
“다 섞였을 수 있어.”
켄타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럼 제가 정리할게요.”
유이는 그를 보았다.
켄타는 아주 어렵게 말했다.
“누나한테 정리해달라고 안 할게요.”
유이는 가슴이 조금 아팠다.
그 말은 열다섯 살에게는 너무 어른스러운 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처음으로 자기 마음의 무게를 가늠해 보여 준 말이기도 했다.
유이는 계단 한 칸을 내려왔다.
그러나 켄타 바로 앞까지 내려가지는 않았다.
“고마워.”
켄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마 씨랑 계속 만날 거죠?”
“취재로는. 공식 절차 안에서.”
“좋은 사람 같아요?”
유이는 잠시 생각했다.
“모르겠어. 좋은 점도 있고, 위험한 점도 있어.”
켄타가 작게 웃었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복잡하다고 엄마가 그랬어요.”
“아카리 씨답네.”
두 사람은 잠시 나란히 도서관 앞을 보았다.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지나갔고, 자전거 브레이크 소리가 났고, 멀리서 전철 지나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켄타가 말했다.
“오늘은 마음이 안 아프다고 못 하겠어요.”
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해도 돼.”
“그럼 오늘은 이 얘기 그만 해도 돼요?”
그 말에 유이는 아주 작게 웃었다.
“응.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켄타는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걸음은 느렸다.
하지만 도망치는 걸음은 아니었다.
유이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을 상처 주지 않고 선을 긋는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선을 긋지 않아 더 오래 다치게 하는 것보다는, 아프더라도 입장을 분명히 하는 편이 나을 때가 있다.
그것도 어른이 되는 일 중 하나라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친절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날 저녁, 아카리는 오차노미즈역 근처에서 타카하시를 만났다.
약속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둘의 우연은 너무 자주 같은 길을 골랐다.
타카하시는 다리 난간 가까이에 서 있었다.
손에는 신문이 접혀 있었고, 얼굴에는 피곤함이 있었다.
아카리가 먼저 말했다.
“오늘 유이 씨가 켄타를 만났어요.”
타카하시는 놀라지 않았다.
“그랬군요.”
“상처받았을 겁니다.”
“유이도 그랬을 겁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아카리가 말했다.
“아이들이 서로를 아끼는 방식이 점점 어려워지네요.”
타카하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끼는 마음이 생기면, 상대를 덜 다치게 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그 마음으로 상대의 세상을 줄이려고도 하지요.”
아카리는 희미하게 웃었다.
“오늘 제가 켄타에게 비슷한 말을 했어요.”
“역시 나카무라 씨가 먼저 정확히 말하셨군요.”
“정확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애가 아파했으니까요.”
타카하시는 잠시 침묵했다.
“아픈 말이라고 해서 잘못된 말은 아닙니다.”
다리 아래로 노란 전철이 지나갔다.
창문마다 사람 얼굴이 잠깐씩 보였다가 사라졌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얼굴들. 각자 말하지 못한 하루를 품은 얼굴들.
타카하시가 말했다.
“유이는 제게도 선을 긋고 있습니다.”
“부장님은요?”
“저는... 그 선 밖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아카리는 그를 보았다.
“어렵죠.”
“네.”
타카하시는 짧게 웃었다.
“나이가 쉰셋인데도 어렵습니다.”
“서른둘도 어렵습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조금 웃었다.
그 웃음은 크지 않았지만, 오늘 하루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아카리가 천천히 말했다.
“다음에는 제가 걷자고 말한다고 했죠?”
타카하시는 고개를 들었다.
“네.”
아카리는 난간 너머 전철 불빛을 보았다.
“오늘 조금 걸을 수 있을까요?”
타카하시는 대답하기 전에 아주 잠깐 시계를 보았다.
“네. 물론이죠.”
두 사람은 다리 끝까지 걸었다.
이번에도 손은 닿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속도로 걸었다.
서로의 아이들이 아프게 자라고 있는 밤에, 두 사람은 아무 대단한 위로도 하지 못했다.
그저 옆에 있었다.
그 정도가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인 날도 있었다.
늦은 밤, 켄타는 방 안에서 수첩을 펼쳤다.
워크맨은 옆에 놓여 있었지만 켜지 않았다.
오늘은 음악으로 덮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한참 빈 페이지를 보다가 한 줄을 썼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잡아두면, 그 사람도 나도 작아진다.’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어른이 쓴 말 같았다.
켄타는 그 아래에 다시 썼다.
‘유이 누나는 내 것이 아니다.’
그 문장은 더 아팠다.
그래도 지우지 않았다.
조금 뒤, 그는 마지막 줄을 덧붙였다.
‘그래도 나는 유이 누나 편이고 싶다.’
그 문장도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켄타에게는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는 수첩을 닫고, 지갑 속 외할머니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 외할머니는 오래전과 마찬가지로 웃고 있었다.
켄타는 그 사진을 보며 아주 작게 말했다.
“오늘은 좀 아파.”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말하고 나니 조금 숨이 쉬어졌다.
방 밖에서는 아카리가 설거지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물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 찬장을 닫는 소리.
집 안의 소리였다.
켄타는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열다섯의 질투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그 질투가 누군가를 묶는 끈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견뎌야 할 무게라는 걸 알았다.
그 무게는 아팠다.
그래도 들 수 없는 무게는 아니었다.
같은 밤, 세이와미디어그룹의 쿠로다는 봉투 하나에 주소를 적었다.
동양출판.
와타나베 이사 귀중.
봉투 안에는 복사된 메모 몇 장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별도의 얇은 메모.
「타카하시 유이 씨 취재 신뢰성에 관하여」
쿠로다는 펜 뚜껑을 닫았다.
젊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이용할 생각은 없었다고, 그는 훗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보호라는 말이 실패한 자리에서, 이제 의심이라는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쿄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그러나 밝은 도시일수록, 그림자는 더 짙고 깊게 드리워진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仕事の受け渡しは、ここではしません。 [しごとの うけわたしは、ここでは しません]
업무 자료 주고받기는 여기서 하지 않겠습니다.
사적인 장소나 상대의 근무처에서 업무를 섞지 않겠다고 선을 그을 때 · 혼마가 켄타의 편의점 근무처에서 유이와 자료를 주고받지 않겠다고 말한 장면
2. 本当は、何が嫌なの? [ほんとうは、なにが いやなの?]
사실은 뭐가 싫은 거야?
상대가 화나 있거나 불편해 보이지만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을 때 조심스럽게 물을 때 · 유이가 켄타의 굳은 표정을 보고 마음속 진짜 이유를 묻는 장면
3. 好きな気持ちは、相手を縛る理由にはならない。 [すきな きもちは、あいてを しばる りゆうには ならない]
좋아하는 마음은 상대를 묶는 이유가 될 수 없어.
좋아하거나 걱정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선택을 제한하려 할 때 스스로에게도, 상대에게도 필요한 말 · 아카리가 켄타에게 질투와 소유욕의 차이를 설명하며 한 말
4. 心配と命令は違います。 [しんぱいと めいれいは ちがいます]
걱정과 명령은 다릅니다.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어도 그 사람에게 무엇을 하라 말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때 · 타카하시가 유이에게, 자신도 딸을 걱정한다는 이유로 막고 싶었던 마음을 돌아보며 한 말
5. 私はあなたの味方でいたい。でも、あなたのものにはなれない。 [わたしは あなたの みかたでいたい。でも、あなたの ものには なれない]
나는 네 편이고 싶어. 하지만 네 것이 될 수는 없어.
상대를 소중히 여기지만 그 마음에 같은 방식으로 답할 수 없을 때, 다정하지만 분명하게 선을 그을 때 · 유이가 켄타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고, 그를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