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니혼고 프렌즈 홈

17화

이름을 빼앗기지 않는 법

2026-10-07 · 읽는 시간 약 15분

17화, 이름을 빼앗기지 않는 법

도쿄 1991, 나의 이름을 불러줘 | 시즌 3

17화 대표 이미지

이름을 빼앗기지 않는 법은 거창하지 않았다.

때로는 봉투를 열지 않는 일.
받은 시간을 적어두는 일.
누가 가져가려 했는지 묻는 일.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 판단하지 않는 일.

큰 목소리보다 작은 기록이 사람을 지킬 때가 있었다.

그날 아침, 도쿄에는 비가 남아 있었다.
밤새 내린 비가 전봇대와 간판 끝에 매달려 있었고, 사람들은 접은 우산을 들고 출근했다.

유이는 책상 앞에 앉아 테이프 세 개를 다시 확인했다.

원본. 상영용 사본. 예비.

원본은 집에 두기로 했다.
상영용 사본은 가방에 넣었다.
예비 테이프는 흰 봉투에 넣고, 라벨을 붙였다.

「예비」그 옆에 작은 글씨로 날짜와 시간을 적었다.

유이는 잠시 펜을 멈췄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졸업작품 하나를 틀기 위해, 테이프를 나누고, 라벨을 붙이고, 보관 장소를 따로 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하지만 우습다고 해서 필요 없는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수첩도, 마마의 영수증도, 아카리의 작문도 그렇게 남았다.
누군가 너무 조심스럽다고 생각한 종이들이, 시간이 지나 사람을 지켰다.

타카하시는 현관 쪽에서 우산을 꺼내들고 있었다.

“다 챙겼니?”

“응.”

유이는 가방을 닫았다.

“원본은 두고 갈게.”

타카하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어디에 둘 거냐, 누구에게 맡길 거냐, 위험하지 않느냐.
묻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그 침묵이 유이는 고마웠다.

“다녀올게.”

“조심해서 다녀오렴.”

유이는 신발을 신다가 돌아보았다.

“아빠.”

“응.”

“오늘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먼저 전화할게.”

타카하시는 아주 작게 웃었다.

“알겠다.”

그 웃음은 걱정을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
그래도 유이는 문을 열었다.

비 냄새가 남은 아침 공기가 들어왔다.

세이와미디어그룹의 회의실에는 벌써 불이 켜져 있었다.

쿠로다는 회의실 끝에 앉아 있었다.
혼마와 오오츠카는 맞은편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전날의 삭제 요청 기록과 새 메모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메모 제목은 간단했다.

「소재 확인」

그 아래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예비 테이프 소재 확인」
혼마가 종이를 보았다.

“예비 테이프까지 확인하겠다는 겁니까?”

쿠로다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확인입니다. 회수라고 말하지 않았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테이프를 어떻게 확인합니까?”

쿠로다는 혼마를 보았다.

“타카하시 양은 신중한 사람입니다. 원본과 사본을 나눴다면, 예비도 어딘가에 두었겠지요.”

오오츠카가 조용히 말했다.

“공식 요청 범위를 벗어납니다.”

쿠로다는 웃지 않았다.

“그래서 공식 요청으로 하지 않는 겁니다.”

혼마의 얼굴이 굳었다.

“그 말, 기록에 남기겠습니다.”

쿠로다의 시선이 혼마에게 닿았다.

혼마는 피하지 않았다.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오오츠카는 펜을 들었다.

쿠로다는 잠시 혼마를 보다가 말했다.

“요즘 자네는 기록을 좋아하는군.”

“이름이 빠지는 걸 많이 봐서요.”

혼마의 대답은 짧았다.

쿠로다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서류를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각자 맡은 일을 하게.”

그 말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혼마는 알았다.

쿠로다는 이미 다른 사람을 움직였을 것이다.

회의실을 나와 복도에 섰을 때, 오오츠카가 낮게 말했다.

“혼마 씨.”

“네.”

“방금 발언, 기록에 남기겠습니다.”

“부탁합니다.”

“혹시 오늘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홍보부로 연락 주세요. 공식 요청이 아닌 자료 회수는 제가 막겠습니다.”

혼마는 오오츠카를 보았다.

그녀는 세이와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세이와를 지키는 것과 쿠로다를 따르는 것이 같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혼마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유이는 대학으로 가기 전, 편의점에 들렀다.

오차노미즈와 진보초 사이의 작은 매장.
예전에 자신이 일했고, 지금은 켄타가 일하는 곳이었다.

오전 근무자는 점장이었다.
점장은 유이를 보자 반갑게 웃었다.

“타카하시 씨, 오랜만이네.”

“네. 부탁이 있어서요.”

점장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거두었다.

“무슨 일 있어?”

유이는 흰 봉투를 꺼냈다.

“오늘 저녁까지 잠깐만 보관해주실 수 있을까요? 열지 않는 조건으로요. 제 이름, 시간, 봉투 수량 전부 적어주세요.”

점장은 봉투를 보았다.
묻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묻지 않았다.

유이가 덧붙였다.

“문제 생기면 제가 책임질게요. 불편하시면 맡지 않으셔도 됩니다.”

점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계산대 아래 보관 장부를 꺼냈다.

“그럼 장부에 남기자. 네가 맡겼고, 내가 받았고, 봉투 하나. 내용물 확인 안 함. 맞지?”

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점장은 펜을 들었다.

보관 시간. 보관자. 수령자. 봉투 수량.

유이는 장부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그때 켄타가 뒷문으로 들어왔다.
학교에 가기 전이었다. 교복 위에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유이 누나?”

유이는 조금 놀랐다.

“켄타, 아직 학교 안 갔어?”

“오늘 2교시부터예요.”

켄타는 봉투를 보았다.

“그거... 테이프예요?”

유이는 잠시 망설였다.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모든 걸 말할 수도 없었다.

“예비야. 오늘 발표에 혹시 문제가 생기면 쓸 것.”

켄타의 얼굴이 굳었다.

“제가 맡는 거예요?”

“점장님이 보관해주시는 거야. 너한테 부담 주려는 건 아니야.”

켄타는 봉투를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열지 않을게요.”

유이는 작게 웃었다.

“고마워.”

켄타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고맙다는 말 안 해도 돼요. 누나 거니까.”

그 말에 유이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켄타는 예전 같으면 그 봉투를 맡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그는 조금 달랐다.

자기 것이 아닌 걸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점장은 봉투를 사무실 작은 금고에 넣었다.

“장부에 남겼다. 찾으러 올 때도 서명해.”

유이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편의점을 나서며 유이는 다시 한 번 유리문 너머를 보았다.
켄타는 계산대 옆에 서 있었다.
아직 어린 얼굴. 하지만 오늘은 그 얼굴이 전보다 조금 단단해 보였다.

오후, 대학 세미나실에는 학생들이 하나둘 모였다.

비는 그쳤지만, 창밖은 여전히 흐렸다.
책상 위에는 작은 모니터와 VHS 플레이어가 놓였고, 교수는 맨 앞자리에서 메모장을 펼쳤다.

유이는 상영용 사본 테이프를 손에 들고 있었다.
손바닥이 조금 젖어 있었다.

조교가 다가왔다.

“타카하시 씨, 세이와에서 팩스 왔어요.”

유이는 바로 종이를 받았다.

팩스에는 공식 직인이 없었다.
내용은 짧았다.

「세이와미디어그룹 관련 영상 자료는 추가 확인 전 상영을 보류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예비 녹음본 및 미공개 인터뷰 자료의 소재 확인이 필요합니다」

유이는 종이를 끝까지 읽었다.

보류. 소재 확인. 예비 녹음본.

그 단어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교수가 물었다.

“문제 있나?”

유이는 종이를 접었다.

“세이와 쪽에서 상영 보류 요청이 왔습니다. 공식 직인은 없습니다.”

교수는 손을 내밀었다.
팩스를 읽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공식 문서가 아니군.”

“네.”

“자료 출처와 익명 처리는 했나?”

“했습니다.”

“그럼 예정대로 하자. 상영 뒤에 검토하면 된다.”

교수의 말은 짧았다.
하지만 유이에게는 큰 힘이 됐다.

상영이 시작됐다.

화면에는 세이와의 유리빌딩이 나왔다.
화려한 쇼룸, CD-ROM 시연 화면, 아이가 키보드를 누르는 손.

그 위로 유이의 목소리가 들어갔다.

책은 종이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영상이 되고, 목소리가 되고, 데이터가 된다.
그러나 이름이 들어갈 칸이 없으면, 그 사람은 미래로 건너가지 못한다.

혼마의 인터뷰가 짧게 나왔다.

“칸을 만들지 않으면 이름은 남지 않습니다.”

학생 몇 명이 메모를 했다.
교수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화면을 보고 있었다.

유이는 뒤쪽에 서서 자기 영상을 보았다.

이것은 완성본이 아니었다.
부족했고, 거칠었고, 아직 두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지우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했다.

같은 시각, 편의점에는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검은 우산을 접어 입구에 세웠고, 젖은 구두 끝을 매트에 문질렀다.
양복은 비싸 보였지만, 얼굴은 기억에 남지 않는 종류였다.

켄타는 계산대에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남자는 계산대 앞에 서서 명함지갑을 꺼냈다.

“세이와미디어그룹 총무부입니다. 타카하시 유이 씨가 맡긴 봉투를 받으러 왔습니다.”

켄타는 남자가 내민 명함을 보았다.
이름은 낯설었다.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수령증 있으십니까?”

남자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

“급한 일이라 따로 받지는 못했습니다. 회사 확인 건입니다.”

켄타는 점장을 불렀다.

“점장님.”

점장은 사무실에서 나왔다.
남자는 다시 같은 말을 했다.

점장은 보관 장부를 펼쳤다.

“여기에는 타카하시 유이 본인 수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리 수령이면 위임 확인이 있어야 합니다.”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회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저희 쪽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켄타가 조용히 말했다.

“수령증이 없으시면 누구에게도 드릴 수 없습니다.”

남자는 켄타를 보았다.

“학생이죠?”

켄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책임질 수 있는 일인지 잘 생각하는 게 좋겠습니다.”

켄타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책임지는 게 아니라, 기록대로 하는 겁니다.”

점장이 켄타 옆에 섰다.

“맞습니다. 이 가게에 맡긴 물건은 장부대로 처리합니다. 필요하면 타카하시 씨 본인에게 연락해서 다시 오세요.”

남자는 잠시 둘을 보았다.

그리고 명함을 다시 넣었다.

“알겠습니다.”

그는 가게를 나갔다.

자동문이 닫히자, 켄타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점장이 물었다.

“괜찮냐?”

켄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카무라.”

“네.”

“잘했다.”

그 말에 켄타는 고개를 숙였다.

칭찬받아서 기쁜 것보다, 봉투를 넘기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먼저 왔다.

켄타는 공중전화 쪽으로 갔다.
동전을 넣고 마루산 상사 번호를 눌렀다.

마루산 상사 IT추진실은 저녁 무렵에도 바빴다.

프린터 소리, 키보드 소리, 팩스 수신음이 뒤섞였다.
아카리는 동양출판 자료 처리 로그를 확인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미사키가 받았다가 아카리를 보았다.

“주임님, 켄타 군입니다.”

아카리는 바로 수화기를 받았다.

“켄타?”

“엄마. 유이 누나가 맡긴 봉투를 세이와 사람이 가지러 왔어.”

아카리의 손이 굳었다.

“줬어?”

“아니. 수령 기록 없어서 안 된다고 했어. 점장님도 같이 있었어.”

아카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켄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카리는 곧바로 물었다.

“시간은?”

“5시 42분쯤.”

“명함 받았어?”

“이름은 봤는데 잘 모르겠어. 점장님이 장부에 적었어.”

“좋아. 아무것도 열지 말고, 유이 씨 본인에게만 줘. 혹시 다시 오면 점장님과 같이 대응하고.”

“응.”

전화를 끊자 미사키가 이미 메모지를 들고 있었다.

“5시 42분, 세이와 관계자 추정 인물. 대리 수령 요청. 기록 없음. 수령 거부. 이렇게 남기면 될까요?”

아카리는 미사키를 보았다.

한때 미사키는 아카리의 과거를 물어뜯듯 궁금해했다.
친구라는 말로 선을 넘었고, 걱정이라는 말로 소문을 만들었다.

그 뒤로 아카리는 미사키에게 늘 정중했다.
가까이 두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미사키는 묻지 않았다.
켄타가 왜 그 봉투를 지키는지, 유이가 왜 봉투를 맡겼는지, 사토와 연결되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지금 필요한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고마워.”

미사키는 고개를 숙였다.

“업무니까요.”

팩스가 울렸다.

미사키가 종이를 받았다.

“주임님, 세이와 홍보부 오오츠카 씨 명의입니다.”

아카리는 종이를 받아 읽었다.

「세이와미디어그룹 홍보부는 금일 타카하시 유이 씨의 취재 자료에 대해 외부 대리 수령을 요청한 사실이 없습니다. 관련 자료 수령은 본인 및 공식 서면 확인 절차를 통해서만 진행합니다.
- 홍보부 담당: 오오츠카」

아카리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오오츠카 씨가 움직였네요.”

미사키가 말했다.

“이것도 같이 남기겠습니다.”

아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발신 기록표 위에 날짜와 시간이 하나씩 쌓였다.

5시 42분. 편의점 대리 수령 시도.
5시 51분. 켄타 전화.
5시 57분. 마루산 내부 기록.
6시 03분. 세이와 홍보부 공식 부인 팩스 수신.

작은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작은 시간이 모이면, 거짓말이 들어갈 틈이 줄어든다.

세이와미디어그룹 개발부에서 혼마는 오오츠카의 팩스 사본을 받았다.

“이거 보냈습니까?”

오오츠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홍보부 명의로 보냈습니다. 공식 기록에도 남겼습니다.”

혼마는 종이를 읽었다.

“총무부 사람을 보냈군요.”

“기록상 총무부 발송은 없습니다. 쿠로다 전무 개인 지시일 가능성이 큽니다.”

혼마는 주먹을 쥐었다.

“켄타 군에게까지 갔습니다.”

오오츠카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더 남겨야 합니다.”

혼마는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새 메모를 썼다.

「금일 예비 자료의 비공식 회수 지시 확인」

「취재자 본인의 동의 없는 회수에 반대」

「홍보부 기록과 대조 예정」

그는 마지막 줄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혼마 마사유키.

오오츠카가 그 이름을 보았다.

“서명하시겠습니까?”

혼마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펜끝이 종이에 닿았다.

이름을 쓰는 일은 무서웠다.
하지만 이름이 빠지는 것보다 덜 무서웠다.

대학 세미나실의 상영은 끝났다.

불이 켜졌다.
학생들은 잠시 조용했다.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타카하시 씨.”

“네.”

“완성본은 아직 멀었어요. 구성도 거칠고, 어떤 부분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유이는 고개를 숙였다.

“네.”

교수는 메모장을 덮었다.

“하지만 주제는 명확하군요. 그건 좋습니다.”

유이는 숨을 내쉬었다.

교수는 이어 말했다.

“사람 이름을 다루는 작품은 조심해야 해요. 지우면 안 되는 이름과, 지켜야 하는 이름이 다릅니다. 그 차이를 더 다듬으세요.”

“알겠습니다.”

상영이 끝난 뒤, 조교가 유이에게 다가왔다.

“전화 왔어. 마루산 상사 나카무라 씨.”

유이는 복도 공중전화로 뛰어갔다.

“타카하시입니다.”

아카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이 씨. 예비 봉투를 누군가 가지러 왔습니다. 켄타가 거절했어요.”

유이는 눈을 감았다.

손에 힘이 풀렸다.

“켄타가요?”

“네. 점장님과 같이 기록대로 처리했습니다. 세이와 홍보부에서도 공식 요청이 아니라고 팩스로 확인했습니다.”

유이는 한참 말하지 못했다.

“제가 바로 찾으러 갈게요.”

“서두르지 말고 가요. 봉투는 안전합니다.”

밤 8시가 조금 넘어, 유이는 편의점으로 갔다.

켄타는 계산대에 있었다.
점장은 사무실에서 봉투를 꺼내 장부와 함께 가져왔다.

“타카하시 씨, 여기 서명.”

유이는 장부에 이름을 썼다.

보관자. 수령자. 시간.

모든 것이 남았다.

켄타는 봉투를 두 손으로 건넸다.

“열어보지 않았어요.”

유이는 봉투를 받았다.

“알아.”

“정말요?”

“응. 알아.”

그 말에 켄타의 표정이 아주 조금 풀렸다.

유이는 봉투를 가방에 넣었다.

“고마워.”

켄타는 이번에는 고맙다는 말을 피하지 않았다.

“네.”

유이가 작게 웃었다.

켄타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보고 싶긴 했어요.”

유이는 그를 보았다.

켄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어요. 유이 누나가 왜 이렇게까지 지키는지도 알고 싶었고요. 그런데... 제가 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유이는 목이 조금 메었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켄타는 고개를 숙였다.

“누나 취재니까요.”

그 말이 유이에게는 오늘 들은 어떤 평가보다 크게 남았다.

그 한마디가, 그녀의 이름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날 밤, 아카리는 마루산 상사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미사키도 남아 있었다.

수발신 기록표를 정리하고, 팩스 사본에 시간을 적고, 전화 메모를 복사했다.
큰일은 아니었다. 작은 사무 처리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 작은 처리들이 중요했다.

미사키가 마지막 사본을 파일에 끼웠다.

“완료했습니다.”

아카리는 파일 표지를 보았다.

「타카하시 유이 취재자료 관련 수발신 및 보관 경위 기록」

아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요.”

미사키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주임님.”

“네.”

“예전에 제가... 기록하면 안 되는 걸 기록처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카리는 그녀를 보았다.

미사키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사람 이야기를 확인도 없이 옮겼습니다. 그때는 제가 뭘 하는지 몰랐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도 변명인 것 같습니다.”

아카리는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사무실 밖 복도에는 청소 직원의 발소리가 지나갔다.
창밖에는 비가 그친 도쿄가 젖은 빛을 내고 있었다.

아카리는 낮게 말했다.

“이제부터라도 기록에 있는 것만 말하면 돼.”

미사키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용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문을 완전히 닫는 말도 아니었다.

미사키는 고개를 숙였다.

“네.”

아카리는 파일을 가방에 넣었다.

“내일 동양출판에도 사본을 보낼게.”

“제가 팩스 준비하겠습니다.”

“고마워.”

이번 고마움은 아까보다 조금 부드러웠다.

미사키는 그 차이를 알아차렸다.

그날 밤, 타카하시는 집에서 유이의 전화를 받았다.

“아빠.”

“응.”

“상영 끝났어.”

“어땠니?”

“아직 멀대.”

타카하시는 작게 웃었다.

“그건 좋은 평가일 수도 있다.”

“응. 나도 그렇게 들었어.”

유이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예비 테이프를 누가 가지러 왔대. 켄타가 지켰어. 아카리 씨와 미사키 씨가 기록 남겨줬고, 오오츠카 씨도 팩스 보냈어. 혼마 씨도 내부 기록 남겼대.”

타카하시는 수화기를 쥐었다.

여러 이름이 한 문장 안에 있었다.
유이, 켄타, 아카리, 미사키, 오오츠카, 혼마.

누군가 하나의 영웅이 되어 해결한 일이 아니었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 버틴 일이었다.

“그랬구나.”

타카하시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 네 이름을 많은 사람이 지켰네.”

유이는 웃지 않았다.

“나도 지켰어.”

타카하시는 눈을 감았다.

“그래. 네가 제일 먼저 지켰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유이는 조금 울 것 같았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오늘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구성표를 다시 고쳐야 했다.
내일도 확인해야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혼자가 아니었다.

세이와미디어그룹의 쿠로다는 늦게까지 방에 남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보고서 몇 장이 놓여 있었다.

예비 테이프 비공식 회수 실패.
편의점 보관 장부 존재.
마루산 수발신 기록 존재.
홍보부 공식 부인 팩스 발송.
혼마 마사유키 내부 메모 작성.

쿠로다는 종이를 하나씩 읽었다.

“기록이 많군.”

그는 펜을 들었다.

「회수 실패」

그 아래에 다른 줄을 적었다.

「다음 단계: 신뢰성 공격」

하지만 펜끝이 잠시 멈췄다.

기록이 많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한 사람을 흔드는 것은 쉽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각자 다른 장소에서 남긴 기록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쿠로다는 의자에 기대었다.

그는 아직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느꼈다.

자신이 만든 방식이,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칸을 만들지 않으면 이름은 사라진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칸을 만들고 있었다.

시간. 장소. 수령자. 보관자. 발신자. 서명.

작은 칸들이 모여 쿠로다의 여백을 줄이고 있었다.

도쿄의 밤은 젖은 채로 깊어갔다.

누군가는 봉투를 열지 않았고,
누군가는 기록을 남겼고,
누군가는 지시를 거절했고,
누군가는 과거를 묻지 않았다.

이름을 빼앗기지 않는 법은 그렇게 시작됐다.

큰 승리도, 큰 고백도 아니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남의 것을 남의 것으로 남겨두는 일.

그 작은 일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이름을 지켰다.


📚 오늘의 한 문장 — 일본어 학습 박스

1. 記録に残します。 [きろくに のこします]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말로만 처리하지 않고 공식 메모나 문서에 남기겠다고 할 때 · 혼마가 쿠로다의 비공식 예비테이프 확인 지시를 그냥 넘기지 않고 기록하겠다고 말한 장면

2. 受け取りの記録がないものは渡せません。 [うけとりの きろくが ないものは わたせません]
수령 기록이 없는 것은 드릴 수 없습니다.
맡긴 물건이나 자료를 누가 가져가려 할 때, 정식 기록이나 확인 없이는 줄 수 없다고 말할 때 · 켄타가 편의점에 맡겨진 유이의 예비 봉투를 세이와 직원에게 넘기지 않으며 한 말

3. 過去のことは聞きません。今の記録を残します。 [かこのことは ききません。いまの きろくを のこします]
과거의 일은 묻지 않겠습니다. 지금의 기록을 남기겠습니다.
상대의 사적인 과거를 캐묻지 않고, 현재 필요한 사실만 기록하겠다고 말할 때 · 미사키가 아카리에게 더 이상 개인사를 소비하지 않고 업무 기록으로 돕겠다고 말한 장면

4. 開けていません。 [あけていません]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맡아둔 봉투나 물건을 열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할 때 · 켄타가 유이에게 예비테이프 봉투를 그대로 돌려주며 한 말

5. 僕が見るものじゃありません。 [ぼくが みるものじゃ ありません]
제가 볼 것이 아닙니다.
궁금하더라도 자기 권한이 아닌 자료나 이야기를 보지 않겠다고 말할 때 · 켄타가 유이의 취재 봉투를 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며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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